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1,645
|
 |
3,007 |
 |
5,069 |
 |
3,108,724 |
 |
|
|
|
|
|
|
|
작성일 : 03-04-18 12:52
 조회 : 2,003
|
▶ 영역 확대를 꾀하는 시조들 ◀
문흥술(문학평론가, 서울여대 교수)
1.
양식상 시조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은 자연과의 합일일 것이다. 천인합일의 유교 이념에 입각하고 있는 시조는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그 궁극적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대립하고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미분화 상태에 놓여 있는 세계에 시조 양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 미분화 상태는 사라지고 인간에 의한 자연 지배는 가속화된다. 특히 정보 사회로 일컬어지는 오늘날에는 각종 메커니즘이 유폐적 그물망을 형성한 채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있다. 푸코(M.Foucault)의 원형감옥의 비유를 통해 이를 설명할 수 있다. 정보사회는 원형감옥의 감시탑처럼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감시탑은 각각의 감방에 구성원을 가둔 뒤 각종 정보 메커니즘을 통해 구성원들을 철저히 길들인다. 구성원들은 자신이 감방에 갇힌 채 길들여지는 것을 모르고, 자신들이 감방 속에서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게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권력에 의해 삶의 세목까지 지배, 통제된다. 곧 모든 것이 정보 메커니즘에 의해 철저히 길들여지고 통제되면서 정보 메커니즘의 코드 기호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제임슨(F.Jameson)은 이러한 정보사회를 두고 자연은 물론이고 인간의 무의식의 욕망마저 코드 기호화하는 시대라고 규정하고 있다.
가령, 우리가 오지라고 생각하는 어떤 곳에 가서 아름다운 야생화 한송이를 보고 있다 상상하자. 겉으로 보면 그 꽃은 정보 메커니즘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꽃 역시 정보 메커니즘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한 기호일 뿐이다. 비유하자면, 그 꽃 역시 도처에 설치된 각종 정보 메커니즘이 지배하는 고래뱃속같이 닫힌 공간에 있는 한 상품 코드 기호일 뿐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지향하는 시조이 입지점은 크게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황폐화된 자연을 대상으로 하여 사라진 아름다운 자연과의 합일을 몽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코드 기호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자연과의 합일에 대한 몽상도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조가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시조 본래의 서정성을 유지하면서 시선을 확장시켜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글에서는 시조의 영역 확대를 꾀하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하여 논의를 하고자 한다.
2.
시조의 영역 확대라는 입장에서 지난 계절의 작품들을 살펴볼 때, 먼저 오늘날 사회적으로도 그 관심의 폭이 증대되고 있는 자연 파괴와 환경 오염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주목된다. 시조의 뿌리가 자연과의 합일에 있다면 물질문명에 의해 황폐화되어 가는 자연에 대해 시조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물 속에 터를 잡고, 도움주며 도움받는
보랏빛 물옥잠화 찾아 오는 흰 나비떼
더불어 무리져사는 부드러운 안식인데
떠도는 흔들림도 몸에 배여 익숙하다
실잠자리 왕잠자리 물풀위의 산란처가
오염된 물로 인하여 길을 잃고 어지럽다
고약한 냄새로 모기떼 몰려와서
답답한 수몰지구 사람처럼 핏기잃어
생명의 운동장 같은 남녘은 어딜까.
-김경자「사라져 가는 것 중에 29수초 」전문
김경자의 시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대조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부에서는 물옥잠화와 흰나비떼가 어우러져 서로 공생하고 있는 모습을, 후반부에서는 썩어 가는 물과 모기떼로 인해 산란처를 잃어버린 잠자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 대비를 통해 점점 황폐화되어 가는 자연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오염된 자연을 '핏기 잃은 수몰지구 사람'에 비유함으로써 자연의 오염뿐만 아니라, 그 오염으로 인해 삶의 생기를 잃어 가는 우리들 인간의 모습가지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핏기 잃은 인간과 오염된 자연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 '생명의 운동장 같은 남녘'에 대한 강한 지향을 드러내고 있다.
