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항아리/배태인



하늘 향한 주둥아리

어여쁘게 빚은 사상



육중한 생각 너머

안으로 접는 고운 가슴



청상감(靑象嵌) 영혼을 태워

백학(白鶴)이 된 넋이여.



연륜을 다듬어도

주름없는 너의 얼굴



사랑의 회한을 두고

쌓은 외로움도



영원한 맥박의 마음

길이 뻗은 은하강(銀河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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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초대시로 배태인의 <항아리>를 추천한다. 항아리는 

일상 생활의 그릇 중에서 가장 대표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그릇을 빚는 이의 정성과 할머니와 어머니의 기름진 손때가 

묻어 있다. 이렇듯 항아리에는 조상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기

에 시인들이 시의 소재로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항아리의 주둥이를 하늘 쪽으로 향하도록 어여쁘게 빚어 놓은 

것은 옛 조상들의 드높은 사상에 의한 것이다. 용맹한 기상과 

우아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에 항아리에 상감을 넣되 굳이 고고

한 백학의 무늬를 택한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주름 하나 없는 항아리의 살결은 
너무나 아름답기에 어느 숭고한 사랑을 위해 고독하게 살아가
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이러한 영생의 존재를 상징하듯 
길게 뻗은 은하수의 무늬가 항아리에 놓여 있다고 시인은 노래
하고 있다.









어머니/박현진



먼동이 트이는데

시름을 풀고 앉아



이울은 저 초승달

별똥별 솎아내듯



해거름

깊이 잠든 밭, 매고 계실 어머니.







노을빛 가을/강은례



하늘 볼 연지곤지 단장한 서녘 하늘

곱게 쓴 붉은 연서 산자락 물들이면

화수분, 터져 오르는 가을날 욕망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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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는 글>



박현진의 <어머니>는 해 저물도록 밭을 매고 계실 고향의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무리한 언어의 축약이나 생략으로 인한 의미의 혼란이나 

이미지의 단절을 가져오지 않고 본시 시조가 지니고 있는

유연한 가락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말하자면 억지로 줄이거

나 불필요하게 늘인 언어가 아니라, 그 상황과 분위기나 이

미지에 맞는, 그 말이 아니고서는 사용할 수 없는 말로 형상

화되어 단형시조의 형식에 자연스럽게 시상이 구축된 작품

이다.



다만 종장의 '깊이 잠든 밭.'의 쉼표가 쉼표 대신 '해거름/

깊이 잠든 밭/매고 계시 어머니'와 같이 '매고 계실 어머니'

를 줄(행)을 바꾸어 표기하면 의미와 이미지가 효과적이다.



강은례의 <노을빛 가을>은 저녁놀에 비친 가을 산의 아름

다움을 관능적 속성으로 비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상의

전개가 서술로 이어지지 않고 생생한 이미지로 묘사되어 있

다는 점에서 생동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관능적

속성의 비유는 신선한 느낌보다는 오히려 진부한 분위기를

갖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즉 '연지곤지' '붉은 연서'

'욕망의 숲'과 같은 표현이 그것이다.그리고 종장의 '화수
분,터져 나오는 가을날 욕망의 숲'의 표현이 작자의 의도와
는 달리 시상의 전개 양상이나 의미 전달에 있어서 다소 숙
련을 요하는 부분이다.

시의 제목은 그 작품의 얼굴로서 매우 중요한 인상을 주게

되므로 많은 생각을 통해 주제나 내용에 일치하는 것으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 준-시조시인, 서울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