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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10-16 12:14
 조회 : 2,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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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시>
가을에는
문무학
가을에는 늘 가던 길 좀은 멀리 돌아서 가자
지난 계절 스쳐가며 미처 놓친 몇 점 풍경
허허한 하늘 허리에 어렴풋이 걸려 있다.
가을에는 오늘보다 잊힌 날을 생각하자
잎잎이 물들어 간 그리움의 길섭에서
못 잊을 이름을 들춰 나직이도 불러 보자.
가을에는 그리운 그리움을 사랑하자
돋은 싹이 아니라도 나는 빛이 아니라도
가을도 오후쯤에는 그리움 덜 붉어진다.
이 달의 초대시로 문무학시인의 <가을에는>이라는 작품을 추천한다. 세 수로 이어진 연시조의 이 작품은 시어부터가 산문처럼이나 자유롭게 구사되고 있으면서 시조의 리듬은 리듬대로 유지하고 있다. 무리한 언어의 축약이나 조사의 생략, 그리고 생경한 시어나 필요 이상의 도치법 등을 사용함으로써 이미지를 단절시키고 있는 일부 시조시인들에게는 좋은 거울로 삼을 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안점은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예리한 감각으로 받아들여 이를 주관과 융화시킨 다음 풍요로운 감정으로 시인 자신의 소망이자 우리들의 바램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허수아비 등 너머로 멀리 사라져 간 가을의 저 비어 있는 들판에 서서 지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을 생각하자.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며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좋은 생각만을 갖자는 시인의 인생철학이 교시적(敎示的)이기도 하다.
<추천시>
산나리 꽃
김효선
산새 떨구고 간 놀빛 풀 섶에 내어 널은
벙근 가슴 터져버린 주근깨 계집아이
두 눈이 짓무르도록 곁눈질이 한창이다.
경기도 화성시 봉당읍 당하리 97 일주빌라 2동 b 01호, 031-297-4381, 018-222-7250
김효선의 <산나리 꽃>을 읽으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게 한다. 만일 시조에서 운율을 확대한다면 굳이 형식상의 제약을 받으면서까지 시조를 써야 할 명분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시조에 사용되는 언어는 억지로 줄이거나 길게 늘이는 언어가 아니라 그 자리에 그 말이 아니고는 사용할 수 없는 말, 곧 시조 형식에 극히 자연스럽게 들어맞을 수 있는 언어라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주어진 상황묘사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적 분위기에 맞는 이미지의 등장을 통해 그리고 의인체로 형상화되어 있어 한층 주제의식이 강렬하다는 장점을 느낄 수 있다.
최근 시조형식의 파격이 새로운 현대시조로 알고 있는 일부 시조단의 잘못된 풍토에서 <산나리 꽃>은 시조형식이 갖는 정형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으며, 산나리 꽃이라는 보편적인 시조 대상을 가지고도 이처럼 뛰어난 정서적 공간을 확대했다는 점도 아울러 높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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