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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2-10 18:58
 조회 :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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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평(2011겨울호)
김 석 철
(전 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
필자가 몇 년 전『월간문학』에 몇 개월 간 시조월평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언급을 한 것으로 기억하지만, ‘시조’는 우리말의 토양에서 자생한 시의 형태이기에 우리의 정신이나 혼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언어 예술이다. 따라서 시조는 한국 서정시의 고향이자 우리 민족 고유의 유일한 전통시인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시조시인협회에서는 창사(唱詞)로 쓰이던 시조가 문학의 장르로 자리매김한 해를 1906년으로 인정하고, 2006년엔 현대시조 100주년기념 잔치를 성대히 개최하면서 ‘시조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시조’에 대하여 여러 면에서 이론이 분분한 것도 사실이지만, 어떻든 ‘시조’는 우리시로서 전통적으로 그 틀이 있고 율격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므로, 이제 우리가 전통적 정형성의 그릇에 현대적 시정신을 담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흔히 시조는 그 정형의 율격에 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시조다운 시조를 창작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계간 『시조문학』 가을호(통권 180호)에는 160여 편의 시조가 실려 있어 우리 시조문단에도 결실의 계절이요, 수확의 계절임을 실감하는 느낌이었다. 제가 쓰는 이 글은 작자의 시작 배경이나 독자의 견해와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니, 전문적 작품평이라기 보다는 순전히 필자의 주관적인 작품 감상 수준이라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랄 뿐이다. 또한 타 문예지에 발표된 시조들은 지면 관계상 거론하지 못하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럼 먼저 <소시집>란의 시조 10여 편 중에서 한 편을 골라 살펴보기로 한다.
을숙도 아침해가 부챗살을 펼쳐 들면
갈대숲 철새들이 점점이 날아 올라
솔바람 나래짓마다 수묵화를 그리더니.........
수몰지구 실향민들 가슴에다 못을 박는
하구언 공사장의 녹슬은 망치소리
기러기, 소음에 놀라 이삿짐을 꾸린다.
가위눌린 갈대들도 저희끼리 끌어안고
물속의 그림자를 고향이듯 굽어보다가
산산이 갈꽃 흩으며 울음이나 삼킨다.
무심한 모래밭 가득 발자국만 남겨둔 채
핏빛 노을속으로 사라지는 저 울음들
아, 정녕 어느 하늘에 지친 나래 쉴거나.
- 유승식, 「을숙도 철새」 전문
“새〔乙〕가 많이 살고 물이 맑은〔淑〕 섬”이라는 뜻의 을숙도(乙淑島)는 낙동강을 동서로 가로질러 육지와 연결시킨 하구둑을 만들면서 지금은 옛 모습을 많이 잃었다고 한다. 이 시조는 주지와 주정의 만남이랄까, 쉽게 읽히면서 이미지도 선명하게 들어난다. 첫 수에서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을숙도 본래의 모습, 둘째 수에서는 하구둑 공사의 소음 피해, 셋째 수에서도 하구둑 공사로 인한 환경훼손, 넷째 수에서는 을숙도를 떠나는 철새들의 울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적절한 비유법으로 표현의 효과를 얻고 있으며 연과 연 사이엔 더 절실한 뜻을 숨겨두고 있음도 짐작이 간다. 전체적으로 순차적 점진적 구성과 함께, 개발로 인한 자연환경 훼손의 피해를 인간과 철새들의 슬픔으로 묘사하여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다음 <신작특집>란에는 여섯 분의 작품 30여 편이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 3편만 골라 살펴보기로 한다.
맑고 고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돌아와서
저 푸른 하늘 아래 삼월도 햇살 받고
온 누리 찬란한 꿈을 어여쁘게 누린다.
- 김 준, 「꽃」 전문
시조의 묘미는 이렇듯 단수에 있다. 시조는 단수가 우리 전통 형식 본래의 모습인 것이다. 찬찬히 음미해 보면 행간에서 여백의 시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물 흐르듯이 순수 우리말을 사용하여 깔끔하게 다듬어진 시조다.
이 시조에서 ‘꽃’의 그 상징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시조의 제목이며 주요 모티브를 이루고 있는 꽃, 꽃은 누가 뭐래도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김 시인께서는 이 작품 외에도 4편을 더 발표하고 있었는데 그에 따른 ‘시작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시조라는 이름으로 발표되고 있는 작금의 많은 작품들이 파격을 서슴지 않고 있어 시조의 정체성은 날로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다. 그 만큼 민족문학인 시조의 앞날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한결같이 시조의 고루한 형식과 지나친 구속력이 불만이고 작품쓰기가 그만큼 불편하여 좋은 작품을 쓸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설시, 엇시, 심지어 절장시까지 등장시키고 앞으로 삼행의 형식도 모자라서 사행시, 오행시도 시도하여 시조라고 내세울 판이니 이를 어쩌랴. - 시조는 시가 되지만 시는 시조가 될 수 없다. 오로지 시인의 숙련도와 그 시적 역량에 기인하는 것이다.”
