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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29 12:20
횡보 염상섭의 작품세계
 글쓴이 : 소석
조회 : 6,041  
*조선문학 131호(2002.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윤병로(문학평론가,성균관대 명예교수)

염상섭의 삶과 문학

橫步 廉想涉은 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그가
1963년 작고하기 까지 근 40여년의 작가 생활이 남긴 작품량도 기록적이지만 그에 대한
문학사적 평가는 춘원,동인,빙허,월탄,도향 등과 함께 근대문학의 큰 자리를 차지한다.특히
횡보는 동인과 비교되는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작가로 정평되고 있지만 그의 작가론과
작품론이 충실히 전개되지 못한 느낌이다.
과연 횡보의 수많은 작품들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며,그 작중 인물들은 얼마만큼
독자의 공감에서 수용되고 있는가를 타진하는 과제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구체적으로 횡보 염상섭 소설의 인물과 계층적 조명을 시도하기 위해서 지금껏 통념되는
대표작 발언을 상기해 본다.

아주 가난한 것도 아니고 아주 부자도 아니고 그저 어중간하게 사는 인물,또는 아주
악한 것도 아니고 아주 착한 것도 아니고 그저 중간치에 해당하는 인물,그의 대표작이라는
[三代]를 비롯해서 대부분이 그렇다.그렇다면 이런 인물들이 무대에서 과연 독자적으로
호기심을 만족시킬 만한 경이로운 사건이 일어날 수 있을까 ?
(김우종의 <현대 소설의 이해> p.39)

이와같은 김우종의 평가는 염상섭의 소설의 인물 특징을 대변하는 것으로 공감하지만
그 구체적 인물들의 계층적 조명은 좀 더 많은 작품들을 분석함으로써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따라서 그의 초기 작품에서 부터 말기 작품에 이르기 까지 광범한 작품이 거론
되어야 할 것이다.
염상섭은 처녀작 "표본실의 개구리"를 필두로 "暗夜""除夜" "신혼기" "萬歲前"등을 통
해서 무겁고 침통한 자연주의적 문장을 구사해 갔다.이러한 전기 작품들은 현실을 부정적
으로 해석함으로써 주관적인 색채가 짙게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그 후기에 쓴
"금반지" "전화" "조그만 일" "밤"같은 작품들에선 훨씬 리얼리틱한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표본실의 청개구리"보다 몇 년 뒤에 쓴 "만세전"(1923)은 [시대일보]에 연재된 장편으로
횡보의 작품세계를 분수령화하는 획기적 작품이다. '나'란 제1인칭으로 쓰여진 "만세전"
은 확실히 횡보의 자서전임에 틀림없다.'이인화'란 주인공은 w대학 문과에 재학중인
문학 청년이다.여기다가 열 여섯살에 渡日해서 유학했다는 것과 일본 여자 '시즈꼬'와
연정을 맺었던 요시찰인물로 언제나 일경에 쫓기던 일들은 모두 작가의 청년 시절과 합치
되기 때문이다.

염상섭은 출세작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필두로 "만세전","사랑과 죄","二心","삼대",
"무화과","모란꽃 필 때"등의 장편소설을 썼으며 그 후 그의 문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두 파산","임종","굴레"등을 써서 문단의 각광을 받았는데,이들 작품들은 모두가 사실주의
가 심화된 경지를 보여줌으로써 그의 가장 성공한 역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임종"과"두 파산"이후 6.25를 계기로 그의 소설 세계도 점차적으로 변모되었는데 종래의
이른바 북구적 침울에서 탈피하여 현대문학의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되었다.이리하여
장편 "紅焰"(1952)을 <자유세계>에 "驟雨"(1952)를 <조선일보>에 연재했다.
특히 "취우"는 그 제명이 암시하듯이 6.25동란을 소재로 하루 아침에 세상이 뒤짚어 지자
제각기 제 생명과 가족의 안위만 생각하는 극도의 이기주의자가 된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존 질서의 파괴와 잔악한 공산주의자의 포악성이 횡행하는 속에서 인정의 아름다움을
선명히 부각시켜 준 작품이다.
염상섭의 역작이라고 평가된 장편 "취우"이후에도 단편 "짓지 않는 개"(1955)를 비롯,
"돌아온 어머니"(1957),"순정의 저변"(1958),"쌀"(1958)등에서 자연주의 작가의 원숙성을
한층 드러내고 있다.

