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3,007
|
 |
2,789 |
 |
5,069 |
 |
3,107,079 |
 |
|
|
|
|
|
|
|
작성일 : 03-04-15 09:55
 조회 : 2,009
|
▶ 낯선 타자의 얼굴들 ◀
신웅순
우리들의 사유방식을 두 가지 관점엣 설명할 수 있다. 주제에로 회귀하는 사유방식과 주제로부터 떠나는 사유방식이다. 전자를 존재론, 후자를 형이상학이라 부른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욕망할 수 없는 최고의 선으로 전재라를 초월하여 존재한다. 이를 형이상학적 욕망이라고 한다. 존재를 떠나 어떻게 낯선 세계로 초월하며, 어떻게 무한자와 만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런 무한자나 낯선 세계를 타자라 부른다.
시조 텍스트는 존재를 떠나 무한자나 낯선 세계로의 여행이다. 거기에 최고의 선이나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시조 텍스트가 그런 최고의 선, 진리와 만난다고 했을 때 타자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현현하는가. 시조 읽기는 이에 대한 논의에 다름 아니다. 인간은 존재 안에 존재하지 않고 언제나 미지의 땅으로 떠나고자 한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그러한 본질들이 시조 텍스트 안에 타자로 존재,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텍스트 시조 읽기는 이러한 타자의 얼굴 읽기에 다름 아니다. 시조 텍스틀를 통해 타자는 우리들에게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가. 들어야할 텍스트,들을 수 없는 텍스트,듣지 말아야할 텍스트 등이 있을 수 있다. 독자는 타자의 이런 다중의 목소리들을 조립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움,저항,웃음,무서움,아픔 등 텍스트 타자의 눈금들을 읽어내야하는 것이다.
거미는 이슬비가 내리기를 기다렸다
이슬비를 물어다가 보석처럼 꿰맸다
아, 저기
거미줄에 줄줄이
걸려있는 은하수
- 박석순의 '거미줄'전문
거미는 먹이를 잡기 위해 끈끈이 줄을 뽑아 쳐놓은 그믈막이다. 존재의 세계이다. 시인은 존재의 땅에서 미지의 욕망의 땅으로 떠난다.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환치시키기 위해서 떠난다. 또 떠나야하지만 잠시 머문 또 다른 대상이 텍스트가 욕망하는 자리이다. 여기에서 타자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대상인 존재의 거미줄을 또 하나의 대상인 존재 은하수로 대체했다. 끈끈이 줄로 이슬비를 보석처럼 꿰매었다. 꿰매고 나니 그것은 줄줄이 걸린 은하수였다. 존재 넘어 욕망하는 자리이다. 거미줄의 존재는 존재하지만 은하수의 세계는 거미줄 세계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거미줄의 세계에서 낯선 은하수의 세계로 떠난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바라본 은하수의 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구나 어렸을 때 저 은하수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궁굼해했을 것이다. 갈 수 없는 일이지만 우주선이라도 타고 가고 싶은 곳,어쩌면 우리들의 꿈과 이데아가 있을 것 같은,존재의 저편에 진리가 있을 것 같은 존재,그 곳이 바로 은하수의 세계이다. 그런한 꿈을 거미줄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은하수라는 타자의 얼굴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은하수는 지상의 우리들에게 지고지순한 미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무한자의 얼굴을 보고 욕심 부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낙엽지는 만촌동의 저녁 노을 밟고간다
어젯밤 노숙자가 전봇대에 기대서서
방뇨한 흔적마다에 피빛물이 베어있다
온 세상에 자욱한 생살이 타는 냄새
마침내 칼을 들고 잘라내는 내 뿌리는
그대로 두어도 그만 시름시름 마르는데
그래도 웬 일인지 눈물은 쏟아져서
찢어져 벌레먹은 가슴 속을 적시는 날
설 땅은 어디에도 없고 절망만이 쌓인다.
- 류상덕의 '가을에 와서'전문
작업복에 묻은 세월 흙먼지를 털어낸다
오로지 밥을 위한 가장의 지친 기다림
금속성 기계톱날이 새 봄빛을 자른다
- 추창호의'밥을 위하여'둘째수
전자의 텍스트는 노숙자를 통해서 후자는 노동자를 통해서 타자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는 대상을 관찰하면서 후자는 자화상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특별한 수사가 없어도 강한 메시지로 다가오는 것은 진실한 삶을 그대로 표출했기 때문이리라.
텍스트들의 타자 얼굴은 회의적이고 비극적이다. 타자는 어떤 메시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노숙자의 방뇨 흔적에서 자신의 피빛 절망을 보고 있다. 주체가 주체를 바라보며 타자의 얼굴을 읽고 있다.