우리 시조문단이 당면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되어 특별히 인용해 보았다. 요즈음 김 시인께서는 신작 단시조 600여 수를 창작하여 『훔쳐본 아내 얼굴에서 세상 일을 알겠구나』라는 열 번째 시조집도 펴내셨다. 시력 50여 년에 이르는 창작열은 근래에 들어 더욱 왕성하게 불타오르고 있다. 시조의 본령을 지키고 있는 파수꾼이 아니겠는가.
이악한 거미줄을 용케 비켜 날아와서
이슬 묻은 풀숲 길을 한사코 막아선다
내일은 있는 거냐고 떼로 덤벼 묻는다.
- 박영학, 「하루살이」 전문
박 시인은 현재 ‘가람시조문학회장’을 맡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역시 가람 선생의 유업을 받들어 원칙적으로 3행 배행의 시조를 고집하고 있다. ‘시작노트’에서도 “외형의 자유를 구가하려면 자유시를 쓰면 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루살이는 보통 2, 3일 정도만 살면서 알을 낳고 죽는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입이 퇴화해서 먹을 수가 없다고 하니 빨리 죽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가끔 겪는 일이지만 하루살이는 이상하게도 사람 눈앞에서 어른거리며 떼로 몰려드는 습성이 있다. 박 시인은 종장에서 “내일은 있는 거냐고 떼로 덤벼 묻는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감정이입으로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종장에서는 비약의 감행이 적절하게 이루어졌다고 본다. 여기서의 하루살이는 이름처럼 그렇게 연약한 미물이 아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어엿한 생명체인 것이다. 시적화자는 어떤 깨달음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짐작해 볼 수가 있다.
바람을 거느리고 그리움 넘친 마을
대숲과 해송이랑 물위의 갈매기랑
더불어 사는 세월이 희뜩희뜩 번진다
수평선 길게 늘인 그 너머 안개 끼고
산에는 나뭇가지 따뜻이 돋는 빛살
이 포구 가장자리에 어느 누가 정을 놓나.
- 신길수, 「바람 아랫마을」 전문
시인의 시선에 포착된 마을은 그냥 마을이 아니고 의미 있는 정서의 고향이 되고 있다. 그리움이 넘치는 마을이며 정을 놓고 갈 수밖에 없는 시인의 마을이 되는 것이다. 이 시조는 동양적 관조의 자세에서 서정의 세계를 온건한 어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조의 보법을 잘 지킨 이 작품에서 행간마다 숨어 있는 관조의 밀도를 가늠해 보는 재미가 있다.
다음 <단시조단>에는 한 시인이 두 편씩의 작품 발표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한 편씩을 골라 보았다.
억수로 퍼붓더니 세상에 배 뜨것다
변두리 잠긴 마을 덮쳐온 땅거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 쑥 한 점이 파랗다.
- 김명호,「폭우」 전문
번개를 깃발로 단
몽고병의 말발굽 소리
장성(長城)을 함락하는
야생마의 검은 광란
함성은 장대로 서서
푸른 절규 쏟는다.
- 김사균, 「폭우」 전문
흥미롭게도 똑 같은 제목의 두 시조가 ‘단시조단’에 실려 있었다. 위에 보는 바와 같이 김명호 시인의 작품은 장별 배행으로 행간에 여백을 둔 3행시조이고, 김사균 시인의 작품은 구별 배행으로 6행시조를 3연으로 표기하고 있다. 위의 작품들을 감상해 보는 중에 얼핏 “시를 구성하는 두 개의 원리는 어조와 은유다.”라는 말이 상기되기도 했다. 김명호 시인의 작품은 「폭우」가 내린 후의 정경을 그렸는데, 엄청난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파란 쑥의 강한 생명력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어쩌면 역설적인 말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김사균 시인의 「폭우」는 현재형이다. “번개, 말발굽 소리, 장성을 함락하는, 야생마, 검은 광란, 함성, 장대, 푸른 절규 쏟는다.” 등의 시어와 시구(詩句)만 보더라도 폭우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김 시인은 어떠한 소재라도 능히 자신의 채취를 풍기는 힘을 얻게 만드는 것 같다. 짙은 은유의 농도가 다분히 독자적인 개성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
네 떠난 빈자리를 무슨 수로 채워내랴
솔바람 벗을 삼아 극락정토 오르게나
한 평생
공들인 선업(善業)
꽃이 피네 열음 하네.
