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이 길다고 사설시조가 아니다. 거기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다. 제대로 알고 지어야 한다. 시조가 일부 시조시인들에 의해서 변격, 파격으로 가듯 요즈음 사설시조도 그렇게 가고 있음을 본다. 이에 다음 사설시조 시작 이론을 올린다.
사설시조(장시조)
사설시조(辭說時調)는 ‘장시조’, ‘장형시조’라고도 부른다. 본래는 만횡청(蔓橫淸)이라 하여 창법의 명칭으로 쓰였다. 만횡(蔓橫)의 내용은 가곡원류(歌曲源流)에 의하면 “엇농(旕弄) 즉 질러내어 흥청거리는 창조이며, 세 수의 큰 가락으로 희롱조로 흥취를 돋우는 것”이라고 하였다. 어쩠든 이때의 장형시조(長型時調)는 형식면에서 길이가 길어졌고 가사투(歌辭套)와 민요풍(民謠風), 대화(對話) 등이 삽입되어 나타난다. 내용면에서는 구체적인 이야기와 비유(譬喩) 및 인간본성의 적극적 표현이 자유분방(自由奔放)하게 표출되었다. 그것이 문학양식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그 시작은 정철(鄭澈,1536~1593)의 <장진주사 將進酒辭>에서부터이다. 그것이 조선 중기까지 간헐적(間歇的)으로 나타나다가 조선 후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대개 17세기말부터 19세기말까지 지속된 것으로 추측한다. 종장은 비교적 평시조의 율격과 비슷하나 초ㆍ중장은 평시조의 율격에서 크게 벗어나 길어진 형태이다. 작품에 따라서 다르나 중장이 가사처럼 길어진 것도 있다. 그 발생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조선 후기 사회변동과 음악의 발달에 힘입어 평시조가 변형ㆍ파격을 이루었다는 견해와 조선 중기부터 민간가요가 시조창에 얹혀 불린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내용은 평시조가 사대부의 사상을 담았던 것과 달리, 이것은 익살ㆍ풍자와 분방한 체험을 표현한 평민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내용에 따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가장 작품성이 뛰어나며 당대 민중적 삶과 진솔한 정감을 역동적으로 노래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으로 <바람도 쉬여 넘는 고개……>ㆍ<서방님 병들여 놓고……>ㆍ<귓도리 져 귓도리……>와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② 성적 충동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당대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트리는 작품들이 있다. <반(半)여든에 첫 계집을 하니……>ㆍ<간밤의 자고 간 그놈 아마도 못 이져라……>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제목만 보아도 외설스럽다. 점잖은 사람은 입에 담기도 민망한 내용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사설시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단순하지 않다. 그 시대의 도덕의 허위성을 폭로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 평가를 하는 평자도 있고, 반면에 삶의 가치를 성적 쾌락만으로 보는 퇴폐적ㆍ허무적 사고를 유포했다는 시각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 시대의 그릇된 가치규범과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저항의식의 표출로 볼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근대적 삶을 그려낸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밖에도 조선 후기 도시의 발달이나 현세적 삶에 대한 긍정적인 면과 사대부적 삶에 대한 동경 등 다양한 내용이 있다.
이러한 다양한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여러 부류의 작자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곧 지은이를 사대부와 대립하는 서민으로 추측하는 견해와 평시조의 부속 장르라고 보아 지은이를 사대부라고 추정하는 견해이다. 그리고 이 2가지 견해를 모두 받아들이는 견해이다.
다양한 계층의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셋째 번 곧 두 견해를 수용하여 지은이를 조선 후기의 여러 계층 가운데 새로이 등장한 중간 계층으로 본다. 여기에는 경아전(京衙前)과 같은 중인들을 중심으로 당시 새로이 부상한 여항의 부호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중세기의 해체를 배경으로 축적한 부를 통해 당시 여항의 유흥과 예술을 장악하여 주도한 집단이다. 이들이 사설시조의 전승ㆍ향유ㆍ창작에 직접ㆍ간접으로 참여했다는 점이 여러 측면에서 입증되고 있다. 이는 사설시조의 전승과 창작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김천택ㆍ김수장이 바로 경아전(京衙前) 출신이라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각씨네/ 더위들 사시오// 이른 더위 느즌 더위/ 여러 해포 묵은 더위///
五六月 伏더위에 情에 님 만나이셔 달발근 平床우희 츤츤 감겨 누엇다가 무음 일 하여던디 五臟이 煩熱하여 구슬땀 흘리면서 헐덕이는 그 더위 와/ 冬至달 긴긴 밤의 고은 님 품에 들어 다스한 아람목과 둑거운 니블 속에 두 몸이 한 몸되야 그리져리 하니 手足이 답답하고 목굼기 타올적의 //윗목에 찬 숙늉을 벌덕벌덕 켜는 더위/ 閣氏네 사려거든 所見대로 사시옵소///
장사야/ 네 더위 여럿듕에 님 만난 두 더위는 뉘 아니 됴화하리// 남의게 파디 말고/ 브디 내게 파라시소.
- 신헌조, 청구영언,702 -
위 사설시조처럼 사설을 많이 늘어놓는다. 그래서 엮음(編)시조, 습(拾)시조로도 불리어졌다. 그러나 말이 많다고 하여 3장이라는 시조 형식의 구속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위 작품의 빗금 친 부분을 살펴보면 시조의 정형적 틀의 3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평시조와 달리 4개의 음절마디가 의미마디로 구성된다는 점이 다르다. 의미마디란 통사 의미론적으로 구분되는 단위구를 말한다. 곧 아무리 말이 많은 사설시조도 4개의 의미 단위구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가사처럼 2음보격의 연속으로 엮어간다는 것이다
사람이/ 몇 생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이나 전화(轉化)해야 금강(金剛)에 물이 되나/ 금강(金剛)에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玉流) 수렴(水簾) 진주담(眞珠潭)과 만폭동(萬瀑洞) 다 고만 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連珠八潭) 함께 흘러
구룡연(九龍淵)/ 천척절애(千尺絶崖)에// 한 번 굴러 /보느냐.
－조운(曺雲), ｢구룡폭포｣ 전문－
앞에서 서술했듯이 평시조의 한 章이 4개의 음절마디(음보)로 구성된 것이라면 사설시조는 4개의 의미마디로 하나의 장을 구성하여 사설이 많아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사설이 길어지더라도 반드시 2음보격의 사설조(타령조)로 엮어 나가야 하는 것이 사설시조의 율조이고 사설시조의 기본형식이며 정형의 틀이란 것을 위의 두 사설시조 작품에서 인지할 수 있다.
- 이정자의 [현대시조, 정격으로의 길](국학자료원, 2010)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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