능소화/차도연



하룻밤

승은(承恩) 후로

잊혀진

어린 궁인



긴 세월

기다림에

피울음도 희미해져



울타리

넘지 못하고

담황색으로

걸렸다.






구곡폭포/신종범



아찔한 행간에

베틀에 실 고르듯



수직으로 떨어지며

펄럭이던 흰 물결



아홉 번 굽이쳐 돌아

그려내는 고운 앙금.





<뽑는 글>

   시를 짓는 일은 누구나 쓰고 싶은 즐거움으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느낌이 한편의 시로서 형상화될 때 시 속에는 정서적 아름다움

이라든가 내용적 진실이 담겨 있어 우리는 그 시를 읽고 즐거움을 갖

게 된다.

   그러나 시상의 전개에 있어서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다거나 관념적

사실의 나열과 난해한 시어의 조립으로 이루어진 시에서는 아름다움

이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차도연의 <능소화>는 꽃이 얽힌 전설 같은 비유를 통해 시상을 전

개시키고 있다. 단형시조인 3장 6구 12음보의 형식을 올바르게 소화

하고 있다는 점과 표기 방법에 있어서 장별 배행이나 구별배행의 획

일성을 탈피하여 구나 절이 지니는 의미적 기능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시각적 기복적 표기 방식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가

능성을 엿볼 수 잇다. 다만 시어 선택에 있어서 음절 수를 맞추기 위

해 '승은(承恩)' 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시상전개상 부적

절한  표현이 되었고 또 '피울음도 희미해져'에서도 '희미해져'의 표

현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하고 싶다. 그리고 창작 기법상

종장에 주제가 설정되어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 작품에서는 선명한

주제의식이 심화되어 있지 못하다.



   신종범의 <구곡폭포>는 시상의 전개나 표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재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재치 있다는 말은 경이로움이라든가 독

창적이라든가 참신성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재치가 재치로 끝

나지 않고 반드시 내용의 심화 위에서 이루어지는 재치라야 한다.이

작품은 초장의 '아찔한 행간에/ 베틀에 실 고르듯'에서 '아찔한 행간

에'의 '행간에'와 '베틀에 실 고르듯'에서의 '베틀에'의 표현이 '에'

의 반복으로 운율 면에서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리고 종장의 표현과 내용에 있어서 소재 중심으로 이루어진 점

이나 또 '그려 내는 고운 앙금'의 표현도 어색한 느낌을 갖게 한다.

작품은 쓰는 것보다도 퇴고의 과정이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김 준 -시조시인, 서울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