절대의 자유 신봉자 김창억
-"표본실의 청개구리"

염상섭의 처녀작"표본실의 청개구리"는 [개벽]지의 14호부터 16호에 걸려 3회에 연재
되었다.이 작품의 분량으로 보아 단편이라기 보다는 중편으로 간주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첫머리에서 볼 수 있듯이 청개구리의 해부 실험 장면묘사는 자연주의 기법에
의한 것으로 전체적으로 작품 분위기는 신경과민 증세를 과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런 특징으로 이 작품은 우리 근대소설에서 인간 내면세계를 추적한 최초의 소설로
주목된다.이 작품이 발표되던 시대적 배경은 3.1운동 이후가 되므로 이 땅의 분위기는
몹시 우울하고 침통할 수 밖에 없었는데,작중 인물 김창억의 발광상태를 절대의 자유
또는 神意의 신봉자로 부각시킨 점은 당대의 현실을 부정적으로 비판한 창작 태도의
일면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그것은 암울하고 절망적인 사회현실을 실험주의적 혹은 자연과학적인 방법으로
작품화했다는 심리분석적인 방법을 최초로 시도한 점이며,또한 그것을 상징적인 수법으로
성취시킨 점이다.
이 작품에선 주인공의 불안과 공포,그리고 번민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생물 시간에
해부대에 올라 있는 청개구리를 등장시키고 있다.
수염텁석부리 박물선생은 청개구리를 해부해서 더운 김이 모락모락나는 오장을
차례차례로 끌어내면서 자는 아이 누이듯이 주정병에 채운 후에 옹위하고 있는 생도들을
돌아다보며 대발견이나 한 듯이,"자,여러분,이래도 아직 살아있는 것을 보시오."하고
뾰족한 바늘 끝으로 여기저기를 꼭꼭 찌르는 대로 오장을 빼앗긴 개구리는 진저리를 치며
사지에 못 박힌 채 벌떡벌떡 고민하는 모양이었다.'나'는 이런 생각에 겹쳐서 머리끝이
곤두서고 전신에 냉수를 끼얹는 것 같다고 했다.
이와 같이 상징적인 수법으로 인간심리를 해부해 나간 것은 매우 경이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그러나 이 해부된 심리세계가 다소 과장적이긴 하지만 유희적 관념 또는 창조적 고민이나 불안은 아니었다고 김우종은 지적했다.
그의 말을 빌면 염상섭은 '나'를 그려 나가는데 있어 청개구리를 등장시켰을뿐만 아니라
광인 김창억을 등장시켜 그로 하여금 '나'를 반사적으로 표현하도록 색다른 수법을 썼다는
것이다.그리고 김창억을 통해서 표현된 염세적인 경향이나 허무주의적 경향은 그러한
인생관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인생의 깊은 오뇌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실상 김창억의 염세적 경향이나 허무주의적 경향을 단순한 개인적인 고뇌로 풀이하기
보다는 당대의 우리 식민지 상황과 관련된 것으로 풀이된다.이 소설이 쓰여지기 2년 전
우리 겨레는 거족적으로 3.1운동을 시도했지만 일제의 포악한 탄압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여기서 빚어진 우리 민족의 좌절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증폭되었을 것이다.
특히 당대 지식 청년들은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절망과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이 소설의
'나'를 통해 발언하는 김창억의 일거수 일투족은 당시의 우리의 주변 현실을 상징화시킨
것으로 추정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한편 염상섭 소설의 주인공들은 "표본실의 청개구리"의 광인 김창억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지난날 일제하 그늘에서 소외되었던 한국의 지식층.경제적 파산자와 정신 파산자,물욕에 눈이 어두운 이기주위자,쪼들린 살림의 서민들이 주역이란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실상 그들 주인공들이 '그저 어중간한 인물'들이란 범주 속에서 벗어나지 않는 도시
서민층이 염상섭 소설의 인물에 있어서 대종을 차지한다는 귀결을 얻게 된다.
그것은 염상섭의 자연주의 문학과 그의 사소설적 성향이 작가의 생활 현실과 크게
이질적일 수 없었던 객관적 사정과 관련될 것이다.

