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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05 09:42
적절한 시간
 글쓴이 : 구본형
조회 : 3,977  
<적절한 시간 >
구 본 형

산에 갔다. 산이 온몸으로 요동을 치고 있는 것이 내 몸 안에 느껴졌다. 에너지로 충만하고 팽창하여 급기야 터져 나오려고 한다. 온갖 풀과 꽃은 이런 내면의 탄성으로 태어난다. 봄에 산에 오르는 사람은 누구나 이 격정을 느낄 수 있다. 살며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이기적 기적을 바라지만, '부족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감탄' * 이라는것을 늘 잊고 산다. 바보들, 그게 바로 우리들이다.

풀이 솟고 꽃이 열리듯 세상에는 '무엇'을 하기에 적절한 시간이 있다. 특별하고 성스러운 시간을 그리스 인들은 카이로스(kairos)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것은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와는 다른 시간 인식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시계가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간표를 만들고 스케줄과 스케줄 사이에 또 다른 스케줄을 밀어넣음으로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려고 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다이어리에는 한치의 틈도 없는 분주함으로 가득하다. 역설적으로 그들은 시간의 관리에 성공함으로써 더욱 바빠지게 되었다.

성공을 지향하는 우리 모두는 '바쁨'을 신봉한다. 일과표에 매이고 하루하루를 무엇인가를 제 때에 끝내야 하는 전쟁으로 전락한다. 풀을 보고 꽃을 보고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겨를이 있겠는가? 경이로움이 없는 세계, 끝없이 반복되는 동그라미 위의 시간 속을 걷고 있는 바보들의 행진, 그 대열 속에 바로 우리가 있다. 바보들을 비웃는 바보로서.

대열 속에 섞여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면, 언젠가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내가 언제 마흔이 되고 쉰이 되었단 말인가? 바쁘게 지낸 그 긴 세월이 어째서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는지 당황하게 된다. 갑자기 빈 지갑을 보며 쓴 돈의 지출 내역에 대한 복잡한 연산을 거치지만 돈은 결국 쓴 곳이 있어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가난을 실감하게 되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시간이 아닌데, 우리는 늘 우리를 위한 시간을 낼 수가 없다.

시간을 잘 쓴다는 것은 둥그런 원 위의 궤적 운동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그리하여 더 이상 바빠지지 않으면 시간을 경영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시간 경영의 유일한 목적은 쓸데없는 일을 버림으로써 낭비된 시간을 자신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의 양을 늘이는 것이다. 자유는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 내면에서 터져나오는 열정을 키우는 데 쓰여야 한다. 꽃이 나무의 열정이듯, 우리의 삶 역시 수많은 꽃으로 피어올라야 한다. 자유의 시간을 자신에게 돌려줌으로써 내면의 성찰을 통해 우리의 삶을 순간순간 카이로스로 가득 채워야 한다. 우리의 삶을 경이로움과 깨달음으로 가득 찬 순간들의 집합으로 점철시키는 것이 바로 시간을 경영하는 요체라 할 수 있다.

우리의오늘이 어제와 똑같은 일상으로 꾸며져 있다고 느낄 때, 그리하여 지루함과 권태가 일상을 지배할 때, 오늘이 하나의 불연속적인 시간 위의 변곡점이라고 생각해 보자. 오늘을,어제와 명료하게 분리된 새로운 점, 도전과 도약을 시작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의 입자라고 여겨보자. 오늘 우리는 마음속에 떠오른 아름다운 일을 거치없이 해볼 수 있는 마법의 세계 속으로 입장했다고 상상해보자. 바짝 마른 나무가지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는데, 오늘 우리가 꽃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만일 우리의 매일이 너무 바빠 스스로 돌아보지 못하고 앞으로 치달리기만 한다면, 오늘은 아무 것도 하지 말아보자. 그저'두 음표 사이의 쉼표'*가 되어보자.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는 바로, 가만히, 홀로 있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니까.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으로 더 빨리 몰려가는 것이 성장과 번영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 대열에서 빠져나와 과거를 되돌아보고 서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쉼표가 된다는 것은 그들이 몰려가는 길로 가야 하는 이유를 묻는 것이고, 더 좋은 미래로 가는 새 길을 찾아보는 것이다. 쉰다는 것은 목적지에 대한 아름다운 모색이다. 그리고 이유있는 항변과 방황이다. 그것을 꿈을 꾸는 것이다. 원하는 모습을 그리고 그곳에 이르는 길을 찾고 그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쉰다는 것은 기다림이다. 쉼은 효율성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말한다. 쉼은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쉰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이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찾아내는 것이다 . 쉼은 일에 쫓기는 것이 아니라 필요업슨 일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쉼은 어제했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 쉼은 느림이다.느림은 일을 할 때 그 일을 시작하기 전에 '왜? 그리고 어떻게?'라고 묻는 것이다.

하루를 어떻게 사는가가 바로 인생을 어떻게 사는가의 답이다. 마치 하나의 이슬속에 아름다운 달이 온전히 다 들어 있는 것과 같다.

봄이 되었지만 그대의 마음이 아직 차가운 것은 어찌된 일인가? 풀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제와 같은 이유는 무엇인가? 겨우내 꽃눈을 키워온 목련은 꽃으로 터져 나오는데, 그대가 겨우내 그리움으로 키워 세상에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인가?

* 영국의 언론인이며 작가인 G.K.체스터턴이 한 말."이 세상에서 부족한 것은 기적이 아니다. 부족한 것은 감탄이다."
*"나는 두 음표 사이의 쉼표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마음을 여는 풍경/2003년 샘터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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