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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8-15 23:04
선명한 전쟁의 기억과 아름다운 사랑의 서사(2)/ 유성호
 글쓴이 : 慈軒 이정자
조회 : 172  


3. 전쟁소설을 넘어 빼어난 인간학(人間學)으로 

김선주 소설은 단순한 반공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가장 심원한 인간과 역사와 평화에 대한 가치론적 도약 과정으로 진전해간다. 5소리 없는 함성을 품은 민초들로부터 그러한 역사적 의미는 더욱 배가된다. 소설은 확전 일로에 있는 시간을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하면서, 특별히 수색 중에 골짜기 외딴집에서 만난 인민군 소녀 정순을 기록해간다. 비록 지상에서 벌어지는 무모하고 잔인한 전쟁때문에 전사가 되었지만, 간호기술을 지닌 열다섯 소녀 정순은 인화에 의해 목숨을 구한다. 그리고 정순과 설화는 반가운 마음에 서로 마음의 동지가 된다. 이제 소설은 유엔 참전과 인천상륙작전, 중공군 개입의 흐름 속에서 인간 본연의 자유와 권리를 찾으려고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민초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세가 역전되자 흥남에서는 대규모 철수 작전이 벌어졌는데 그 과정에 대한 작가의 시선과 필치가 정확하고 따뜻하기만 하다. 이어지는 14후퇴 때 구월산 유격부대는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하면서 고향을 지키기 위해 투쟁을 하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교실에서 한국 육군 교범에 의하여 제식 훈련을 하는 동안 그때 그곳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은 인간 본래의 사랑을 드러내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대원들은 주민들의 열렬한 협조에 기필코 자신들의 고장을 사수할 것을 다짐하곤 했었다. 그때 짚신을 수백 켤레 만들어 들고 온 촌로의 모습이 지금도 천인화의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바싹 마르고, 밭이랑 같이 깊이 팬 주름 덮인 촌로의 얼굴이 언제나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눈가에 간절한 소망을 담은 채 물건들을 내밀던 노인의 손등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채 검고 투박했었다.

젊은이, 난 민주주의가 뭔지, 공산주의가 뭔지 모르네. 거저 인간들끼리 멋대로 억울하게 목숨 끊지 않고, 사유 재산을 빼앗지 않고, 핏대 올리며 구호를 왜치지도 말고, 그냥 조상 대대로 살던 내 땅에서 죽는 날까지 흙이나 파먹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구. 부디 이 늙은이 소원 좀 들어주게나.”

끓어오르는 가래를 삼키며 힘겹게 말하던 그 노인은 지금 어디에 묻혀 있을까. 그의 소원대로 조상의 무덤 옆에서 한 줌의 흙으로 변해 있을까? 

대원들의 의지와 주민들의 협조 장면이 실감을 더하면서 전쟁의 잔혹함 너머 인간 본래의 사랑이 숨쉬고 있음을 작가는 보여준다. 짚신 수백 켤레를 들고 온 바싹 마르고, 밭이랑같이 깊이 팬 주름 덮인 촌로의 얼굴은 그들의 전투 의지를 더욱 올곧게 키워주었다. 그네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검고 투박한 손등은 민주주의가 뭔지 공산주의가 뭔지 모르는 가장 순박한 삶의 등가물이었을 것이다. 조상 대대로 살던 땅에서 죽는 날까지 흙과 함께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그네들의 소원을 역주행하는 전쟁이야말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음을 작가는 보여준 것이다.

정순은 의사 역할까지 하면서 환자들을 돌보았고, 설화는 정순을 도와 보조 역할을 충실히 해간다. 비록 때때로 암담한 절망감이 엄습했지만 피울음을 속으로 삼키면서 그들은 전쟁에 복무했던 것이다. 그렇게 구월산 부대는 목숨 건 혈투를 이어갔다. 1951110일 인화는 구월산 유격부대의 총병력을 용포리 능선에 집결시켰는데, 수십 명 부하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고장을 지키려 애썼지만 인력과 무기와 전략 부족으로 정든 땅을 떠나야 했다. 작전상 후퇴를 결정한 인화는 감쪽같이 적을 따돌리고 웅도로 철수하는 데 성공한다.

