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극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이 시편은, 1957년 해군 함정을 타고 항해하던 중 서해상에서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첫 수는 일몰 직전의 장엄한 광경을 담고 있고, 둘째 수는 일몰 순간의 아쉬움을, 그리고 마지막 수는 일몰 직후의 월출 광경을 묘사하고 있는 시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시조로서는 매우 드문 묘사적 심상이 많이 배치되어 있고, 아름다운 낙조(落照)의 풍경에서 감동을 느끼는 화자의 마음도 함께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이 끓는다”든지 “구름이 마구 탄다”든지 하는 묘사는 사실 과장을 동반한 것이기는 하지만, 노을 진 서해 바다의 풍경으로는 가장 선연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화자는 태양이 “둥둥 圓球”가 되어 “검붉은 불덩이”로 변해 가는 과정과 그것이 수평선 위의 한 지점에 머무른 채 접어드는 과정을 격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접어드는 과정은 물론 해가 지는 풍경이겠지만, 화자의 내면에서 격정이 가라앉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직도 해는 반이나 남은 채로 마치 큰 바퀴가 피로 물들며 가라앉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 일몰이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화자의 시선은 멀리 있는 섬들이 다시 환히 얼리는 장면으로 옮겨지고, “彩雲만 남고/ 정녕 없어졌”다는 감탄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때 “아차차”라는 감탄사는 일몰 직후 화자가 가지는 아쉬움을 나타낸다. 마지막 수에서 화자는 구름 빛도 가라앉고 섬들도 어두워지는 풍경을 통해 일몰의 완성을 노래한다. 그 어두워지는 순간에 끓던 물이 검푸르게 잔잔해지고, “살진 반달”이 배 위로 솟아나지 않는가. 이 모든 과정이 바로 ‘해’의 격정이 차분히 가라앉고 ‘반달’이 떠오르는 바다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艦”은 화자의 실제 위치를 알려주는 동시에, 자연의 장관(壯觀)과 인간의 시선이 어우러지고 있음을 예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어허 저거/ 아차차/ 정녕’으로 이어지는 경이의 수사(修辭)들을 동반한 감정 직서(直敍)를 통해 풍경과 시선의 일체화를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이처럼 이태극 시인은 첫 시집에 실려 있는 〈山딸기〉 〈三月은〉 〈西海上의 落照〉 등을 통해, 자연 현상들(생명/ 계절/ 일몰)에 대한 참신하고도 섬세한 묘사와, 자연현상과 공존하는 인간의 시선을 유추하고 통합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이 호혜적으로 공존하는 풍경을 집중적으로 시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전집의 편자인 이숭원 교수가 “자연의 벗이 되어 조수 초목을 돌보며 사는 것이 아버님의 꿈이었고, 달빛이 비치는 강을 바라보며 솔직담백한 심정으로 자연과 인생에 대해 시조 한 수를 지어 읊조리는 것이 아버님의 이상이었다.”(후기, 523면)라고 설명해 주고 있는 대목 역시, 이러한 월하 시조의 탐색에 유력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