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겨울 아침/김제현





밤새 눈이 내렸다

하얀 말뚝의 적막



산을 넘어 오는

이 정(淨)한 아침은



고독이 천년을 바라보던

순색(純色)의 물빛이어라.



밤새 잃어버린

그것은 나의 신발



인생은 가졌지만

살아 보지 못한



맨살로 빙판을 문지르며

하루를 건넌다.





다도(茶道)/최봉희





연풀잎 물빛 위에 벙그는 싱그러움



쪼로록 바쁜 하루 살포시 따르면



하이얀 찻잔 가득히 푸른 미소 흐른다.



 



바다의 노래/임춘자





바다는 아코디언 연두빛 실크스카프



출렁이며 너울대며 아득히 연주하면



갈매기 흰 날갯짓에 졸고 있는 한낮.







이달의 초대시로 김제현의 <겨울 아침>을 추천한다. 이 작품은 눈 내리는 아침을 소재로 순결에 

대한 동경과 강인한 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시상을 담고 있는 매개물은 물론 

눈이다.



밤 사이에 눈이 소복이 내려 이 세상 모든 속물(俗物)들이 일제히 깨끗한 눈으로 덮여 있는가 

하면 길에 박혀 있는 저 말뚝까지도 적막을 느낄 정도로 흰 눈을 덮어 쓰고 있는 겨울 아침이다. 

이처럼 순결한 백색의 세계를 넘어 온 이 겨울 아침은 남몰래 오랜 세월을 두고 바라고 바랐던, 

순수하기 이를 데없는 물빛과 같다고 첫째 수에서 노래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밤새 눈이 내려 온 천지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도리어 그것이 나에게는 신발을 

잃어버린 것만큼이나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가져오게 하였다고 이야기한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서도 제대로 사람답게 살아보지 못한 나로 하여금 맨발로 빙판을 문지르듯이 하루해를 보내라는 

것은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시상의 시발을 눈의 정결에 두고 다시 

그 눈을 통해 생활의 고달픔을 말하는 대조적인 시상으로 마무리하고 있는 작품이다.



<뽑는 글>



최봉희의 <다도>는 예사롭지 않은 문학적 성취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선 이 

작품은 올바른 시조형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짜임새가 이루어져 있다. 동시에 지나친 규

격화와 의도적 관계에서 벗어나 단아한 정형시로서 정제미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종장 둘째 구

에 '푸른 미소 흐른다'와 같은 주제를 설정하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장점은 산뜻하고 예민한 감수성이 내면적 깊이를 돋보이게 하

면서 새로운 시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쪼로록 바쁜 하루 살포시 따르면/ 하이얀 

찻잔 가득히 푸른 미소 흐른다.'같은 표현도 우리를 즐겁게 한다.



임춘자의 <바다의 노래>는 단형 시조의 형태에 맞게 짜임새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감수성과 상상

력이 미흡한 듯하여 경이로움을 갖기에는 부족한 작품이다. 바다에서 느낄 수 있는 상념이 누구

나 보고 생각할수 있는 단순한 사실 자체로서 머물러서는 큰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준-시조시인, 서울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