우리 소설사의 우뚝한 봉우리
-"三代"

염상섭의 대표적 역작"삼대"는 일제 식민지하의 격동적 현실을 생생히 묘파해내고 있어,
문학과 현실의 관계를 보다 잘 조명하고 있다.
"삼대"는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염상섭의 장편소설이다.할아버지,아들,손자로
이어지는 삼대의 인물들을 통해 시대 변화와 함께 드러나는 사고방식의 차이와 갈등,그리고
식민지적 현실에 부딪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삶의 모습들응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할아버지 조의관은 서울의 중인인데 재산을 모아 벼슬과 족보를 사서 양반 행세를 하며,
시대적 대세와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적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이다.그런데 아들인 상훈은
새로운 시대를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여 미국유학을 다녀와서,사회사업을 한답시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기에 여념이 없다.조의관은 이런 아들과는 아예 인연을 끊어버리고 대신
유학을 하고 있는 손자 덕기에게 기대를 걸어,그에게 재산을 넘기고 세상을 떠난다.
덕기는 새시대의 문물과 사고를 익혀 당대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활동을 하지만
매우 어중간한 태도와 행동으로 일광하는 인물이다.그리하여 그는 할아버지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도 하고,사고방식이 급진적인 친구 김병화를 소극적으로 후원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려는 뚜렷한 의지가 없다.결국"삼대"는 이들
세 인물과 주변 상황및 현실적 변모과정을 통해 한 자산가 가문의 몰락을 그리면서,조의관
과 김병화로 대표하는 신구의 대립을 매개로 하여 조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이 소설의 주요인물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인물로 부각되는 덕기는 일본 유학을 하는
학생이다.그는 할아버지 조의관의 강요로 조혼을 했고 유교적인 생활양식도 제법 갖춘
인물이다.그러면서도 그의 사고에는 새 시대의 문물에도 민감하게 적응코자 했다.
한편 그는 정치적 조직 속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었지만 친구 김병화의 교유관계로
좌익 운동의 동조자가 되어 민족운동의 전개에 대해서도 김병화와 인식을 같이하게 된다.
조덕기나 김병화의 의식으로는 3.1운동은 사전의 치밀한 계획이나 조직적인 구심점이
없이 시도되어 실패했다는 것이다.또한 그런 요인이 걸림돌이 되어 일제의 탄압이 증폭되었다는 생각이다. 이런 사고에서 식민지의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보다 조직적인 조의관의
유교적 보수주의에도 어느 정도 동감하게 된다.그는 조부의 임종하는 자리에서 집안의
경제권을 상징하는 열쇠꾸러미를 물려받는다.
"삼대"의 종말 부분에서 조의관 영감은 손자 덕기에게 집안의 모든 일을 의탁하고 대학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했지만 이틀동안 눈 한번 못뜨고 세상을 떠난다.사인은 비소중독
이라고 헀다.
이삼일 후 덕기는 병원의 전화를 통해 식품점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이 경찰에 잡혀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경찰은 덕기 조부가 독살당한게 확실하다며 그 배후에는
