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시>

        비 내린 날

                      류영희
 
가끔은 욕망풀어 내 영혼을 달래본다
바람에 빗질하다 출렁이는 통곡소리
노을빛 고요 한모금 내 마음도 개었다.



        항아리

                      윤석순
 
비운 만큼 차오르는 배부른 둥근 가슴
세상 모든 소리들이 잠시 안겼다 가고
해와 달 별들 얼굴도 반듯하게 비쳐온다.


<뽑는 말>
  류영희 의 <비 내린 날>은 소재에 대한 쓸거리가 단순한 서술에 의존하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과 예민한 감수성으로 기발한 아이디어에 의해서 깊고 뛰어난 내용을 수용하고 있으며, 시상전개에 있어서도 그만큼 시조의 형식미에 맞도록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낙비 온 뒤에 정경묘사에 있어서 종장의 '노을빛 고요 한모금 내 마음도 개었다'의 표현이 기성시인 못지 않게 절장을 이루고 있음에 감탄한다. 다만 시의 제목이 시의 내용에 비해 너무 평범하고 설명적이어서 큰 호감을 갖지 못한다.
  윤석순의 <항아리>는 소재의 성격상 단순한 생각을 뛰어 넘어 보다 깊은 사상이나 철학성이 내포되는 것이기에 지금까지 많은 시인들이 다루어 왔다. 여기 윤석순의 <항아리>는 자기 나름대로의 참신한 생각과 느낌을 성공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종장에 있어서 시상의 흐름이나 표현력의 미진함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가령 '반듯하게 비쳐온다'의 내용은 진지함과 강렬함이 결여되어 있고, '해와 달 별들 얼굴도'의 표현에서는 계속되는 ㄹ 받침의 반복적인 사용으로 인한 운율상의 어색함을 지적하고 싶다.
                                                              김준(시조시인. 서울여자 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