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회 기본 > 시조평론 > 시조는 3장이어야 하고 시조다워야 한다/ 신웅순

가곡은 시조시를 노랫말로 해서 불리워지고 있는 시조 음악이다. 가곡 이전에는 삭대엽, 중대엽, 만대엽이 있었다. 광해군 2년 1610년 양덕수가 엮은 『양금신보』에는 만ㆍ중ㆍ삭대엽이 고려가요인 진작에서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만ㆍ중ㆍ삭대엽은 현 정가인 가곡의 조종격이다. 진작은 정과정곡의 다른 이름으로 의종 5년 1151년 정서가 동래로 유배당했을 때 지은 곡이다.

시조창은 1800년 전후에 생겼다. 시조의 명칭은 신광수의 『관서악부』(1762)에 처음 보이고 악보로는 서유구(1764-1845)의 『유예지』와 이규경(1788-?)의 『구라철사금보』에 처음 보인다. 그 이전에는 시조가 시조 대신 가곡의 명칭으로 불리워졌다. 가곡은 시조를 노랫말로 해서 5장으로 부르는 정가 음악이다. 이렇게 가곡, 시조는 창을 전제로 해서 불리워졌다. 이것이 1920년 대 시조부흥운동 이후 시조 현대화라는 미명아래 시조는 하나는 시조창으로 하나는 정형시로 갈라져 오늘에 이르렀다.

아무리 현대 시조가 음악으로부터 탈각되었다하나 시조는 태생적으로 음악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이를 인식하고 있다면 단장시조이니 양장시조이니 혼합시조이니라는 말은 아예 존재할 수가 없다. 시조 자체가 3장인데 시조의 3장을 어겼으니 그것은 이미 시조일 수 없다. 5장 가곡으로도, 3장 시조로도 부를 수 없다. 가곡이나 시조로 부를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시조라고 말할 수 없다.

법당은

기척도 없고

댓돌 위에 앉은

햇살

-박석순의 「고요」 전문

박석순의 절장 시조집 『벌집』에 있는 시조(?)이다. 1장만이 있다.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2장이 모자란다. 장이 모자라니 시조일 수 없다. 이것은 짧은 시일뿐이다. 물론 가곡으로도 시조창으로도 부를 수 없다. 가곡으로는 고작해야 2장을, 시조로는 1장 밖에 부를 수 없다. 그 무엇으로도 시조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현대시조라해도 가곡이나 시조창으로 부를 수 있는 형식적인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것은 시조라고 말할 수 없다. 시조는 음악성이 거세된 정형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조 형식을 갖추고 있다면 단장ㆍ양장ㆍ혼합시조도 시조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시조가 시조이게 하는 것은 가곡 5장, 시조 3장으로 부를 수 있는 형식 때문이다.

야하압! 날카롭게 바람 가르며 가르며

한 줄기 푸른 섬광 번개처럼 춤추었지.

모조리 내 실핏줄이 자리러지고 자지러졌지.

신검 우는 소리에 싸울아비 고개 들었지

백개 칼을 재단하고, 백 개 칼을 부러뜨리고, 한 치 틈도 허용 않는 만 번 담금질했지. 만 덩이 숯 재가 되도록 풀무질 풀무질 거푸 했지. 달아오른 칼 빛으로 이글거리는 메질꾼 눈, 살과 뼈 칼 속 에 넣고 정신을 정신없이 두드리면 시간의 샛강 물도 낮과 밤 가로질러 소리 죽여 흘러갔지.

하늘엔 새털구름 자락 초가을 비질했지.

-중략-

- 윤금초의 「신검」일부

위 시조는 단시조와 장시조가 섞여진 시조(?)이다. 원 텍스트는 ‘단시조+장시조+장시조’이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혼합 시조(?)이다. 가람은 ‘단시조+단시조+…’ 로 연시조(?)라는 것을 창안해냈다. 이 연시조는 단시조가 연이어진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연이어진 연단시조이다.

시조의 문학적 분류는 ‘단시조(단형시조), 중시조(중형시조), 장시조(장형시조)’ 로 분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시조는 3장에서 1장이 벗어난 형태이지만 그래도 3장만은 제대로 갖추었다. 당시에는 대단한 파격이었고 반란이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작자 미상의 장시조들을 무리없이 소화해냈다. 장시조는 지금도 많은 시조인들에 의해 사랑을 받으며 사설시조로 불리워지고 있다.

위 작품은 단시조도 중시조도 장시조도 아니다. 물론 가곡으로도 사설시조로도 부를 수 없는 형식을 갖고 있다. 시조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다. 축구로 말하면 자격을 잃은 레드카드에 해당된다. 표지에도 시조집이라 하지 않고 시집이라고 했다. 시조의 종류별 몇 개를 조합함으로써 연이은 3장 시조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가 ‘단시조+장시조+절장시조+양장시조’도 4종류를 조합하여 시조라고 실험하려들지도 모른다. 시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백년에 걸쳐 만들어진 우리 민족의 역사이며 삶이며 철학이다. 우리가 수백년에 걸쳐 정제되어 만들어진 우리 민족의 고유한, 우리 민족만의 3장의 창조물이다.