김병화가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김병화는 사회주의자인데 조덕기 같은 부자집 자제와
그렇게 친하다는 것이 의심스러웠고 덕기가 돈을 주어 필순과 함께 장사를 시켰다는 것도 그러했다.거기다 재산 상속자인 조상훈을 제치고 손자인 덕기에게 간 것도 의아하게
생각했다.덕기는 독감의 재발로 시달리며 취조를 받은 뒤 풀려난다.그 사이에 손금고에
넣어둔 열쇠가 분실되었고,조부의 도장을 집어다 유서를 위조하려 하던 상훈이 체포된다.
덕기는 독립운동으로 아버지가 죽은 필순 모녀를 자기가 맡는 것이 당연한 의무나 책임으로 생각했다.
이와같이 "삼대"는 조부에서 손자에 이르는 한 가족 삼대에 걸친 역사를 줄거리로 하고 있다.그 작품 배경은 일제가 한반도를 침략하기 시작한 한말에서부터 우리 겨레가 거족적으로 항거한 3.1운동 후의 1920년대까지에 걸치는 일제 강점기의 한반도가 된다.
이 소설에는 조부 조의관,아들 조상훈,조의관의 손자 덕기 그리고 덕기의 친구 김병화 등이 주인공이다.
작가 염상섭은 이러한 인물들의 내면세계를 파헤쳐 가면서,이들이 활동하는 무대인
식민지적 현실에 각별히 주목한다.주지하는 바,3.1운동은 이 땅에 삶의 터전을 일구어
살던 우리 동족으로 하여금 식민지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래서 그들이 부딪쳐야 하는 삶의 여건들에 대해 한편으로 대응하면서 새로운 민족적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부단한 시련의 시기를 다시 새롭게 맞아야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모든 질서와 가치관의 혼류 속에서 현실적으로 제기되는 여러
식민지적 상황들을 조감할 수 있다.
전통적인 가치관에 의해 살아가는 구세대들과,부의 축적으로 인한 신분 상승에의
의지들이 적나라하게 파헤쳐진 한편,신식 문물에의 경도와 의식 없는 생활의 비참한 참패,그리고 새 세대의 주인공으로서,자각을 앞세우면서도 현실적인 장벽 앞에 좌절될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의 행동이 계층간의 갈등과 더불어 적절히 형상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삼대"는 염상섭의 초기 장편소설의 대표적인 것으로 1931년 1월 벽두부터 작가가 학예부장으로 있던 <조선일보>에 연재해서 다음 해 9월17일자로 대미를 보게 된 작품이다. 이 소설이 연재될 때 독자들에게 크게 애독되어 화제작으로 부상되지만 연재 후 곧 단행본으로 발행되지 못했다.여러 출판사에서 앞다투어 출판 허가를 얻고자 했지만 그때마다
총독부 검열에서 불온하다는 이유로 불허되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삼대"는 염상섭의 대표작이며 우리 근대소설의 대표작으로 거론하는데 어느 누구도 공감할 것이다.어느 비평가의 말대로 이광수의 "무정"(1911),이기영의"고향"(1934,채만식의 "태평천하"(1938) 등과 함께 "삼대"는 장편으로서의 규모나 구성의 치밀성에 있어서나 내용상의 풍요로움에 있어서나 우리 소설사에서 우뚝 솟은 봉우리라 규정함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우리 문학사에 있어서 ,일제 강점기는 민족적 수난과 시련으로 인한 고통의 역사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문학은 현실적인 여건에 대한 부단한 도전과 그 결과로서의
작품을 산출해냈다.
염상섭의 "삼대"는 이 같은 사실에 몹시 부합하는 작품이다.우리는 여기에서 문학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그 확인의 결과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는 훌륭한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다.

