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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8-15 23:07
선명한 전쟁의 기억과 아름다운 사랑의 서사(3)/ 유성호
 글쓴이 : 慈軒 이정자
조회 : 159  


5. 사랑의 서사와 애끓는 함성을 담은 상징적 장면

 

195185, 구월산 부대원들은 백령도에서 인천으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이동하여 닿은 곳이 거제도 포로수용소였다. 이 거대한 수용소에서 인화와 부대원들은 또 다른 지옥을 경험한다. 거기에는 132천여 명의 포로가 수용되었는데, 포로들은 그야말로 다양한 인적 구성을 이루고 있었다. 1952218일 수용소에서 큰 사건이 터졌고, 수습에 나선 미군 소장이 오히려 납치되는 형국을 빚는다. 10월부터 12월까지 수많은 포로들이 서로 살상하고 살상 당하는 비극이 그 안에서 빚어졌다. 그 수용소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인화는 왼손을 부상당한 채 쓰러진다. 부산 수용소는 한결 질서가 잡혀있었는데 그때 유난히 까맣고 큰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던 정순과 다시 해후하게 된다. 그의 손 역할을 해주겠다면서 정순은 한없는 온기를 인화에게 전해준다. 인화는 소명 후 떳떳한 신분을 가지게 되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은 표창장 문구로 나타나게 된다.

 천인화 대위는 투철한 애국심으로 낙오된 장병 및 애국청년들을 규합, 단결시켜 유격부대를 조직하였다. 그는 구월산 부대를 편성, 교육하여 진두지휘함으로써 주도면밀한 작전 계획을 수립하여 적을 유도하거나 섬멸하고 때로는 적중에 침투하여 적의 후방을 교란하였다. 그는 실로 신출귀몰한 작전을 전개하면서 전략의 요충인 황해도 지구를 석권하여 적으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또한 수십 차례의 접전에서 적을 살상하고 장비에 막대한 손해를 가하여 아군의 진격에 일대 원동력이 되었으며, 대한민국 국군의 기개를 여지없이 발휘하였다. 천인화 대위는 왕성한 책임의식과 투철한 애국심과 충일한 군인정신을 가진 대한민국 장교로서 전 국군의 귀감이 되었음으로 일 계급 특진과 함께 이에 표창하여 전군에 포달한다.

 표창장을 받고 난 후 그는 대구 육군병원으로 이송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수용소를 떠나기 전날 그는 한 손으로 부하들 손을 잡으면서 아쉬움을 감추려고 애썼고, 대구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는 대원들 신원을 되찾기 위해 힘썼다. 1952618일 미8군으로부터 구월산 부대가 석방 대상에 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심사가 시작되어 인화의 지위는 원상 복귀되었는데, 815일 오후 2시 마침내 수용소를 등지고 대한민국 품에 안긴 것이다.

이때 인화는 정순에 대한 사랑의 고백과 함께 스스로는 자격이 없다는 말을 건넨다. 그러나 그녀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온기를 느끼던 그는 결국 정순의 사랑을 수용한다. 822일 구월산 부대가 인천으로 출발을 하는 날 인화도 정순도 동행한다. 인천에 도착하여 소리 없는 처절한 함성이 그의 전신으로 퍼지고있었지만 인화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군인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대원들의 함성은 언제나 그에게 더할 수 없는 용기를주었지만 이제 자신의 남은 일은 구월산 부대의 정신과 명예를 드높이는 일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인화는 대원들과 헤어지게 되었지만 구월산 부대원들은 정작 갈 곳이 없었다. 대원들은 대부분 국방부의 후속 조치를 청원하며 인천에 남았고, 인화는 부하들을 일할 수 있게끔 해준다. 그 과정에서 인화와 정순의 소박한 결혼식이 열린다.

