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택시 기사 동구 



- 심 응 문





  팔월의 살인 더위 도시를 태우는데

  택시 기사 동구는 손님이나 태웠을까

  높아진 건물 뒤편의 그늘이나 찾았을까



  카드 빚 쫓기더니 마누라나 찾는다고

  달군 쇠 상자 속에 핸들 잡은 일터에서

  세 끼 밥시간 맞추어 챙기기는 하는 걸까



  아스팔트 지열들이 아지랑이 꿈꾼다며

  차라리 꿈이라면 이 생각 걱정 없겠다는

  동구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이달의 초대 시로 심응문의 <택시 기사 동구>를 추천한다.

존재의 유한성이 주는 슬픔이나 고독은 고달픈 삶을 살아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먼 나라의 고민인지도 모른다. 

당장 세 끼 밥시간 맞추어 챙기는 것조차 힘겹고 팔월의

살인 더위에도 달군 쇠 상자와 같은 택시 안에서 아스팔

트의 지열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시민 동구는 바로 그날

그날 목숨을 이어 가기에도 힘겨운 우리의 이웃이다.

시인이라고 평지에 선 나무나 별이 되겠는가. 어쩌면 우

리 모두는 비탈에 선 나무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인은 때

로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때로는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이웃을 향한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더욱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정진을 늦추지 않는다.





 어떤 개인 날 



- 김아람(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빗물에 번져 가는 도시의 밑그림 속

  세상살이 골목길에 아이의 노란 장화는

  비 오는 구름 사이로 다시 뜬 태양 같다





 목련 



- 이미란(서울 상동구 길동)



 

  겨우내 먹 갈더니 정좌해 붓 잡았다

  한데 모은 머리카락 바람 실린 나비 되어

  파르르 화선지 가득 순백의 혼 수놓다





뽑은 글


-김아람의 <어떤 개인 날>은 시상의 압축과 함께 단절의 묘미가

잘 나타나 있다. 시상이 통일된 하나의 발상에 의해 짜임새 있

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의지를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어떤 개인 날>은 재음미할수

록 시의 생명이 '비 오는 구름사이로 다시 뜬 태양'같이 빛이

난다.

-이미란의 <목련>은 시의 발상이나 시상 전개의 숙련도가 돋보이

는 작품이다. 시에서 서술이 앞서면 지나친 관념에 머무르게 되

지만, 묘사에 치중하게 되면 강렬한 이미지에 의해 시적 분위기

가 상황에 대한 생생함이 더해지게 되는데 바로 이 시조가 그렇

다.

<목련>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목련 꽃에 대한 설명이 단

순한 나열로 이루어지지 않고 목련 꽃이 피어 있는 상황을 어느

화가의 예술혼에 비유하여 묘사한 대목이다. 이로 인해 시적 진

실과 그 효용성을 보다 잘 느낄 수 있다.





김준-시조시인. 서울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