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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22 00:16
 조회 : 2,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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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특집평>
♣ 쉽게 읽히지만 어렵게 쓰는 시조라야 ♣
김월한
시조는 3장 6구로 된 기승전결이 있는 정형시다. 여기서 기승전결이라함은 발단과 전개와 결말이 있는 의미률로서의 시조를 말한다. 초 · 중 · 종장의 긴밀한 시상의 연결과 한 덩어리의 이미지로 구조화된 무형식이 시를 말한다. 단순히 3 · 4 음절로 된 언어를 그냥 자수율에다 갖다 맞추는 그런 3장 형식의 시조가 아니다.
만약 3 · 4조의 언어를 동원해서 자수율에만 맞게 3장을 늘어놓으면 시조가 되는 것으로 쉽게 생각하고 시조창작에 임한다면 큰 잘못이다. 물론 이러한 안이한 생각으로 시조짓기에 접근하는 시조시인들은 없을 것이고, 또한 필자의 이러한 생각도 기우에 지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떻든 시조는 형식도 갖추어야 하고 문학성도 짙게 녹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중고를 치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어렵게 짓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독자에게는 쉽게 읽히고 의미 전달이 잘 되어 공감대의 파장을 울리는 작품을 써야 한다.
자유시는 어떤 일정한 형식의 구애가 없고 시어 선택의 폭이 넓어서 비교적 자유로운 시상전개가 가능하지만 시조는 정해진 좁은 틀 속에 시상을 전개해야 하므로 시어의 수용과 배제가 끝없이 반복되고, 절제와 함축과 정제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시조짓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이야기는 시조 창작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또 어제 오늘의 이야기도 아니다. 모든 시조시인들이 다 그렇게 생각은 하고 알고도 있겠지만, 끊임없는 연마가 없이는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이 시조짓기의 어려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조문학지의 여름호에 발표된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결같이 시조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자기 나름의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비교적 쉽게 읽히고 의미전달이 잘 되는 작품들이었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김남환 시인의신작 5편 중 어머니이 대한 애절함을 노래한 작품을 들어보자.
어머니 가신 뒤로
늪이 된 슬픔
해도 달도 아니오는
캄캄한 水深으로
차디찬 절망을 안고
몸져 누워 있습니다.
- 「늪 」전문
어머니를 여읜 슬픔이 얼마나 깊었으면 늪이 되었을까. 생가지가 꺾이고 통째로 뿌리가 뽑히는 듯한 캄캄한 절망감, 모든 삶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한 아득한 슬픔이 마침내 침잠하여 고인 늪, 그것은 곧 김남환 의식세계의 심연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라면 한동안 어머니를 잊기 위해 정처없이 방황하기도 했지만, 속초바다 푸른 물결 위에도, 설악산 붉은 단풍잎 속에도,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 끝에도 어머니는 살아 계셨다고 했다. 그래서 한평생 억척같이 헤치고 가신 어머니 발자국을 따라가면 반드시 어머니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꿈 하나를 품고 다시 삶을 가다듬는 김남환 시인의 심중을 헤아려 볼 수 있어서 반갑다.
우린 한세월 동안
소처럼 끌고 왔었네
죽을 수도 있는 전신 가까스로
살아 남아
뼈저린
마른 풀잎들도
억새처럼 울고 세웠네.
박영교 시인의 「日常」첫째수다. 그렇지, 우린 그렇게 살아 왔었지. 「日常」이란 제목을 달았지만 그것은 우리네 평범한 일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역사다. 한세월 동안만 그렇게 소처럼 끌고 온 삶이 아니라 수많은 세월을 고난과 질곡 속에서도 꿋꿋이 견디면서 헤쳐나온 겨례가 아닌가. 박영교 시인은 이러한 우리의 삶의 역사를 그저 평범하게 겪는 일상사처럼 노래함으로써 그 속에 숨은 우리의 삶의 의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아이러니를 표출해내고 있다.
최권홍 시인은 우리 거셍 대한 유별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그의 작품 「여보오 1」4편에서 정주미의 승무, 국악 한마당, 설날 아침, 구암정과 같은 주제를 놓고 전통적인 우리 것에 대한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최 시인이 시작 메모에서 말하고 있는 '우리의 삶의 둘레가 거의 밖에서 들어온 것들로 꽉 차있다. 이러다가는 제 것도 모두 잃고 남이 놀아나는대로 흉내나 내는 넋 빠진 허수아비가 되고 말리라... 우리 것을 찾아 가까이하는것이다. 그리고 사랑하고 아끼고...' 와 같이 우리 것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몸매나 옷매무시
맨드리 뉘 갈서랴
팔다리 사위 사위
더 말할 나위 없고
여보오 뭘 또 가룰까
어우르는 노래들.
