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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6-23 22:12
 조회 : 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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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수필 200x60매>
꿈의 섬 선유도(仙遊島)
4.
한참을 늘어지게 잤나 보다. 낯 술은 어미 아비도 몰라보게 한다더니. 휑한 머리를 도리질 쳐본다. 부스스 눈떠 시계 보니 벌써 오후 2시. 곰상 눈치부터 살펴야 하는 내 신세여. 그러면 그렇지. 기다리다 지쳤는지 세상 모르게 자고 있다. 아직까지 자면 언제 해수욕장 가느냐고 한바탕 흰 짜증을 내어본다. 기선 제압용이다.
근데 이게 무슨 냄새인가. 그렇다 옥수수다. 꿈결인 양 옥수수 삶는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있음이 아닌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깊은 정과 추억의 맛이 물씬 느껴지는 옥수수 냄새다. 어린 시절 여름밤이면 넓은 마당에 멍석 깔고 모깃불 피워 어머님께서 들려주시던, 하늘나라의 달님 별님들이랑 도깨비 나라의 착하고 바보스럽던 그 많은 도깨비와 귀신들. 그들과 나누어 먹으며 꿈을 키우던 찰옥수수의 그 맛! 그 옥수수의 냄새가 아니던가? 미련한 우리 곰상은 남편 좋아하는 옥수수나 삶을 일이지, 잠만 자고 있느냐며 심통을 부린다. 옆방에서 옥수수를 삶나 보다.
수줍게 내미는 옥수수 잡은 손이 너무 예쁜 아이. 맑은 눈과 차분한 미소가 아름다운 수빈이! 6학년 예비 숙녀인 수빈 이네 가족이다. 전주 시청 공무원인 아빠랑 엄마 따라 어제 왔는데, 놀 거리도 없고 볼 것도 없어 심심하다면서 옥수수 삶아 먹고 보따리 싸서 집으로 간단다.
그러게 동휘씨에게 미리 교육을 받았어야지. 선유도가 재미없다니 나 참! 지금 나가면 수빈이가 기억하는 선유도는 볼 것 없고 재미없는 섬이 될 것이 아닌가. 그럴 수는 없지, 설득에 들어간다. 내가 누구인가. 먹고사느라 쌓은 능력 중의 하나가 남을 구워삶는 일이 아닌가! 목적을 가지고 마음먹고 삶으면 90% 정도는 성공했지 않은가. 막 배로 전화 예약을 다시 했다.
자, 가자 수빈아! 옥돌 해수욕장으로. 아름다운 추억의 섬이 될 선유도를 즐길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단다. 너의 하얀 백지에 아름답고 고운 추억 많이 그려야 하지 않겠니? 좋은 꿈 예쁜 소망 모두 너의 것으로 만들어 보렴.
전에는 사람 사귀기가 어렵고 낯을 많이 가렸었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 가나보다. 사람 만나는 것이 좋고 대화가 좋고 정 나눔이 좋은 것이니. 참 바보스럽게도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고 살았었지. 그래서 결국 무엇이 남고 무엇을 얻었음인가. 더불어 살리라. 어울렁 더울렁 더불어 살리라! 잘나고 못남이 한 끗 차이 아니던가. 잘살고 못삶의 기준은 무엇인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이 사람의 마음에 따름이 아니던가. 버리리라! 버리고, 비우리라. 그리고 맞으리라. 벅찬 희망의 아름다움 들을…….
또 동휘씨의 태클이다. 오토바이 택시를 불러 달랬더니, 그렇게 갈래면 차라리 집에서 술이나 먹고 자는 게 좋단다. 섬을 제대로 보려면 산을 넘어 걸어가란다, 글쎄. 걸어서 10분이면 천국 거기 있단다. 산을 넘어야 제 맛 이래니 나 참! 푹푹 찌는 이 삼복더위에, 10분이면 된 되니……. 진정으로 섬을 사랑하는 그 확신에 찬 모습이 아름답다. 주섬주섬 챙겨 하나로 만든 짐, 등치 크다고 나 혼자 지고 가란다. 그날 난 한 반 죽었다.
옥돌 해수욕장 가는 산길에는 섬 꽃들이 미리 나와 길게 늘어서서 우리를 반긴다. 서로 제자리를 지키면서 어쩌면 저리도 제 역할들을 다 하고 있는가! 이름 모를 섬 새 한 마리가 긴 호흡으로 화답한다. 이 조화로움이 섬의 매력이자 아름다움이 아니던가. 새는 새 대로, 꽃은 꽃대로 자기역할 다하고 있음에 아름다운 것처럼 인간도 인간다움을 가꾸고 유지시켜야 아름다운 것이거늘.
은빛 가루를 뿌려 놓은 듯 옥돌 해수욕장은 거기에 있었다. 모래는 찾아볼 수 없는 아담하고 정감 있는 시골이 그대로 그려져 있는 곳. 석공이 다듬어 놓은 것 같은 네모진 돌들이 수천 년의 무게로 거기에 있었다. 우리 곰상도 수빈이 못지않게 신이 나나 보다. 돌로 하는 뱃살 마사지가 최고란다. 선유해수욕장과는 다르게 해안의 경사도가 무척 빠르다. 수영께나 한다는 나 아닌가! 모처럼 신이 나고. 시간이 멈춘 듯하다. 아니 시간이 멈추어 있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무심한 것이 시간의 흐름 일터. 작열하던 햇살이 길게 몸을 드리운다.
아! 이제 떠나야할 시간이다. 헤어짐은 늘 아쉬움을 동반 하나보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뱃고동이 재촉한다. 그놈의 정이 뭔지 그 사이에 벌써 정 들었다고 동휘씨와 헤어짐의 악수만 벌써 서너 번째이다.
‘뚜우’ 하고 기적이 운다. 멀어져 가는 뱃머리를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있는 우리 알콜! 동휘씨네 개다. 개도 저러는데. 개도 정을 아는데, 하물며 인간이랴.
지친 듯 달리는 여객선의 흐름이 단조롭다. 이제 다시 현실로 가고 있음이니. 그곳으로 여객선이 나를 실어 나르듯 나 또한 내 인생을 끌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이제부터 또다시 시작이야. 여기까지 온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가. 지나고 나서 되돌아 후회는 이제 더는 없어야 하리니. 저 멀리 섬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그렇구나. 섬은 늘 거기에 어머님처럼 있었구나.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고운 미소 지으시던 어머님처럼, 섬은 늘 그 자리에 있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나를 불렀나 보다. 말없이 모든 것을 포용해 주시던 어머니. 바다와 섬은 어머니를 닮았다.
잘 가거라. 수빈아. 너와 보낸 여름은 짧았지만 아주 즐거웠단다. 아저씨의 가슴에 오래도록 기억될 거야. 사람은 언젠가는 추억을 먹고살 때가 있단다.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너의 모습 오래도록 간직할 것이니. 수빈이도 아름답고 고운 추억 많이들 만들도록 해라. 잘 가렴, 수빈아. 잘 자라 좋은 삶을 살아가려무나. 그리고 기억해 줄 거지. 너를 예뻐했던 이 아저씨 있었음을. 너의 기억 속에서 언젠가는 지워질 아저씨지만……. ■
淸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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