지구촌의 환경오염의 정도는 이제 심각한 수위에 이르고 있다. 예전과는 다른 기상 이변은 더 이상 이변이나 징후가 아니라, 매년 되풀이되는 통례적인 일들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의 경우만 하더라도 이제 춘하추동 사계절의 오묘한 변화는 사라지고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만이 피부에 와 닿는다. 이런 기후 변화는 지구 오존층의 파괴로 더욱 가속화 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잠깐 엔트로피(Entropy) 세계관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엔트로피 세계관에 의하면 지구는 어차피 무질서가 증가하여 결국은 멸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장제일주의와 물질적 진보에 입각한 기존의 세계관은 그런 무질서에 질서를 가한다는 미명하에 자연을 인위적으로 개발해왔다. 산을 깎아 스키장이나 콘도, 혹은 골프장을 만들고, 댐을 건설하는 등 자연을 인공적으로 변화시켜 왔다. 그리하여 겉으로는 자연의 무질서가 사라지고 질서가 잡힌 듯 보인다. 그러나 엔트로피 세계관에 의하면, 자연의 인공적 재편을 무질서를 줄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질서를 배가시키는 것으로 판명된다. 곧, 자연을 본래 그대로의 상태로 유지해도 무질서가 자연적으로 증가하여 그 수치가 지금 50이 될 텐데, 질서를 잡기 위해 또 다른 에너지를 소비함으로써 무질서의 수치가 80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100년 후에 무질서가 100이 되어 멸망할 지구가 50년도 못 가서 무질서가 100이 되어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자연을 개발할 것이 아니라, 있느 그대로의 자연과 더불어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 엔트로피 세계관이다. 결국 엔트로피 세계관에 의하면, 더 이상 물질적 성장과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자연을 인공저긍로 가공하는 행위는 인간과 자연 모두 공도동망(共倒同亡)이라는 파국으로 치달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점에서 다음 김호영의 시는 주목된다.
내 삶의 주위에서
보아 온 산들 강들
그리고 나무와
풀꽃과 새들의 노래는
늘 있는 예사로움에
못 느낀 한 폭 회화
하늘 내린 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고서야
신이 준 자연의
아름다움과 귀중함을
뼈아픈 읾음 속에서
그때야 알아낸다.
-김호영「사랑같은 것 1」전문
자연의 경우, 한번 파괴되면 그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산, 강, 나무, 풀꽃과 새들은 그들이 늘 우리들 주위에 있기에 그것이 소중한 것인줄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다가 그것이 황폐화되면서 사라질 때, 비로소 우리들은 그들의 소중함과 귀중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뒤늦게 뼈아픈 후회를 해보지만 자연을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된 상태이다. 시인은 그런 뒤늦은 후회를 하기 전에 '신이 준 한 폭의 회화'같은 아름다운 자연을 잘 지키고, 이를 통해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공존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지금, 새만금 개발을 둘러싸고 논의가 분분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자연을 한번 황폐화되면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물질적 편리함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광대무변한 변화와 심오한 섭리에 고개를 숙이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히 요청된다. 이 점을 김명호와 김영덕의 시에서 읽을 수 있다.
가을이 나간 자리 철새들 밀물인데
못다 푼 단 자리 셈이 지표를 뒤집어서
삼시(三時)를 잃은 나그네가 혼절을 넘나든다.
저, 장관을 길러오는 노상주차장을 보라.
타오르는 하심(下心)으로 어깃장을 풀으면
새들은 해를 부르고 고도(古都)는 일어선다
-김명호「샘통」전문
시인의 설명에 의하면, 샘통은 철원 민통선 안의 철개 도레지를 군(郡)이 철새보호지역으로 지정하자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는 곳이다. 지역 개발의 입장에서 볼 때 보호지역의 지정은 지역 발전을 방해하는 족쇄일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입장에 설 때, 샘통의 철새보호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시인은 가을이 끝나는 어느 날 샘통에 간다. 그곳에 마치 밀물이 밀려오듯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있다. 그러나 그 철새들은 먹을 것을 찾지 못해'삼시(三時: 하루 세 끼)를 잃은 나그네'처럼 힘을 잃고 있다. 그들이 기력을 찾아서 저 푸른 창공으로 힘찬 날개짓을 하고, 또 다음 해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샘통을 철새보호지역으로 지정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시인은 1연에 제시하고 있다.
2연에서 시인은 노상주차장'은 아마도 샘통의 장관을 묘사하고 있다. '장관을 이루는 노상주차장'은 아마도 샘통에서 겨울을 날 철새들의 무리를 비유하는 것일 것이다. 그 무리들 앞에서 인간은 어깃장(어기대는 행동)을 풀고 새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새들은 인간들이 진정 되찾아야 할 생명과 부활의 해를 얻게 되고, 더불어 옛날 철새와 함께 공존하던 시절의 고도(古都), 곧 인간가 자연이 합일되는 세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할퀴이고 찢기어서 하얗게 부서져도
긴 세월 끄떡없이 견뎌 온 네 가슴엔
내 모를 깊은 뿌리가 사랑으로 크더구나
해무에 눈 가리워 지척이 천리지만
막막한 추억들이 불씨로 살아남아
기진한 기다림으로 깜박이고 있구나
끈끈한 정한(情恨) 중에 원죄를 쪼아내어
끝없이 돌고돌아 흩어질 부표위에
반드시 돌아오리란 좌표 한 점 심는가
-김영덕「섬」전문
김영덕은 절해 고도의 섬으로부터 대자연의 섭리를 배운다. 긴 세월 수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온갖 상처를 받고, 또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고도로서의 섬. 그러나 그 섬은 오랜 세월 그런 외로움과 아픔을 내면으로 응축하여 견디어 내면서 뿌리깊은 사랑을 키워왔다. 사랑하는 대상을 끝없이 기다리는 섬. 그러면서 사랑하는 대상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하에 망망대해에 그 대상이 돌아올 좌표로 영원히 남아 있는 섬.