「여보오 」의 둘째수다. 시어도 순수하 우리말을 쓰고 있다. "옷매무시" "맨드리" "갈서랴" "가룰까" "어우르는" 등의 말은 잘 쓰지 않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옷을 입고 매만진 맵시(맨드리)는 나란히 서서 비교할 수 없는 일품이고(갈서랴), 그러니까 함께 마주 서서 시비를 판단할 수 있을까?(가룰까) 더욱이나 노래들조차 한데 어우러지는 승무의 춤사위는 넉넉한 우리의 것임을 이 작품에서 잘 말해주고 있다.
조근호의 「흔적에 대하여」를 보자.
돌아보면 허전한 것이 어디 세월뿐이랴
땀 젖은 일기장이 실핏줄을 적셔오는데
저린 발 절룩이면서 일어서는 부활의 강
가슴이 묻히도록 의혹이 난무하는 땅
돌아가 쉴 곳 있음이 더없이 다행인 날
내 몫의 자리를 펴고 외워보는 주기도문.
허전하고 아쉬운 자기 삶의 역정 속에서도 각고의 노력으로 실핏줄속에 살아 도는 생을 확인하고 그래도 그러한 아픔이 다시 살아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됨을 첫수에서 노래했고, 둘째수에서는 부실한 사회현상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의혹만 어지러운 현실을 헤치고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그래도 진실한 자기로 돌아와 분복(分福)에 감사하고 스스로를 찾는 길임을 진솔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어쩌면 인간은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존재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조근호 시인처럼 그러한 삶의 하나하나가 쌓여 현세를 살다 가는 하나의 흔적이 될 지도 모른다는 신념이 싹트고 있는 건 아닐까.
가는구나 바람도 접고
이승의 개울을 건너
옛일로 떠나는구나
유서도 없는 겨울아
잡념을 나뭇가지 다 쳐내고
고요만 골라주던 영혼
황인원 시인의 「겨울 풍경」첫수다. 그는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작품을 되도록 많이 쓸 생각이라고 한다. 사물의 본질을 추구한다는 것은 곧 인간 생명을 탐구하는 것과 같다. 또 거시적 관찰보다 미시적 관찰을 할 생각이라는 것을 시작메모에서 말하고 있다. 황 시인의 그러한 생각이 작품을 통해 잘 나타나기를 바란다.
진성열 시인의 「살아서 다시 부르는 노래」다섯 편을 대하니 반갑고 착찹한 감회를 떨칠 수 없다. 맨 끝의 단수작품 한 편만 빼놓고는 전부 사설시조로 엮어 놓았다. 생사를 넘나드는 중병의 고통속에서도 살아야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의식을 되찾고 회생한 진성열 시인은 그러한 경험을 되살려 시화하고 있다.
필자도 의식을 잃고 쓰러져 119에 실려가본 적이 있는지라 감회가 새롭고 또 진 시인의 작품에 공감하고 있다. 여기서 한 수만 예로 들어보자.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통증이다
톱으로 가른 흉골 아물릴 때 받는 고통
입안의 고무방망이 걷힐 때의 후련함
「살아서 다시 부르는 노래 3 」마지막 수
자기가 받는 통증은 자기만이 안다. 왜 인간의 육신에 그렇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누가 안겨준 것일까. 진성열은 가혹한 병마와 싸우면서도 시를 의식하고 또 그것이 어쩌면 자기 운명을 극복해낼 수 있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내 앞에서
웃는 모습 보이지만
가슴에 고인 한숨
나는 다 알고 있네
눈물이
흐르다 넘쳐
주름으로 패인 것을.
-「내 아내.31」전문
고두석 시인의 아내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우선 이 작품은 시조다운 발상으로 기승전결이 잘 이루어진 작품이다 내 앞에선 웃고 있는 아내의 모습(초장), 그 웃는 모습 뒤에 숨겨진 아내의 한숨(중장), 그 한숨은 마침내 눈물이 되어 넘쳐 흐르다가 주름으로 패인 것을(종장) 남편인 고두석 시인은 훤히 들여다보듯 펼쳐 보이고 있다.