트히 "삼대"를 음미하면서 공감하게 되는 것은 역사는 어느 시대,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삶과 동떨어진 가치란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현실에 뿌리를 두지 않은 채,현실적 가능성과 동떨어진 추상적이고 단순한 허구적 사실들만으로는,문학이 독자에게 추구하는 예술적 감동을 줄 수 없다.그런면에서 "삼대"는
그 시대적 현실 인식 뿐 아니라 기법과 예술성에서도 아주 뛰어난 작품으로서 우리는
이 작품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염상섭의 [萬歲前] 小攷

구 창 환(조선대 명예교수)

1.염상섭과 "만세전"

3.1운동은 그로 말미암아 지식인들이 불안과 실의에 빠져 '환멸의시대'를 이루게
되었고 춘원 문학을 거부하는 자연주의 리얼리즘의 시대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우리는 문학의 분수령이 되었다.특히 <폐허>지의 동인이었던 염상섭은 이러한 어둡고 답답하고
절망적인 1920년대 초기의 사회상을 민감하게 묘파한 시대의 촉수였다.그는 우리 나라 자연주의 소설의 효시라고 정평된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를 발표하여 "동시대의 전형적인 인간형"인 "과도기의 청년이 받는 불안과 공포와 번민"을 박물학자의 냉혹한 실험과 해부의 방법으로 그려냈다.또한 그는 <암야>,<제야>,<신혼기>(중편),<만세전>(1923)등을
통해서 어두운 시대사조와 답답한 사회상을 자연주의 리얼리즘의 수법으로 그려냈다.
염상섭의 소설중에서도 중편<만세전>은 3.1운동 직전의 불안하고 암담한 분위기
속에서 행동성을 상실한 지식인의 허무적인 자의식과 관념의 절규를 그렸으며,일제에
의해서 헐리고 짓밟히고 쫓겨서 무덤 속 구더기처럼 되어 가는 현실의 사회상을 예리
하게 분석하고 해부한 뛰어난 작품이다.흔히 비교문학적인 견지에서는 염상섭이 투르
게네프,도스또예프스키 등 沈重하고 어두운 러시아 문학의 영향을 입었고,島崎藤村,
田山花袋 등 일본 자연주의작가들에게서 배운 바 컸으리라고 일컬어진다. 그렇지만
염상섭이 죽기 전에 발표한 <횡보문단회상기>에 의하면 당시의 사회상이 그의 문학을
결정짓는 가장 큰 영향이었던 것 같다.
염상섭 문학에 대해서 白鐵은 '대표적 자연주의 작가'또는 '전형적 자연주의 작가'라
하였고,조연현은 초기의 자연주의적 경향을 인정하면서도 후기 문학을 높이 평가하여
'실험주의 문학의 확립자'라고 말하였다.그렇지만 이는 모두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라는
용어 사용의 불확실에서 오는 차이인 것 같다.백철은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같은 것으로
여겨 통칭 자연주의라고 한 듯하고 조연현은 이 두 가지를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본 듯하다.
그러나 사실주의가 표현의 문제요 자연주의가 인생관 세계관의 문제이며 자연주의가
사실주의의 한 변형임을 생각할 때,염상섭문학은 자연주의 사실주의라고말하는 것이
좋겠다.사실주의에는 이 밖에도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나 심리적 사실주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염상섭의 초기작품의 대표라 할만한 "만세전"을 주로 내용면에서 살펴
보기로 하자.

2."만세전"의 세계

"만세전"은 1923년 <신생활>지에 <묘지>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고 다음 해에 개제
출간된 중편인데,염상섭의 초기문학을 빛나게 한 우수한 작품이다."그는(....)처음부터
현실 속으로 파고 들어간 작가이었다.그리하여 그는 이 현실- 더욱이 한국의 현실을
분석하고 해부한 것이다.후일에 그를가리켜 침통한 작가라고 한 것도 결국 그의 심각한
해부와 묘사가 현실을 조각조각 내어 그 밑바닥을 보여 준 까닭이었다."고 박영희가
술회한 바와 같이 염상섭의 작품태도는 주로 객관 세계의 묘사,시대 사조의 반영,사회상
의 해부와 현실 세계의 분석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인생과 사회를 객관적으로 표현하려 하는 사실주의의 정신이야말로
그의 근본적인 문학 태도라 하겠는데,다른 사실주의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있어서의 인생과 현실은 긍정적이거나 미화된 것이 아니고,부정적이고 어두운 면을
지닌 것이었다.작가는 주인공인 '나"의 카메라를 통해서 구더기가 끓는 무덤 속 같은
조선의 현실을 분석하고 3.1운동 직전의 어두운 사회상을 펼쳐 보인다.여기에서는
이러한 사회에 처해 있는 전형적인 지식청년의 자의식적인 고민,행동을 저지 당한 관념의
절규,불안하고 암담한 분위기 등이 화면처럼 그려진다.

1) 불안의식 세계

'만세전'은 w대학 문학과 졸업반에 유학중인 주인공 '나'의 나레이션 형식으로
되어진 작품이다.1918년 겨울 졸업시험 도중에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은 '나'가
귀국하여 상처하기까지의 간단한 스토리를 통하여,허무와 냉소와 절망적인 시대 사조
를 리얼하게 그려내고,주인공의 카메라에 비치는 환멸의 사회상을 보여 준다.그러니까
이 작품은 '나'라는 인물의 단순한 귀국 행각이 아니다.전형적인 무기력의 주인공'나'는
시대적인 중압감에 눌리어서 절망하고 도피하는 지식청년들의 대표적인 예로 그려졌고
'나'의 눈에 비치는 환멸의 사회상은 식민지 백성들의 대표적인 사양도를 그려냈다.
그러면,3.1운동 직전의 한국의현실은 이렇게 암담하고 답답하기만 했을까,물론 그럴리
없다.

