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문학상
수상작>
주상절리
이정환
내 안에 나는 없고 꽃들로 가득했다
못물로 출렁였다 노을로 타올랐다
맨발로 달려오고 있는 그림자가 붉었다
내 목에 어느 날 별빛타래 걸렸다
자주구름 걸렸다 새가 사뭇 우짖었다
무한정 문이 열렸다 바람 들이닥쳤다
심사평
제33회 가람시조문학상은,
근대문학으로서의 시조의 품과 격을 한층 높인 가람 선생의 시정신을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시조의 미래적 방향을 담을 만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써온
분들께 돌아갔다. 가람 선생은 우리 문학사에서 구체적인 시조 창작 방법을 제시하였고, 스스로도 창작의 길에 매진하여 자신의 이론을 착실하게
실천한 시사적 범례로 남은 분이다. 가람 시조는 생명의 원초성을 복원하는 일종의 구도적 면모를 보였는데, 이는 시조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꿈꾼 가람 시조의 개성적 영역이라 할 만한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이러한 가람 선생의 시정신의 연장선상에서, 사물과 삶의 본질을 추구하고 나아가
언어의 창조적 비밀에까지 이르고자 힘쓴 시인들의 작품을 차례로 읽어나갔다. 그 결과 가람시조문학상에는 이정환 시인의 ｢주상절리｣가,
가람시조신인문학상에는 박성민 시인의 ｢목도장 파는 골목｣이 각각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이정환 시인의 작품은, 중진 시인의 역량을 유감없이 느끼게 해준 가편이었다. 여러 편이 선고에
올라와 그 균질성과 지속성을 함께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수상작에 나오는 ‘주상절리’란 용암이 식으면서 기둥 모양으로 굳은 것 혹은 용암의
냉각과 응고에 따라 부피가 수축하며 생겨난 기둥 모양의 금을 말하는데, 벼랑 이미지를 통해 가파른 인간 실존을 은유하면서 시인의 정신적
고처(高處) 지향을 가감 없이 보여준 상징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의 내면에 들어찬 꽃들, 못물, 노을, 별빛타래, 자주구름, 새 울음소리 등은
아득한 실존의 극한에서 만난 신성(神聖)의 은유이기도 하고, 주상절리를 실존적 구원의 공간으로 만든 시적 내질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인은
그곳에서 “내 안에 나는 없고”라는 유한자로서의 절절한 고백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조시단에 빈곤한 형이상학적 고투에 매진하고 있는
이정환 시인의 미래를 믿음과 기대로 지켜봄 직하게 하는 절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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