시조는 우선 이렇게 형식을 잘 갖추고 시상을 말끔히 정리해놓고 볼일이다. 그의 시조를 다루는 기량이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대를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시조다운 발상과 자유시적 발상은 이미 두 동기부터가 다르다. 자유시적 발상으로 시조의 형식에 구겨 넣으려고 하니 시상전개에 무리가 온다. 그러면 차라리 자유시를 써야지 왜 많은 욕심을 부려 시조를 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장안을 휩쓸 듯이 흰눈이 엄습한다
찧고 까부는 누리에 침묵하라 퍼붓는가
흰소리 악다구니 소리 빗장 채나 펑펑펑···
- 「폭설 」첫째수
최영균 시이도 시조의 형시글 잘 지키려고 노력하고 또 그러한 형식속에 문학성도 발현해보고자 노력하는 빛이 역력하다. 시조는 3장시지 2행시가 아니라는 것을 이 작품은 잘 말해주고 있다. 온 장안을 휩쓸 듯이 펑펑 쏟아지는, 그렇게 오는 눈은 온갖 세상의 잡되고 혼탁한 소리를 잠재우고, 침묵의 빗장이라도 채우듯이 소리없이 오고 있음을 한 편의 시를 통해 암시해 주고 있다.
윤원영 시인의 작품들도 시조 발상에 잘 길들여져 있음을 엿볼 수 있어서 좋다.
둘 또는 셋이서 아무 것도 챙기지 말고
적적한 산길 가듯 단순한 마음으로
어느 날 그냥 만나서
그냥그냥 가보시게.
- 「無爲寺에 가려면」첫수
우선 시상 전개가 무척 자연스럽고 무리가 없어 쉽게 잘 읽히는 작품이다. 이만한 작품 한 편을 빚어내기 위해서 막상 작가 자신은 각고의 연마와 언어의 조탁에 얼마큼 공을 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쉽게 접하고 읽히는 작품이라야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다음은 서연정 시인의 작품 한 편을 보자.
꽃을 밀어내느라 헉헉대는 뿌리처럼
기진한 숨 몰아 몰아 탈을 마저 벗는다면
동굴 속 어둔 복판에 화톳불 장하겠네요.
-「熊女 ·1」셋째수
패각(貝殼)과 같은 두꺼운 관념의 껍질을 깨고 두렵고 설레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자 몸부림치는 시인의 열정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아마 모든 시인은 일상속에 함몰 되어가는 진길르 발견하고 참된 자아를 세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서연정 시인도 그러한 일상속에서의 자기탈피를 위한 몸부림이 이 작품속에 은유적으로 잘 표현되고있다.
세상은 나 없이도 그렇게 돌아간다
세월은 강물처럼 쉬지 않고 흘러가네
어제는 산에 올라서 하루해를 보냈다
옛일들이 아련하게 가슴에 밀려왔다
시가 있는 강변에서 술 한 잔 마시고
오늘은 흘러가는 강물따라 강변을 걸었다.
강만수 시인의 「내일은」3수 1편 중 첫째 둘째수다. 셋째수에서는 내일에 대한 생각을, 첫째 둘째수는 어제와 오늘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평이한 수법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강 시인의 유장한 서정성이 시조 형식이 율격에 잘 맞아 자연스러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종장 처리에 좀더 공력을 들였으면 한다.
성안을 가득 메운
분홍빛
저
일사불란(一絲不亂)
밀려난 시간조차
함께 얼려 손을 잡듯
사람도 얼려 살아라 꽃인 듯이 그렇게
-「진례산성」둘째수
공영해 시인의 작품이다. 성안을 가득 메운 철쭉꽃의 현란함에 휘해 바라보노라면 저만치 밀려났던 시간도 지금 이 순간에 함께 어우러져 있음을 발견하다. 공 시인의 이러한 관찰력을 통하여 한 인생도 저렇게 아름답게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잘 관조해내고 있다.
마지막 김승규 시인의 작품을 살펴보자.
햇볕 드는 양지바리
잠을 자던 싸가지들
뜨뜻한 살가로움에
고개를 내미네
설매화 눈인사 살조
까댁이는 뻐꾹새
-「춘설」전문
그의 시작메모에는 태어나서 농촌을 떠난 적이 없다고 했고, 글을 써놓고 보면 글다운 글이 못 되는것 같아 늘상 습작하는 기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박하고 겸손한 생각의 일단을 잘 말해 주고 있듯이, 따뜻한 햇볕 양지 바른 곳에 눈을 맞고 피어난 매화, 고개를 내미는 새싹들, 이러한 풍경을 꾸밈없이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시상을 가다듬고 정진하다 보면 더욱 좋은 작품이 태어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시조문학 여름호에 실린 13인의 신작특집을 살펴보았거니와 비교적 쉽게 읽히면서 시조형식에 맞고 시상도 가다듬어 보려는 노력과 고심이 엿보이는 작품들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시조에서도 자유시처럼 복잡한 시상을 다 담으려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다 걸러 내버리고 진액만 담도록 노력할 일이다.
- 시조문학 2001/가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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