조선에 <만세>가 일어나던 전해 겨울이다.세계대전이 막 끝나고 휴전조약이 성립
되어서 ,세상은 비로소 변해진 듯 싶고,세계 개조의 소리가 동양 천지에도 떠들석한
때이다.일본은 참전국이라 하여도 이번 전쟁 덕에 단단히 한 밑천 잡아서,소위 나리
긴(成金)나리긴하고 졸부가 된 터이라,전쟁이 끝나고 별로 어깻바람이 날 일도 없지
마는 그래도 한 몫 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판이다(염상섭,만세전)

만세전의 서두에도 나와 있듯이 그때는 1차대전이 끝난(1918.11.11)직후이기때문에
각국이 평화를 구가하고 윌슨 미대통령의 주창에 따른 민족자결주의가 세계 각처에
번지는 희망에 찬 시대이기도 했을 것이다.우리 나라만 하더라도 민족자립이니 자주독립
이니 꿈도 많았을 것이다.그러나 작가 염상섭은 그러한 긍정적이고 꿈과 희망이 있는
현실은 도외시하고 부정적이고 답답한 현실만을 파헤쳐 보인다.말하자면 그는 "(...)
인생의 암흑 추악한 면을 여실히 묘사함으로써 인생의 진상은 이러하다는 것을 표현"하려 했으며 그런 점에서 그는 자연주의적이었다.대저 "문학이란 근본적으로 언어를 매개로
한 삶의 표현이다"라고 하거나 "한 편의 소설이란 하나의 삶의 회화이다"라고 할 때,'표현'이니 '회화'니 하는 말들은 결코 단순한 현실의 재현이나 복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을 통한 창조적인 재구성을 뜻한다.이런 점에서 볼 때,염상섭의 '만세전'에
나타난 현실이 작가의 인생관(여기서는 자연주의적인)에 따라 윤색되고 어두운 면으로
치우쳤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만세전'의 주인공이면서 서술자인 '나'는 어두운 현실에 짓눌린 지식청년으로서,
절망과 환멸만을 추구하는,행동성을 상실한 도피사상(escapism)의 소유자다.그는
인사이더가 아닌 아웃사이더의 입장에서 불안한 현실을 관찰하고 관념의 불발탄만을
내쏟을 뿐이며,고작해야 퇴폐 속에 칩거하는 도피를 일삼는다."해산 후 더침으로 시름시름
앓던 아내가 위독하다는 급전"을 받았을 때 '나'는 "죽었으면 나 안가기로 장사 지낼 사람이
없어서,시험보는 사람더러 나오라는 것인가?"라고 역정을 내며,"병인은 죽었든 살았든
하여간에 돈 백원은 반갑다"고 전보환 온 것만 기뻐한다.그리고 그는 주임교수에게
'어머니'가 아프다는 핑계로 승락을 받고,목욕에 이발에 쇼핑까지 하고는 시즈꼬(靜子)
라는 카페 여자를 찾아간다."목숨 하나가 없어진다는 것과 내가 술 먹는다는 것과는
별개 문제"라는 것이다.그런가 하면 한편 "명상적이요 신경질일 뿐 아니라 아직 순결한 맛이 남아 있는"고등학교 출신인 이 시즈꼬에게 아내 몫으로 샀던 쇼올을 선사하고 키스
까지 하고 송별주를 나누면서도,"계집애 하고 키스를 하면서도 침맛을 아는 놈에게 사랑이
있다는 것부터 틀린 수작이다"고 허무와 냉소를 금치 못한다.그리고 "결국 나는 한 여자도 사랑하지 못할 위인이다"고 고독을 느낀다.
'나'는 죽어가는 아내를 사랑하는 것도 그렇다고 이국종 계집애를 사랑하지도 못하는,
시대적이고 민족적인 절망과 불안으로 자조화된 허무의 군상인 것이다.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불안한 현실 앞에선,처와 애인을 갖는다는 이런 일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기자신에게 대한 반항인지,자기 이외의 무엇에 대한 반항인지,그것조차 뚜렷이 알 수
없으면서,덮어놓고 앞에 닥치는대로 무엇이든지 해내는 듯한 터무니없는 울분이 가슴
속에서 용심지같이 치밀어 올랐다"고 술회하는 바와 같이 "조바심이 나서 못 견디게"하는
불안의식은 결코 시즈꼬를 마음대로 사랑할 수 없다는 '도덕적 관념'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다.오히려 주체성을 지닐 수 없도록 강요하는 정치적인 압박감과 공포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대의 불안의식과 절망감이 저류처럼 그 분위기를
이끌어 가거니와,주인공'나'가 산후병으로 죽어 가는 아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시즈꼬
에게 선물을 주고 하면서도 그녀를 사랑하지 못 하도록 강요하는 원인은 아네를 두고 딴
여인과 통정헤서는 안된다는 '도덕적 관념'보다 절망과 허무에 떨어지도록 하는 '민족적
불안의식',즉 일본의 정치적 압박에 기인한다.
그런데 조연현은 "이 무렵의 그의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는 <만세전>은 이 작품의
일절이 증언하고 있는 바와 같이 '사람은 그릇된 관념의 노예다'그릇된 도덕적 관념으로
부터 해방되는 곳에 진정한 생활이 있다'는 것을 믿고 그 그릇된 관념을 박탈한 현실의
진상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작품이다.이것은 전형적인 자연주의적 태도다."고 서술하였는데,이 작품이 '현실의 진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작품'이라는 점은 옳지만,그 '현실의 진상'은 결코 조씨가 지적한 것처럼 '그 그릇된 관념을 박탈한'-즉 '그릇된 도덕적 관념으로부터
해방'되고 '진정한 생활'을 찾게 하는 현실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식의 도덕적 관념에서
해방'되지 못하게 하고 '참된 생명을 찾지'못하게 하는 '현실'인 것이다.

