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하루 앞세우고 고개 넘는 뒷 모습
노을 빛 아우러서 내 마음을 풀어 놓고
구겨진 편지 한 쪽을 펄럭이며 흔든다.

(부산 연제구 연산 9동 137번지 경남아파트 2동 802호)

                    운주사
                                 

                                      박은화

세월을 버티고 선 상처난 저 불상들
맨발이 시리도록 겨울산을 건너간다
온 산을 푸르게 태울 미륵의 설법 들으려.

(전남 화순군 화순읍 일심리 861 서라 4차 401-305)

<뽑는 말>
  시를 쓰는 시인들에게는 언어를 단순한 전달 도구로서 취급하기에 앞서 인식의 방법으로서 언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언어에 의해서 비로소 존재를 파악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존재답게 하는 언어의 본질이 이해된다면 시는 결코 의미전달에 머물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박홍재의 <석양>은 참신한 발상과 더불어 세련된 언어 감각에 의해 시상이 전개되었으므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즉 초장의 '고개 넘는 뒷 모습'과 중장의 '내 마음을 풀어 놓고'는 물론, 특히 종장의 '구겨진 편지 한 쪽을 펄럭이며 흔든다'의 표현에서 보듯이 읽으면 읽을수록 즐거움을 갖게 한다.
  그리고 짧은 단형시조의 정형이라는 형태 속에서도 각 장에 나타난 철학적 깊이라든가 내면적인 의식의 형상화가 중량감을 갖게 함으로써 신인의 수준을 넘는 문학적 기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박은화의 <운주사>는 발상의 참신성이나 표현의 진정성에서 볼 때 시적 성취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시적 감수성이나 세련미가 돋보이는 장점이 있으나, 초장의 '버티고 선'에서 '선'과 '상처 난'의 '난'에서 종성의 'ㄴ'의 겹치기 발음으로 운율적 어색함을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상념이나 감각이 다분히 개성적이다. 다만 연역적 구성 방법에 의해 시상이 전개되었으므로 오히려 구성의 견고성보다는 서술적 느낌이 강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