시인은 그 섬을 자신과 합일시킴으로써 섬이라는 보잘 것 없는 자연의 대상을 통해 삶과 인생의 섭리를 깨닫는다. 오늘날 시조를 쓰는 것도 이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황폐화된 자연, 그로 인해 거의 회복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인간과 자연이 합일되는 세계, 그러나 그 세계의 부활을 꿈꾸면서 자연 파괴를 비판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과 자연이 합일되는 세계의 좌표가 되는 것, 그것이 오늘날의 시조의 운명이 아닐까?
3.
오염되어 가는 자연에 대한 시선 확대는 시조가 현실의 측면에 보다 밀착되어 가는 한 단면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시조의 현실 밀착은 더 이상 시조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채 청풍명월을 읊조릴 수 없다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 그런 측면에서 생활 속에 그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점에 대해 천착하는 작품들도 주목된다.
서양술 한 병 값이
시집 100권 값이라
이런 떡칠 놈의 세상!
떡 같은 말
안주한 지 오래
취하면
세상이 美人인 걸
비틀비틀 안아보는
밥주걱에 따귀 맞는 흥부의 心情이라니
왈칵 서러운 눈
몇 개 밥풀이 고마워서
한 알씩 떼어먹는 맛이 간간찝질하게 기막혀서
-김영수「각설이 타령 」
시집 100권 값과 맞먹는 서양술의 대비를 통해 과소비풍조가 만연하고 시가 천대받는 우리 사회를 '떡칠 놈의 세상'이라고 풍자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시를 그 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풍성함의 척도로 볼 때 우리 사회는 시가 자리잡을 터전이 거의 전무하다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난무하는 것이라곤 고급의 서양술로 상징되는 호화사치품과 그 사치품에 현혹된 술 취한 이들 뿐이다. 그런 사회에서 시인과 시는 자리잡을 여백이 없다. 배가 고파 형 놀부에게 가서 주걱으로 뺨을 맞고도 뺨에 붙은 밥풀을 감지덕지하는 훙부처럼, 이제 시인과 시는 그런 처량한 신세로 내 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적 자산인 시가 업슨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한 편의 시를 읽고 시심을 되찾는 사회가 될 때, 물질만능주의와 과소비풍조도 사라질 것이며,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인은 지금의 처량한 신세를 견디면서 오로지 시쓰기에 전념해야한다고 시인 스스로 다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상금이 걸린 후
너는 가고 없구나
풍만한 운동장에
수배 당한
너의 함성...
왼 가슴
열어 젖혀도
눈초리는 없구나
-박구하 「게시판 앞에서」
우리 사회는 물질만이 최우선시하는 천민 자본주의라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아가 그런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의 결여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박구하는 이에 대해 일갈을 가하고 있다. 게시판에 현상금과 함께 수배 당한 인물은 사회의 모순을 보고 모순이라고 비판하는 비판적 지식인의 비유로 읽힌다. 그런 지식인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는 없다. 아니 우리들 모두의 가슴속에 비판의식 자체가 결여되어 있다. 그냥 모순된 일상에 안주하면서 제 일신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이면서 기회주의적인 인간들만 있을 뿐이다. 모순을 모순이라고 외치는 함성도, 잘못된 것을 감시하고 개혁하려는 눈초리도 없는 사회, 그 사회가 바로 지금의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고 시인은 비판하고 있다.
4.
시조가 현대에서 그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환경문제나 사회문제 등에 대해 시신을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시조 양식의 틀을 벗어나서는 결코 성립될 수 없다. 시조의 서정성을 근간으로 한 시선 확대만이 시조가 시조로서 그 본질을 지켜나갈 수 있는 길일 것이다. 파괴 되어 가는 자연을 비판하고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사회를 비판하면서 시조는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이 합일되는 세계일 것이다. 이제 시조는 그런 세계의 개진을 가로막는 것들에 대해 시선을 확대하면서 영역의 확산을 꾀할 때 지금보다 더욱 풍성하고 가치 있는 양식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 시조문학 2001.여름호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