어쨋든 '나'라는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고 갑갑하기만 한 인텔리 청년은 이국의 아가씨 시즈꼬와 은근한 정분을 나누기도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심정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야행열차까지 전송을 나왔을 때에도 별로 마음에 뿌듯해 오는 것이 없고 그녀가 준 보자기 속에서 편지와 위스키 병이 나올 때에도 "편지는 포켓에 집어넣고 술부터 따라서 한숨에 켰으며"작품 마지막에서 시즈꼬가 카페를 그만두고 교토로 옮겨 동지사대학에 들어감을 축하하여 망처의 치상비에서 백원을 떼어 보내면서도"실상은 동경가는 길에
들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다시 하였기 때문에,아주 이것으로 마감하여 버리고 나도 이 기회에 거뜬한 몸이 되고 싶었던것이다"고 도피사상을 나타낸다.말하자면 "나"란 인간은 현
실에 짓눌려서 허무주의자가 되어있고 사랑이니 무어니 하는 것들이 시답지 않게 된 것이다.그가 병든 처를 사랑하지 않음은 처음부터 사실이지만 은근히 좋아하는 시즈꼬에게
이렇게 불투명한 태도를 취함은 곧 그의 민족적인 불안감과 허무감 때문이다.
'나"의 이러한 태도는 을라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제종형 병화댁의 친구인
을라는 고베의 음악학교에 다니는 매우 활발한 아가씨로 작년 방학 때는 서로 얼려 다니
기도 하였지만,그녀가 병화로부터 학비조달을 받고 있을뿐 아니라 두사람 사이에 좀 미
묘한 관계가 있음을 눈치 챈 뒤엔 서먹서먹해진 사이였다."나"는 "완행열차가 하도 지루해서"고베에 도중하차하여 을라를 찾는다.
'그래 지금 조선에 나가시는 길얘요?방학때두 되긴 했지만'
을라는 방에 늘어놓인 것을 부산히 치운다.
"송장을 치러 나가는지?또 한번 사모 쓸 일이 있어 나가는 셈인지?..."하고 나는 코웃음을
쳐보였다.
"왜?....아씨가 앓으시는군?그 안됐군요."
하고 을라는 놀라는 소리로 인사를 하고 나서 그 윤곽있는 쌍꺼풀진 눈귀를 처뜨리며
"그래 그런 급한 길에 여기를 왜 내리셨에요?"하며 좀 나무라는 어조다.
"당신두 만날겸,후보자도 선을 볼겸....허허허"
(-중략_)
"기가 막혀! 아씨가 운명도 하기 전에 선보러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에요?그래 선을
보셨에요?"
'나'는 을라를 찾아가서 이렇게 허튼소리나 몇마디 하고,며칠 쉬었다 같이 나가자는
그녀와 "정자나 카페 여자들에게 하던 버릇으로"악수하고 헤어진다."컴컴한 거리에
나오도록 내 손바닥에는 여자의 따뜻한 살김이 남아 있는 것을 깨달았다"면서도 '나'의
을라에 대한 태도는 항상 석연치 못하다.식민지 인테리의 뇌리에서 사라지지않는
이 불안의식은 매사에 그를 억압한다.그래서 그는 패배의 苦澁味를 씹으면서 관념과 자의식 속에 도피하기도 하고 퇴폐와 허무 속에 젖어 보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인공의 불안의식을 구체적으로 조성하는 것은 주로 일본의 형사나 헌병,순경,헌병보조원 따위로 그려지는데,시모노새끼에서부터 신변에 붙어 다니는 이 그림자와 같은
존재들은 '나'의 행동을 설명해 주는 좋은 원인이 된다.그래서 "사실 말이지 나는 그 소위
우국지사는 아니나 자기가 망국 백성이라는 것은 어느때나 잊지 않고 있었다"고 말하는가
하면,목욕 도중에 불리어져 선창가에서 짐조사를 당하고는 겨우 올라 탄 연락선 갑판 위에서 '뜨끈뜨끈한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다.현해탄을 건너 부산에 내려서도 그들의 감시를 받아야 하며,열차 속에서나 형님이 있는 김천역에 내렸을 때나,서울 집에 도착해서까지
미행 형사의 방문을 받는다.일개 문과대학생의 뒤를 이렇게 감시하는 당시의 상황이
무엇인가 터질 것만 같은 불안과 위기의식을 암시하고,전체 분위기를 어둡게 한다.
서구의 현대문학이 이 불안과 절망을 좀 더 철학적인 토대위에 그렸다면,염상섭의
그것은 다분히 지상적이다.신의 상실이라든지 가치의 전도,불신사조,죽음이라는 숙명,
자유의 문제,매커니즘의 병폐,종말사상,원자핵,이데올로기의 싸움,혁명의 악순환 등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저쪽의 것이 주로 존재론적인 불안사상이라면 <만세전>의 그것은
정치적 압박에서 오는 현실적인 불안감이다.
여하튼 이 보이지 않는 일본의 압제에서 비롯한 '나'의 절망과 불안의식은 이 작품의 주조이며,<만세전>은 이러한 시대 사조의 고발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작가는
주인공'나'로 하여금 퇴폐적인 냉소주의와 절망적인 염세주의의 긍지에 몰아넣고,폐배적인 도피사상에 빠지게 하는,시대적이고 민족적인 불안사조와 절망감을 완벽하게 그리고 있다.

