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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6-19 16:32
 조회 : 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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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수필 200x60매>
꿈의 섬 선유도(仙遊島)
1.
새벽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다. 곰상하고 딸내미의 박자가 찰떡이 되어 온 집안을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만든다. 올해도 딸내미와 같이 휴가가기는 틀린 모양이다. 같이 가자고 사정을 해도 친구들과 동해안으로 간다고 한다. 이제 다 컸다고 자기 갈 길 가겠다는데 막을 방법이 없지 않은가. 가서 잘 놀고 온다며 오히려 엄마 아빠 걱정이다. 바닷가에 가서 조심해야 할 사항들에 대한 연구가 상당하여 한참 훈계를 듣는다.
이제 정말 다 컸구나! 착하고 예쁘게 자라준 것이 대견스럽고 뿌듯함으로 다가오는 사랑스런 예쁜 딸! 하늘을 나는 스튜어디스가 꿈인 딸내미는 21살 다 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빤 테’ 하면 쪼르르 달려와 품에 안겨 이런저런 얘기를 쉴 새 없이 조잘 되는 통에, 곰상의 곱지 않은 눈초리를 받는 게 다반사다!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나이에, 치매와 중풍으로 할머니 5년을 고생하실 때, 엄마 알면 속상할까 할머니 대소변을, 온 방 천지인 그것을 말끔히 치워 놓고, 엄마 들어와 물으면 시침 뚝 떼며 ‘아니, 엄마! 오늘은 괜찮았어.’ 그런 딸을 나는 천사라고 부른다. 내 딸 천사 아니면 어느 누가 천사겠는가.
코찔찔이 벌써 저렇게 컸구나. 그래!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길 열러 있으니 열심히 살아가렴. 미래의 모든 것은 너희 것이란다. 어려움과 고통 있겠지만 잘 극복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거라. 너희가 오는 만큼 엄마 아빠는 가는 거지만……. 그러나 기억해다오. 너희를 사랑했던 아빠 엄마를!
아침부터 웬 주책없는 짓인가? 코끝이 시큰한 게 눈물이 핑 돈다. 혹시나 들켰을까 괜히 흰 짜증을 내어본다. 바닷가로 휴가 가는 게 처음도 아닌데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3시간여 난리를 치르고서야 겨우 출발이다! 인천으로 달린다. 인천은 고생할 때 살았던 곳이다. 어려울 때 만난 분들이 아직 살고 있고 그때 주고받은 정겨움이 남달라 매년 휴가를 같이 다니고 있다. 인생의 참맛을 깨닫게 해준 못된 사람들 때문에 일본인 관사로 쓰던 한 칸 월세 방에서, 40만 원 보증금에 월세 7만 원으로 2년여를 살았었다. 어머니, 곰상, 애들 둘, 나까지 합이 다섯이니 잠잘 때 돌아눕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 어머니 옆에 곰상 그 곁에 나, 애들 둘은 늘 2층 차지! 곰상 위에 한 놈이요, 내 위에 또 한 놈이라. 지난 일 돌이켜 지금은 추억이 되었지만, 허허허!
어렵게 마련한 집을 어음 사기로 처분한다고 하자, 그 다음날로 부동산에 내놓고 와서 내 손잡으며 하는 말. ‘여보! 난 당신을 믿어요.’ 아! 벌써 20년 전 얘긴가 보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 알기로 한 번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사람. 큰 꿈 왜 없었으리요 마는 적지만 있는 그 대로에 만족하고, 소중한 가족 보듬음에 삶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하는 나의 곰상! 나는 그녀를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빵빵’ 하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다. 일상에서의 탈출이라는 자유스러움이 추억을 잡았나 보다. 조금 늦은 휴가여서인지 길이 막히지 않아 좋다. 회색빛에 길든 눈동자가 온통 녹색인 싱그러운 들녘과 수줍은 인사를 나눈다.