시조가 3장을 갖추었다해서 다 시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이는 시조만의 정밀한 질문일 수 있다. 시조는 시조다워야 시조로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시조에는 음보율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음수율도 있고 장시조에는 내재율도 존재한다. 미세하게나마 강약율, 고저율, 장단율도 발견할 수 있다. 소리의 반복 양식은 아니지만 의미율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조를 음보율로만, 음수율로만 몰고 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조가 음수율이냐 음보율이냐 하는 것은 아직도 고구해 보아야할 문제이다. 정격의 시조라면 대체로 음보율에 무게를 두고 논의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3장 6구 45자 내외는 음수율에 기반을 둔 개념이고 3장 6구 12 음보는 음보율에 기반을 둔 개념이다.

필자는 ‘시조 음보와 시조창ㆍ가곡의 박자 상관 고’에 대해 연구한 바가 있다. 이 논문에서 가곡과 시조창의 각과 시조의 음보가 서로 대응, 시조가 음보율임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이로 본다면 시조의 형식은 3장 6구 12 음보가 설득력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반딧불 서신처럼 외로운 산정 초소

괴정고개를 넘다 문득 아ㆍ름ㆍ다ㆍ운 꽃으로 서 있는 병사를 보았다. 하얀 들꽃 한 무리 가을 이 오는 바다로 흔들림 없는 총을 겨누고 깜빡이는 어둠 사이로 별을 쏘아 올리며 꼿꼿한 그리움 들을 직각으로 꺾고 있었다.

- 박권숙의 「신기산 기슭 2」전문

이 시조는 제 12 회 중앙 시조 대상 신인상 수상작이다. 필자의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이 작품은 아무리 읽어도 시로 읽혀지지 시조로 읽혀지지 않는다. 위 시조는 세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행이 한 문장으로 되어 있고 2행이 두 개의 문장으로 되어있다. 아마도 작자는 ‘꼿꼿한/ 그리움들을/ 직각으로/ 꺾고 있었다’를 종장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장과 구, 음보의 처리에 혼선이 있었던 같다.

언뜻 보기에는 장시조처럼 보이나 그도 아니다. 아예 종장이 없다. 두 장 밖에 없다.

“하얀 들꽃 한 무리 가을이 오는 바다로 흔들림 없는 총을 겨누고 깜빡이는 어둠 사이로 별을 쏘아 올리며 꼿꼿한 그리움들을 직각으로 꺾고 있었다.” 여기에서 종장을 분리해내야 되는데 분리해낼 수가 없다. 주어는 ‘하얀 들꽃 한 무리’이다. 이 ‘하얀 들꽃 한 무리’가 ‘총을 겨누고’, ‘별을 쏘아올리고’, ‘그리움들을 직각으로 꺾고 있었다’와 호응되고 있다. 이를 분리해 내려면 하나의 문장을 떼어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의미의 경중을 떠나 종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중략…

괴정고개를 넘다 문득 아ㆍ름ㆍ다ㆍ운 꽃으로 서 있는 병사를 보았다. 하얀 들꽃 한 무리 가을 이 오는 바다로 흔들림 없는 총을 겨누고 깜빡이는 어둠 사이로 별을 쏘아 올리고 있었다.

꼿꼿한 그리움들을 직각으로 꺾고 있었다.

이쯤이면 형식적으로는 장시조의 형식을 갖춘 꼴이 된다. 필자는 본고에서 형식만을 문제 삼았다. 필자가 인용한 시조(?)들의 작품성은 뛰어나나 이것이 시조다운 것인가는 의문의 여지가 있어 정밀하게 읽어본 것이다. 인쇄 상 종장이 떨어져 나간 것인지, 그렇치 않다면 이 작품은 시조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언 강에

돌을

던진다

겨우내

떠 있는 돌

강물이

풀릴 때까지

무게를

못 버리고

새봄의

양수 속으로

가라앉았다

뜨는

돌

- 박기섭의 「뜨는 돌」전문

얼핏 행배열을 보면 자유시 같은 느낌이 든다. 초ㆍ중ㆍ종장이 제대로 구획되어 지고 통사 배열, 주술의 호응도가 정확하다. 초장의 1음보와 종장의 1음보를 연(장?)으로 독립시켰다. 시조시인들이라면 머릿속에서 이를 초ㆍ중ㆍ종장의 시조 형식으로 바르게 읽어낸다. 이 시조는 아무리 뒤틀어놓아도 시조로 읽혀질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갖고 있다. l장을 재구성한다면 형식상으로는 충분히 창으로도 부를 수 있다. 이 두 시조로 시조는 시조다워야 한다는 말이 저절로 증명이 된 셈이다.

아무리 시, 시조라 한들 장, 구, 음보와 문장과의 관계를 정확히 해둘 필요가 있음을 상기해야한다. 자칫 잘못하면 시로 오인하기 십상이다. 시조의 시로서만 창작되었다해도 시조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정완영 선생님과 민병도 시인의 대화 중 정완영 선생님의 말을 인용하면서 논지를 맺고자 한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미국과 캐나다의 시인들이 찾아와 시조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곤 하는데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지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요.(조용히 하이쿠 두 편을 암송하셨다.)

낡은 못이여 개구리 뛰어드는 퐁당 물소리

조용하구나 바위에도 스며드는 저 참 매미소리

이렇듯 일본인들은 하이쿠를 6백-7백 년이 되어도 하나도 흩트리지 않고 지키려고 애쓰고, 영국의 소네트도 그런데 우리만이 왜 자꾸 앞질러 버리려고 애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것을 지키면서 조금씩 더하는 게 진정한 우리 것이 아니겠어요.

- [한국시조문학] 2호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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