이처럼 김선주 작가는 전쟁 가운데 일어난 가장 인간적인 시간과 가장 비인간적인 시간을 비대칭적으로 보여주면서 인간의 존재론적 심부(深部)를 거듭 질문하고 있다. 이 작품이 전쟁소설을 넘어 빼어난 인간학(人間學)으로 개진해갈 가능성이 이로써 충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울음이 함께하는 순간들 

국군과 연합군의 후퇴가 감행되는 동안에도 구월산 부대는 서해안 섬 웅도에서 작전을 계속 하였다. 19513월 초순, 봄기운이 감도는 웅도를 지켜내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던 천 대위는 부관으로 섬에 온 제랄드 하베이 소위를 만나게 된다. 20대 초반 해맑은 청년의 등장은 미군의 지원을 정식으로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줌과 동시에, 부대원들에게 한없는 힘과 용기를 가지게끔 해주는 순간이 되어주었다. 이때 대원들이 모두 나와 단체로 태껸과 합기도의 군무를 추며 질러대는 함성이 웅도에 퍼지면서 소설은 구월산 부대의 사기가 충천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는 그 함성이면에 전쟁에 대한 본원적 비판을 흐르게끔 한다.

 전쟁은 이 땅의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초토화시키면서 인간의 일상적인 삶을 철저하게 빼앗아갔다. 아름다운 산천에서 부모형제와 일가친척들과 함께 모여 살면서 대대로 내려오던 미풍양속도, 서로 아끼며 사랑하던 마음도, 평화도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무수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거나 부상을 당해서 괴로워하는 통곡소리가 한반도 곳곳을 폐허로 만들고 있었다. 인간의 존엄이 통째로 훼손당하는 마당에 이념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전쟁은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초토화시키고 빼앗아갔다. 아름다운 산천에 가족도 미풍도 양속도 사랑하는 마음도 평화도 모두 사라져갔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쳐 통곡소리가 곳곳을 폐허로 만들었다. “인간의 존엄이 통째로 훼손당하는 마당에 이념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라는 한탄은 이 소설의 주제를 집약하는 듯하다. 이처럼 작가는 참전국들은 싸움의 당사자가 아니었기에, 이쯤해서 지루한 전쟁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었다. () 강대국들은 한반도에서 이미 그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UN군 측에서도 기다리고 있었던 일이 아니었을까.”라면서 휴전에 임하는 강대국들에 대한 비판 혹은 유보 입장을 드러낸다. 우리 스스로 강하지 못하면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자각이 이러한 판단 아래로 흐르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 대다수 국민이 반대한 휴전 협정이 시작되었다. 인화와 부대원들은 휴전에 반대하면서 웅도를 지키려고 힘을 쏟았다.

결국 전황은 휴전을 향해갔다. 판문점에서 휴전 협정이 진행되면서 모든 군대는 전투 상황을 종료하였다. 그러나 한반도 곳곳에서는 아직도 지역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필사적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화가 이끄는 구월산 부대에도 인민군의 박격포 공격이 시작되었다. 잠시 웅도를 떠나 작전을 수행하고 돌아온 인화는 널브러진 피난민 시체, 전소된 동네, 파괴된 토막, 부상병들의 울부짖음과 넋을 잃고 앉은 주민들, 해변으로 떠밀려온 어린이와 동물들의 시체를 가슴 아프게 바라보게 된다.

결국 미군 당국에 의해 천인화 부대장은 실질적으로 파면된다. 구월산 부대도 무장해제 당하고 백령도로 송환 당하게 된다. 1951729일 구월산 부대원들은 운양호와 서해호라는 낡은 목선에 나누어 타고 백령도를 향했다. 정순은 부상병을 치료하느라 배에 타지 않았고, 인화는 설화를 미 함정에 태워달라고 제랄드에게 부탁한다. 비록 송환 당하는 처지였지만 부대원들의 노랫소리는 드높기만 하다.

     

        황해 영봉 구월산의 정기를 받고

서해 바다 노한 파도 감도는 곳

그 속에서 씩씩하게 자라난 우리

그 이름도 무서운 구월산 부대

 

무궁한 대한의 자유를 위해

용감히 싸우는 구월의 건아

백만의 원수인들 두려울소냐

승리에 전통 있는 구월산 부대

 

절규하듯 부르는 이들의 노래는 우렁차고 장엄했다. 바다는 대원들의 노래를 삼키면서 출렁이고 있다. 서해호는 풍랑에 못 이기고 겨우 석도라는 섬에 닿았는데, 그곳 촌장의 후의(厚意)로 하루를 지내고 새벽에 백령도를 다시 향했다. 간신히 백령도에 이르렀는데, 인화는 아직 설화가 탄 미군 함정과 134명이 탄 운양호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 미군 함정은 암초에 부딪쳐 난파되었고, 운양호는 무전조차 없었다는 말을 듣는다. 운양호에 탄 네 사람이 헬리콥터로 구출되었지만 나머지 130명 젊은 영령들은 결국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이제 구월산 부대 전원을 포로로 취급하여 인천 수용소로 보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구월산 부대는 백령도를 떠나기 전날 바닷가에서 북쪽 바다와 옹진반도와 구월산을 바라보며 위령제를 지낸다함성보다는 울음이 함께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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