- 김영환, 「석별」 전문
‘석별’은 그야말로 ‘애석한 이별’을 뜻한다. 화법으로 보아 가까운 벗의 갑작스런 타계에 그 선업과 공덕을 기리며 애석한 심정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본다. 기교를 뒷받침하고 있는 교양이 있어 기교가 기교로 보이지 않는 깔끔한 단시조다. 작품의 저변에는 깊은 불심이 주조를 이루고 있음을 짐작할 수가 있으며, 개인적 정한의 정서를 보편적 시어로 환치시키고 있다. 특히 종장의 3행배치는 시각적 효과와 아울러 강조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고 할 것이며 “꽃”과 “열음”은 돌아가신 분의 선업의 결과물일 것이다. 나름대로 작자의 인생관이 가미된 작품이라고 짐작해 본다.
며칠 내린 장대비에
비대해진 강물이
유곽의 포주처럼
게걸스레 끌어안은
잡것들,
익명뿐이라
돌려보낼 수도 없네.
- 나순옥, 「버린 사람 없다는데 -쓰레기」 전문
우리는 실로 많은 작품을 대하지만 개성이 있는 시조와 만나기가 쉽지는 않다. 이 작품은 다분히 개성적이며 해학적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약간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요하고 있어 호소력 있게 읽혀지기도 한다. 시적 발상도 진지하며 대상을 포착하고 구성하는 방식이 남다르다. 개성적인 시어를 비유와 상징, 함축으로 하나의 의미망을 구성하여 독자에게 공감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종장 “잡것들,/ 익명뿐이라/ 돌려보낼 수도 없네.”에서는 시어의 선택과 그 부림도 돋보인다.
밤마다 저승 손님 찾아와 안부 물어
아픈 곳 없는데도 진주를 줍는다고
말없이 일러주니까 작은 위로 되더구만.
- 대우, 「병상에서」 전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불교 용어가 떠오른다. 세속의 명리와는 연줄을 끊은 스님의 시조다. 저승 손님이 찾아올 정도로 아픔이 극에 달한 지경에도 해탈한 구도자적 면모를 유지하시는 큰스님을 그려본다. 수도승은 이‧저승을 넘나드는 병상에서도 사유의 영역을 무한히 깊고 넓게 누리고 계신다. 특히 중장에서 “아픈 곳 없는데도 진주를 줍는다고”라고 한 수준 높은 은유 수법은 가히 선(禪)적 경지에서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표현인 것이다. 또 이 시조에선 행간에 여백을 둔 표기를 함으로써 더 많은 이미지를 숨겨두고 있음도 짐작할 수가 있는데, 이러한 언어의 절제와 감정의 절제는 시조가 요구하는 기본 원리다.
봄 맞아 앞산 숲이 물레를 잦습니다.
씨줄 날줄 엮는 바람, 햇살이 재단하여
신록은 2차 성징(性徵)처럼 가릴 것을 다 감추네.
- 장지성, 「신록 입히기」 전문
서정의 중량감과 시적미덕을 느끼게 한다. 자유로운 연상 작용과 함께 율격을 잘 지키면서도 미적형상화를 거쳐 의미율화를 꾀하고 있다. 표현에 있어서도 상징적 수법으로 시조의 현대성을 살린 작품이다. 초장에선 시상을 풀면서 시적대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서정시는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이렇게 자기표현인 것이다. 시적인 경이로움과 소재의 광범성도 보여주고 있는 이 시조는 여러 기법과 효율적인 수사를 통한 다양한 방법으로 이렇게 하나의 예술작품을 창조해 내고 있는 것이다.
바람도 숨을 죽인
심지 끝 빨간 불똥
처연한 비색을 띤
시조 한 수 나툴진대
청자요(靑瓷窯)
파란 불꽃으로
혼을 마저 사르리야.
- 허 일, 「비원(悲願)」 전문
짧은 형식 속에 시상을 이렇게 정제하고 응축하는 작업은 고도의 언어절제가 따름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정제미와 함축미가 일품이 아니겠는가. 개성이 뚜렷한 독보적인 시세계를 누리고 있다. 노산 선생은 일찍이 “상(想)에 형식이 절로 따라야 한다.”고 말했었다. 시조의 묘미와 격조를 잘 살린 작품으로 시가 있는 시조요 가락이 있는 시조라는 걸 실감 할 수 있다. “빨간 불똥, 처연한 비색, 청자요(靑瓷窯), 파란 불꽃” 등의 시어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몰입의 심오한 경지에서 그 시혼은 뜨겁다. 시는 “영롱한 언어의 사리”란 말이 떠오른다. 허 시인의 숙명적인 집착과도 같은 시조사랑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이 작품에서는, 장과 장 사이에 여백을 두어 깊은 의미를 숨겨두면서도 시상을 자연스럽게 이끌고 연결 짓는 호흡의 묘리가 있어 부럽기만 하다.
