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다도(茶道) / 옥경국

 

                                     



 선비의

 붓끝에서

 피어나는 난향을 닮아



 여백의

 너른 공간

 펼쳐진 녹향 따라



 서둘던

 구름 한 무리

 찻물 소리에 귀를 씻네.







 이 달의 초대시로 옥경국의 <다도>를 추천한다. 

 이 작품은 단형시조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압축성과 정제미가 잘 이루어지고 있고 시상의 전개

 가 유연함은 물론, 내용에 있어서도 심오한 사상을 동반하고 있어 단아한 품격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우수성은 선비정신을 잃고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맑고 깨끗한 삶을 통해 멋스러움

 과 여유로움을 갖도록 하는 철학성의 문제 제기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종장의 '서둘던 구름 한 

 무리 찻물 소리에 귀를 씻네'가 바로 이를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념이나 표현 감각이 보다 개성적이고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그 하나의 예가 된

 다. 단형시조의 경향으로 보아 남의 흉내내기에 편리하고 또한 고시풍에 안주하기 쉬운 속성에서 

 탈피하여 새롭게 자기의 목소리로 전통적 고전미를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 호감을 갖게 한다. 



 

곶감 / 이미란 



 소슬바람 타넘어 온 노을 한 입 베어 물고



 뉘 볼까 조바심에 처마 밑 숨 고르면



 상처 밴 인고(忍苦)의 세월 굳은살에 손 내미네.







옛 동무 / 박홍재 

 

 햇볕은 두꺼워서 어린 꿈도 굳어졌다



 껍질을 벗기는데 실꾸리를 풀어 댄다



 골목길 뒤돌아보듯 네 모습이 언뜻 뵌다.







<뽑은 글>

 이미란의 <곶감>과 박홍재의<옛 동무>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는 불필요한 말과 형용사를 쓰지 

 않고 있다. 즉 산문에서 표현된 내용을 서투른 운문으로 다시 고쳐 쓰는 그래서 우리에게 싫증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 아니라는 점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미지와 시어는 시의 절대적인 요소로 인식되고 있으며, 구성 또한 비유있는 이미지로 구성할 때 

 좋은 시라 일컫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관념시가 아닌 사물시에서 이루어진다.사물시는 사물의 이

 미지를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보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의 제시를 통해 선명함과 생동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곳감>과 <옛 동무>는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신인답지 않은 능숙한 솜씨와 표현에 있어서 기

 교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그리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시상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이 내면적 깊이를 

 거느리고 있어 시적 존재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곳감>의 종장 '상처 밴 인고의 세월 굳은 살에 손 내미네'와 <옛 동무>의 종장 '골목길 뒤돌아보

 듯 네 모습이 언뜻 뵌다'의 표현은 소재에 대한 속성을 확고한 주제의식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

 에서 내일의 시조 면모를 기대하고 싶다. 



김준-시조시인. 서울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