氷山과 시 


한 폭의 그림이나 사진 작품에도 보이는 풍광보다 그 이면 속에 더 많은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어야 비교적 성공한 작품이듯 한 편의 시에도 행간 속에서 읽혀지는 시, 영상으로 다가오는 시 등 작자가 의도하는 다양한 작법이 있음은 물론. 여기에서 한 가지 더 빙산(氷山) 의미를 덧붙여 본다.

빙산은 극히 일부만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보다 큰 몸체는 천길 물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

시 또한 빙산처럼 거대한 몸짓을 수면 아래 가라앉히고 극히 일부분의 면안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이 압축을 요구하는 시조 작품에 있어서의 맥락이 아닌지 한 번쯤 되짚어 본다. 

 
여름호를 맞아 한 분의 작가상과 네 분의 신인상 당선작을 맞는 기쁨을 얻었다.

지난해 <월하 전국시조백일장>에서 장원으로 뽑혀 이미 등단한 김선덕 님이 다시 한 번 <시조문학>을 통하여 검증을 받고 또한 가족이 되고자 작품 <가을 水彩畵>를 가지고 찾아와 선뜻 반기며 작가상으로 미는 바이다.

만추의 가을을 맞아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보며 넉넉히 삶을 관조하는 신선함과 중후감을 같이 주는 수작이다.

다시 한 번 작가상 수상을 축하드리며 대성을 빈다. 



신인상으로 김 호님의 <등대>를 뽑아 올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뱃길을 유도하여 주는 <등대>의 사전적 의미를 떠나 만경창파와 같은 세상사에서 빛이 되어 주고 길이 되어 주는 어쩌면 인생 항로의 이중적 구도로 그린 고도의 작법으로서 각 장의 종장마다 자적(自適) 표주(表柱) 무적(無籍)의 의미를 적소에 심어 주어 형질을 높여 준 주형의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음엔 순 한글말로도 시 쓰기를 권유하여 본다.

김명래님의 작품 <華嚴寺>를 천한다.

화엄사는 지리산에 있는 대사찰이다

“비 개인 화엄사는 다시 깬 모습이다/우화(羽化)한 각황전이 이슬로 몸을 씻고/

세월도 석 잠을 자야 기지개를 켜는가.“

천년 고찰의 우아한 대웅전을 그린 첫 수이다.

더 이상 무슨 부연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어도 추켜 올린 단청과 풍경 소리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오는 불교적, 문학적 성가를 동시에 이룬 작품이다.

다음은 박신산 님의 작품 <봉숭아>를 뽑았다.

역시 두 수 1 편인 서정을 그린 작품이다. 봉숭아 하면 우선 떠올리는 것이 옛날 놀이 재료가 없던 시절, 누이들이 손톱에 물들이던 정경이다.

또한 홍난파의 가곡이 생각나고 건드리면 톡 터지는 꽃씨방의 지혜를 생각케 한다.

그러한 상을 “한 움큼 꿈을 쥐고” “왈칵 쏟아질 그리움의 눈물”로 표출한 시적 기교와 재능이 돋보이는 시구로 시적 효율성을 높여 준 작품이다.

박동인 님의 3수 1편의 연작시인 <어머니, 울 어머니>의 전쟁을 그린 작품을 천한다.

피난 시절의 아픔을 묵묵히 모상으로 표출한 오랜만에 대하는 전쟁의 시요 역사성을 지닌 작품이다.

그러면서 끝내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우뚝 선, 그 추억을 “산등성/뻐꾸기 울음이 /아직 남아 울린다.”로 마감한 역시 시적 재능과 역량을 보인 작품이기에 주저함 없이 당선작으로 민다.


앞에서 화두로 언급한 바와 같이 시의 성패는 보이는 외부(감성) 보다 보이지 않는 이면의 시적 분출(이성)에 있다. 보이는 것이 율격이라면 그 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품격일 것이다.

이러한 율과 격이 맞아 떨어질 때에야 더욱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다.

모두들 대성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박병순 김준 김교한 장지성 유자효 정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