드디어 군산항이다. 추억의 내항이 아니라 외항이다. 외항은 내항과 달리 편리함과 깨끗함은 있지만 풋풋한 정이 넘쳐흐르던 고향 같은 푸근함이 없어 아쉽다. 배 떠나는 시간은 1시. 지금 시각은 11시. 휴게실도 식당도 없는 외항에서 두 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식당이 있어 소주라도 한잔 하면 두 시간이야 뭐 잠깐이지만. ‘궁하면 퉁 한다.’고 했던가. 11시30분에 출발하는 배가 있단다. 물어보나 마나 뻔한 게 아닌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자리가 있겠느냐고 배표 파는 아가씨가 한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런데 내가 누구인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바로 작전 돌입. 곰상처럼 예쁘고, 마음 착하고, 여러 보이는 아가씨 쪽으로 다가간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얼굴로 다가가 이름과 전화번호 적어주고 대기 순서를 고집한다. 그 아가씨의 시선을 받을 수 있는 지점 확보하여 약 20분을 기다린 끝에 신호가 온다. 뒤에 수십 명의 사람이 기다리니까 눈으로 보내는 신호다. 그 아가씨 시집 잘 갈 것이다.
결국, 작전 성공! 빨리 가자고 ‘뛰뛰’ 하는 배에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어 올라타니 미리 탄 많은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다. 참 어리석은 일인 줄 알지만 뿌듯한 성취감에 잠시 취해본다. 어차피 비워두고 갈 자리인 것이다. 없는 길을 만든 게 아니라 있는 길을 찾은 것뿐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있는 길 두고, 힘들고 없는 길 찾아 헤맨 것은 아닌지 뒤 돌아 본다.
바다가 넘실된다. 바다는 언제 봐도 편안하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어 좋다. 푸름이 그 신선함이 좋다. 매년 섬으로 휴가 다니면서 느끼지만, 먼바다가 주는 깨끗함과 가슴으로 다가오는 신비로움에 또 한 번 매료된다. 멀리 새만금 간척지의 당당한 둑들이 곧게 뻗은 채 달리는 배를 계속 따라온다. 참 큰 땅이 새로 생겨나는가 보다. 인간의 힘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배가 고프다. 아침도 못 먹었는데, 먹자고 하는 일인데. 캔 맥주에 계란 육포로 허기를 면하여 본다. 곰상은 쉬겠다고 뱃전에 기댄다. 딱히 할 게 없다. 혼자서 묵찌빠 할 수도 없고. 같이 간 일행은 붙어서 뭔 얘기를 저렇게 하는지, 눈꼴사나워서 나 참. 2층으로 올라가 본다. 여객선의 지나온 궤적들이 하얀 포말(泡沫)을 일으키며 멀리 멀어진다.
내가 보낸 인생의 흔적들처럼. 많은 세월이 저렇게 흘러 아득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겠지. 우리 인생도 바다 위를 미끄러져 달리는 이 배 같음이 아니던가. 뱃전에 부딪혀 흩어지는 파도의 편린(片鱗)들은 곧 현실의 애환들이 아닐까?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 나가는 여객선은 삶의 힘찬 고동이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이 바다를, 또 파도를 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각자의 처지와 입장에서 각양각색의 그림을 그리고 있겠지. 나의 배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가. 과연 돌이켜 후회하지 않을 항로를 가고 있는가. 멀리 갈매기가 커다란 원을 그리며 휘돌아 나간다.
‘뚜우’하고 기적이 운다. 군산으로 가는 여객선과 교행하면서 배끼리 나누는 인사다.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 그 만남과 헤어짐이 오묘하지 않은가. 나의 사람 만나는 소신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오는 인연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세상 남에게 부담 줄 일은 없지 않은가.
먼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들이 파노라마 되어 스치듯 지나간다. 어떤 소질 있는 작가 있어 어쩌면 자리도 그렇게 절묘하게 잡았을까! 작은 섬 하나하나가 그 자리에 없으면 조화가 깨질 듯. 참 기가 막힌 착점이요, 한 폭의 그림이다.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자연의 아름다움에 소름끼치는 전율을 느낀다. 아름다운 대자연이여, 그 위대함이여!
문득 ‘뚜우’하고 다시 한번 기적이 운다. 아! 선유도다.
淸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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