<가을시조단>에는 모두 열아홉 분이 두 편씩의 시조를 선보이고 있었는데 지면 관계상 그 중에서 세 편만을 골라 살펴보고자 한다.
걸어가다 만나거든 손을 잡고 가자꾸나
품은 뜻이 달라도 한 곳 향해 가는 길을
망초 꽃
하얀 눈망울
읽으면서 가보자.
손잡으면 고향 서로 묻지를 않는 거다
맺어진 너와 나의 설레이는 인연 속에
종다리
우는 보리밭
푸른빛도 한 줌 넣자.
- 김영애, 「강」 전문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단아한 작품이다. 뜨겁게 일렁이는 감정의 물굽이를 깊고도 조요하게 가라앉힌 경지로서, ‘강’의 이미지를 우리 ‘인생길’로 비유하여 인식의 가치를 상기시켜 주고 있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 인생의 참 모습을 찾아보고 확인하는 것도 시조의 주요한 발상법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결이 고운 은유와 감정이입으로 희망적, 진취적,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다. 화해와 포용으로 감싼 어울림의 자세를 견지한 시인의 진지하고도 정감어린 표현은 독자들을 포근한 사랑으로 이끌며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시인은 자연의 내밀한 소리까지도 들으며 살아가는 예술인이다. 넉넉한 안정감을 주는 두 수의 연시조를 청유형 어미로 종결함으로써 공감의 폭을 한껏 넓혀주고 있다.
쇳내 나는 한 평 남짓 박스 안이 삶터다
주렁주렁 자물쇠 먼지나 털고 나면
나들문 활짝 열치고 일없이 기다린다
장돌림 땜장이로 한때는 잘나가다
버리고 온 사립짝에 걸어둔 자물쇠도
지금은 녹슬고 삭아 구실조차 잊었을라
열쇠 잃은 아파트 문도 고쳐 주었다만
애당초 열 길 없는 빗장 둘러 갇혔는지
숨 막는 손바닥 공간 벗어나지 못한다.
- 모상철, 「자물쇠 장수 박 씨」 전문
창작은 늘 새로운 발견이라고 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찮은 소재에서도 시상을 포착하여 이렇게 3장 형식 속에 구성하고 전개하는 2차적 공정을 성공시켜 세 수까지 이끌어 감은 모 시인의 저력이라 할 것이다. 픽션의 서사와 시적인 묘사가 어우러져 새로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전지적 작가시점에 앉아 있는 시의 화자는 시적 대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예사롭지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장감 있는 시어 선택에 있어서도 단순이 전달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뭔가를 느끼게 하는 생명체로서의 정서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본다. 여기서 우리는 ‘자물쇠’의 상징성도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처럼 살고 싶네
나의 삶을 시로 쓰며
없어도 가진 자 마냥 상상으로 부자 되고
복 받아 행복누리며 싯귀〔詩句〕처럼 그렇게.
눈엔 안보여도
영(靈)으로 대화하고
행간(行間)을 채우시는 그 분의 뜻 헤아리며
읽는 이 가슴을 울리는 선한 시를 쓰고 싶네.
읽는 이 누구에나
꿈꾸고 기쁨 주어
그 사랑 온기로 세상을 덥히면서
싯귀를 암송하고픈 명작 한 편 쓰고 싶네.
- 정순량, 「시(詩)처럼 살고 싶네」 전문
시인에게 있어 삶에 대한 깊은 사색과 관조의 자세는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이 작품은 삶의 궤적에서 추출된 정 시인의 소박한 희원이 아니겠는가. 둘째 수의 중장에서 “그 분의 뜻”은 “절대자의 뜻”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선명하다. 세 수 모두 초장만 구별배행으로 표기했고 중장과 종장은 장별배행을 함으로써 시각적 효과와 이미지의 효과, 의미의 효과 등을 거두고 있다. 또 표현이 구어체로 잘 다듬어져 낭송하기엔 더욱 안성맞춤일 것 같다. 문학은 인간의 삶을 재해석하고 표현하는 창조의 세계이며 인간 실존의 탐구와 성찰일 터, 삶의 지혜는 오랜 세월의 체험과 고뇌 끝에서만 체득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시조는 참신한 시어를 사용하면서 행간에는 많은 이미지를 숨겨두는 압축과 생략, 암시의 묘미를 살려야 한다. 시조는 내적 의미구조도 잘 갖추어야 하고, 그 율격도 이미지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만 한다. 시조는 민족의 얼이 담긴 겨레의 산 역사인 것이다. 시조가 한국시의 정화로서 세계화가 되기 위해서는 시조의 현대적 계승과 보다 진전된 창조적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여 우리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시조의 활로개척에도 힘써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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