2) 구더기가 끓는 무덤의 세계

그러면 서술자인 '나'의 눈에 비친 구체적인 이 나라의 사회상은 어떠했나.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무덤이다!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라고 외치는 주인공의 나레이션
으로 집약된다.조선의 얼굴인 부산에서 볼 수 있는 패배의 무리들,열차 속 풍경,김천
형님이나 서울 가친의 시대착오,김의관의 영락상 등 모두가 기울어져 가는 이 나라의
사양도이다.

부두를 뒤에 두고 서편으로 꼽들어서 전찻길을 끼고 큰 길을 암만 가야 좌우편에
이층집이 쭉 늘어섰을 뿐이여,조선사람의 집이라고는 하나도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삼거리에 서서 한참 사면 팔방을 돌아다 보다 못하여 지나가는 지겟군더러 조선
사람의 동리를 물어 보았다.지겟군은 한참 망설이며 생각하더니 남쪽으로 뚫린 해변
으로 나가는 길을 가리키면서 그리 들어가면 몇집 있다 한다.비릿하기도 하고 고릿하기도
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해산물 창고가 드문드문 늘어선 샛골짜기를 빠져서 이리저리
휘덤어 들어가니까,바닷가로 빠지는 지저분하고 좁다란 골목이 나타났다.(.....)그러나
조선사람 집 같은 것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연락선에서 내린 '나'의 눈에 비친 부산 풍경이다.집을 날리고 땅을 빼앗기고 쫓겨
가는 백성들의 초라한 모습이 눈에 선연하도록 그려진다."한 집 줄고 두 집 줄며 열집이
바뀌고

오병두 11-01-18 20:28
 
좋은자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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