추창호의 텍스트에서는 금속성 가계 톱날이 새 봄빛을 자르고 있다고 했다. 타자 인식은 존재를 넘어 낯선 세계를 소화해내는 일이다. 어려운 삶만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텍스트의 타자는 기계 톱날인 그 상징물들에게 윤리적으로 행동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추창호의 종장은 수사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새 봄빛'은 '새 봄빛'이 아닌 '새 봄빛'을 떠난 상징물이다. 새 봄빛은 희망,신세대,새로운 세계 외에 다른 어떤 모습으로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을 기계 톱날이 잘라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수사는 독자들에게 입체적인 의미를 보여주게 되어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시조의 묘수는 누구도 창조해낸 적이 없는 수사를 창조해내는 데에 있다. 더 이상 쓰게 되면 진부하다.
내 영혼의 수풀 속에 딱따구리 한 마리 산다
피로와 나태가 감겨
혼곤해지는 순간이면
딱,
딱,
딱,
부리를 쪼아떠
번쩍
불침을 놓는다
- 김호길의 '딱따구리'전문
2001년 인터넷 시조박물관도 추천되었던 텍스트이다. 자연에서 살아가야 할 딱따구리를 텍스트 주체의 낯선 영혼 속으로 끌어들였다. 자연속으로 돌아가야할 딱따구리가 미지의 낯선 비존재의 땅으로 떠난 것이다. 왜 영혼이라는 비존재의 땅으로 떠나야했는가. 낯선 세계로 떠난 딱따구리는 주체에게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독자들이 지각되지 않는 세계는 배경 속에 감추어져 있다. 텍스트의 주체 바깥,시인의 낯선 영혼 속으로 떠난 타자이다. 욕망의 자리로 떠난 타자가 아직도 지각되지 않은 주체를 일깨워 주고 있다.나태해질 때마다 불침을 놓는 타자의 얼굴은 텍스트 주체에게 깨침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타자로 하여금 텍스트 주체를 행동으로 움직이도록 명령하고 있다. 불침이라는 모르스 부호로 지각하지 못한 텍스트 주체를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다 나가고 없는 뜰에
목련화가 피었네
반쯤은 가지를 이승에
나머지는 저승에
골고루 사람이 없는 데 따라
고이 여는 꽃이여
- 박재삼의 '부재'전문
부재의 얼굴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아무도 살지 않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 목련화가 피고 있다. 이승도 아니고 저승도 아닌 곳에 타자가 있다. 부재를 통해 말해주고 싶었던 것은 존재 너머 존재의 세계일 것이다. 그 세계는 진리와 이데아의 세계이며 형이상학적 욕망의 세계이다. 가지는 이승이라는 존재와 저승이라는 부재 사이에 걸치고 있다. 사람이 부재하는 곳을 따라 목련화는 골고루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왜 부재하는 곳에 피어나는가.
이것이 텍스트의 화두이다.분명한 것은 보이지 않는 타자의 존재이다. 이 존재는 인간의 본질, 순수나 아름다움같은 것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아름다운 목련을 피어날 리가 없다. 주체는 객관적 상관물 목련화를 통해 타자의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다.
순풍에도 이 저리 흔들리는 타관의 길에
기대일 언덕배긴 남녘길 가뭇한 점
아련한 눈썹달 하나 주소 불명의 길을 간다
- 이영주의'초승달'전문
타자의 얼굴은 형이상학의 대상, 규정 불능의 무한자 즉 신을 닮고 있다고 한다. 레비나스는 신은 타자의 얼굴을 통해 내게 말을 건넨다고 한다. 타자는 저 높은 곳의 현시이며 이 현시 속에서 타자의 얼굴을 통해 신은 나타난다고 한다. 결국 텍스트는 신이 텍스트 속의 타자를 통해 독자들 앞에 현시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잇다.
필자는 어느 평론에서 시는 신이 주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한 적이 있다. 그 신은 텍스트를 통해서만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시인은 무한자와의 참을성있는 대화를 기다려야한다. 물론 그 신을 언어의 조탁, 인격, 인내, 장애 등 그 무엇일 수도 있다.
텍스트는 주소불명이라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있다. 기대일 곳은 남녘길 가뭇한 점 하나이다. 눈썹달이 욕망하는 곳은 구체적인 장소가 없는 주소불명의 자리이다. 주소불명의 자리로 떠나야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숙고해볼 일이다. 주소 불명의 길을 가고 있는데도 딴 길을 고집하고 있는 주체들에게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한자에로의 초월은 바로 주체와 타자와의 만남이지 주체와 타자와의 떠남이 아니다. 주체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지 주체에게 침묵하는 자리는 아니다.
비중이 종장에 주어졌다해서 초장과 중장을 쉽게 처리할 숮는 없다. 시조는 특성상 몇 개의 돌을 얹어서 집 한 채를 지어야한다. 기초부터 잘못되면 순풍에도 흔들린다.
유선의 텍스트 '고향생각', 김석철의 텍스트 '거울', 손상철의 텍스트 '+&-', 김광순의 '인터넷 세상' 도 읽어볼 만한 소재들이앋. 각기 또 다른 특성이 있는 외의 타자들을 남겨놓았다.
시조시인, 평론가, 중부대교수
-시조문학 2002/봄호-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