 정순은 검은 통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었다. 그리고 대원들이 꺾어온 들꽃을 머리에 꽂고, 꽃다발을 한 아름 묶어서 들었다. 인화는 검은 물을 들인 군복을 입고, 이발을 하고 나서 난생 처음으로 머리에 포마드를 발랐다. 양쪽 가족들은 아무도 없이 오로지 대원들만의 축하 속에 그들은 결혼식을 올렸다. 축가는 구월산 유격부대 노래로 대신했다. 그 노래는 바로 그들의 애끓는 함성이기도 했다. 대원들은 마치 자신들이 결혼하는 것처럼 들떠서 펄펄 뛰며 즐거워했다. 전쟁이 없었다면 지금쯤 모두 다 여자를 꿈꾸고, 불같이 뜨거운 사랑을 할 나이들이었다. 대원들은 모두 다시 못 올 청춘을 전쟁에 빼앗긴 채, 앞날에 대한 확신도 없이 낯선 땅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들은 천인화를 결혼시킴으로써 그들이 못 이룬 사랑과 가정에 대한 꿈을 잃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새 신랑이라도 된 것처럼 들떠서 춤을 덩실덩실 추며 축하를 해주었다.

 검은 통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정순은 전쟁에 피어난 한 송이 꽃이다. 인화와 정순의 사랑은 대원들이 꺾어온 들꽃처럼 아름답고 숭고하다. 이는 이 소설이 지향하는 사랑의 서사를 완결하는 장면이자, 그들의 애끓는 함성을 담은 상징적 장치이기도 하다. 이 축하와 사랑의 순간은 전쟁을 벗어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전쟁 한복판에 예외적으로 찾아온 것이기도 할 터이다. 38선이 휴전선으로 변하여 이북 땅과 섬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떠돌아다녔을 때 그네들이 쌓아올린 충혼탑처럼 그렇게 추념과 기억의 시간은 쌓여갔다. 1953727일 휴전 협정이 결국 타결되었고 이제 인화는 인천에 정착하여 고향 황해도며 구월산에서보다도 훨씬 더 많은 세월을 살아가게 된다.

 

6. 노경(老境)에 돌아보는 전쟁과 삶

 말할 것도 없이 한국문학은 예술을 통해 분단 체제를 사유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왔다. 전쟁 때 등장한 내면성 영도(零度)의 속물들을 통해 어느 체제가 더 우월한 것인지를 끊임없이 증명해왔다. 김선주는 전부 말할 수 없는, 그러나 자신이 말할 수밖에 없는 진실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말하려 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소설적 증언의 무대에 선 것이다. 그가 쓴 소설의 주인공들은 가혹하고 신산한 전쟁을 통해 힘겹게 이어온 목숨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전쟁의 참상과 유산을 들려주는 동시에 그 폐허의 세월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들려주는 시대의 증인이자 스스로의 변호인들인 셈이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전쟁의 기억을 증언하는 무대 한복판에 인화가 서 있는 것이다.

인화는 웅도에 있을 때 만났던 제랄드 소위가 자신을 찾는다는 전갈을 듣고 다시 용유도를 찾는다. 거기서 다시 바다야말로 누군가를 집어 삼킨 무덤이자 누군가를 살게 하는 영원한 생명의 모태임을 생각해본다.

 태양을 삼킨 바다는 긴 휴식에 들어간 듯 회색빛으로 한껏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했다. 바다는 언제나 그랬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의 심술에 못 이겨 수장이 되어버려도, 거센 풍랑으로 미친 듯이 춤을 추며 바다 속까지 온통 뒤집어 놓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을 굳건히 견뎌내고 나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의연하게 묵묵히 흐르기만 할 뿐이다.

 소설의 처음도 마지막도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게 바다는 인화의 내면을 여전히 의연하게 비추고 있다. 이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운 태양을 삼킨 바다는 신산한 삶을 견뎌내고 의연하게 살아온 인화를 그대로 환기하는 상관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김선주 작가에게도 바다역사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 이 땅에서 전쟁은 언제 완전히 끝날 것인가. 천태만상의 인간들 삶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과연 올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죽음으로 밖에 얻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인화와 함께 목숨 걸고 싸웠던 대원들의 함성이 느닷없이 하늘을 찌를 듯이 귓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들의 우렁찬 함성은 때때로 그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항상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곤 했다.

천인화는 캄캄한 허공으로 변해가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을 오롯이 온몸으로 감내하고 있는 자신을 선연하게 보았다.

   궁극적으로 소설 󰡔함성󰡕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당기려는 예술적 의지를 내장하고 있다. 죽음을 통해서만 수 얻을 수 있는 그 가치들이야말로 인화와 함께 목숨 걸고 싸웠던 대원들의 함성을 지키고 기억해가는 남은 자들의 실존적 책무라는 점을 작가는 소중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는, 캄캄한 허공으로 변해가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을 감내하는 인화의 노경(老境)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인하며 항구적인 인간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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