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자>란 참 흔한 이름입니다. 이름이 얼마만큼 흔한가는 전화번호부를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흔하고 매력 없는 이름인데도 20, 30대의 젊은 사람들 중에도 있는 것을 보면 <이정자>란 이름이 좋긴 좋은가 봅니다. 나는 내 이름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당시 내 또래의 아이들도 예쁘고, 좋은 이름이 많던데 왜 이렇게 흔한 이름을 지었을까 하며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 일이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이름 때문에 곤혹을 치렀습니다. 나와 같은 이름의 또 한 명의 <이정자>는 서울 태생으로서 서울 아이답게 명랑하고 활달했습니다. 그 친구에 비해 필자는 지방아이답게 좀 내성적이었으며 보수적인 성격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성격으로 인한 어떤 언행이 나에게로 잘못 전가된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금시초문에, 이름으로 인하여 오해를 받은 것이지요. 그 친구에게는 그것이 장점이 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언행이었습니다. 똑 같은 말이라도 A에게는 맞고 B에게는 틀리는 것과 같은 이치였습니다. 나중에 바로 잡아지기는 했지만 얼마간 오해를 받았습니다.

 

그럴 때 즈음 <자>자로 된 이름을 쉽게 고칠 수 있는 법적 제도가 마련된 것입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자>자 돌림의 이름을 고쳤습니다. 필자도 이름을 고치려고 새 이름을 지었습니다. 작명법에도 맞추어 지은 곱고도 흔치않은 이름을 아버지께서는 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름을 고치려고 하니 망서러졌습니다. 지금까지 부르고 불리어진 이름인데 그 이름이 없어진다는 것이 싫었습니다. 이름이 없어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과도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망설임 끝에 끝내 이름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필자가 시인으로 등단할 때의 일입니다. 이 흔한 <이정자>로서는 등단하지 않으려고 필명을 지어 여기 저기 습작을 발표했습니다. 중앙일보 지상 시조 백일장에도 발표했고, <샘터>에도 발표했습니다. 발표될 때마다 독자 편지가 몇 통씩 왔습니다. 그 때의 에피소드입니다. 군인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아마도 <샘터>를 본 것으로 짐작되었습니다. 내 작품을 읽고 <미스Miss>로 오해를 한 것입니다. 자기는 모 대학 의과대학생으로 ‘보잘 것 없는 풀꽃 하나에도 애정을 갖고 시로 표출한 그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사랑하고 귀하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긴 사연을 보내 주었습니다. 발표할 때 나이를 밝히지 않은 것이 오해를 갖게 했습니다. 이를 어찌하랴? 고민 끝에 그 다음 薦了(천료)를 앞두고 그만 본명인 <이정자>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나는 필명조차도 바꿀 수 없는 <이정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런 편지는 없었습니다. 역시 <이정자>는 매력이 없는 흔한 이름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가끔 습작기의 그 이름으로 필명을 했더라면 하고 미련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도 동창 중에 똑 같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A와 B로 나누어 불렀습니다. 그래서인지 대학교 때는 별문제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에는 또 한 명의 <이정자>는 필자보다 더 얌전하고 조신했으며 모범적인 학생이었습니다. 내가 오히려 그 친구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는 편이었으니까요.

 

젊은 시절 직장(학교)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또 한 번 크게 오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중간 글자가 틀린 비슷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나 자신도 모르는 채 몇 개월간을 고스란히 오해를 뒤집어 쓴 사건이 있었지요 그것도 ‘발 없는 말이 천리 가고, 말은 옮겨 갈수록 부풀려지는 것’이라는 그 말을 실감나게 한 소문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학교는 미군 부대 부근에 있었으며 그 부대는 우리 학교 아이들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 부대 장교 차를 시내에 갔다가 그 여선생님과 함께 얻어 타고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장교가 그 여선생을 친근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것은 그 여선생님이 명랑하고 친절했으며 말을 잘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전부였고, 그 뒤는 그 여선생님이나 필자나 그 누구도 그 장교를 만난 적도 말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함께 타고 왔다는 그 장면만 본 사람에 의해서 전해진 말이 돌고 돌아 그 미군장교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말로 발전된 것입니다. 그것도 필자가 말입니다. 나는 그 장교와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하지 않은 상태였고, 그 여선생님 또한 자연적으로 만나게 되면 인사 정도 하는 사이이고 그 날도 시내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만나게 되어 타고 온 것뿐이었습니다. 그 오해가 풀린 것은 2개월 후이고, 그러한 오해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안 것도 오해가 풀린 바로 그 날 이웃 학교 선생님과의 대화 가운데 어떠한 말끝에 우연히 들은 것입니다.

 

이름으로 인한 불명예스러운 지난 일들을 불식이라도 하듯, 내 이름 <이정자>가 좋다는 것을 실감한 한 사실이 있습니다. <98년 올해의 이화인>으로 뽑힌 자리입니다. 각 과에서 뽑힌 31명 중에서 <이정자>가 자그마치 4명이었습니다. 필자를 포함하여 <약대의 이정자>, <조소과의 이정자>, <회화과의 이정자> 등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4명이나 뽑혔으니 <이정자>의 이름이 좋긴 좋은가 보다’ 고 모두 말했습니다. 처음으로 감탄했습니다. 하기야 내 이름으로 잘 못된 것은 없습니다. 同名異人(동명이인)인 고등학교 때의 그 <이정자>도 교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최근 들었습니다. 필자도 이렇게 <이정자>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이름이 흔하다고 해서, 또 예쁘지 않다고 해서 잘 못된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요즈음은 자랑스럽게 이름을 소개합니다. ‘가장 흔하고 외우기 쉬운 이름 <이정자>라고 -.

 

지난 학기에는 내 강의를 듣는 학생 중에도 <이정자>가 있었습니다. 출석을 부를 때는 좀 어색했습니다. 그 학생도 공부를 열심히 잘했습니다.

 

<이정자>란 참 흔한 이름입니다. 흔하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불리어지는 좋은 이름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흔한 이름을 가진 <이정자>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귀하고 아름다운 일에서 빛을 낼 때 <이정자>란 이름은 진정 좋은 이름으로 남을 것입니다.♠

 

- 이대동창문인회 수필집 기 발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