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는 술술 내려왔는데 결구를 승퇴월하문(僧*推月下門) 스님은 달빛아래 문을 밀친다로 해야 할 것인지,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 로 해야 할 것인지, 여기서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고’와 ‘퇴’ 이 두 자를 소리 내어 중얼대면서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고 미는 시늉도 해보곤 한다. 이렇듯 작품의 세계에 빠져 골몰하고 있던 가도는 저 앞에서 고관 일행이 오는 것도 몰랐다. 여전히 중얼거리며 손짓을 하면서 가다가 결국 노새는 그 행렬을 뚫고 들어가 부딪치고 말았다.
위병들은 저마다 소리치며 노새 위의 가도를 끌어내려 한퇴지 앞에 꿇어 앉혔다. 가도는 놀라면서 작시에 마음이 팔려 무례를 범했다는 사정을 말하고 사죄하였다. 퇴지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고 있다가
“‘고’로 하는 것이 좋겠네.” 라고 말하였다.
이 사건이 인연이 되어 한유와 가도는 좋은 시우(詩友)가 되었다.
이 고사를 통해서 퇴고(推敲)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도가 노새를 타고 가면서 시를 짓는 것도 그렇지만 실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행동으로 옮겨보는 것 등은 오늘날 시를 쓰는 사람도 본받을 만한 일이다.
퇴고는 모든 글쓰기에서 이루어진다. 문장론에서 집필을 끝낸 뒤 반드시 살펴야 한다는 뜻으로 ‘퇴고의 3원칙’이 있다.
첫째는 부가의 원칙이다. 쓰고자 하는 바를 충분하게 드러냈는가? 즉 요구조건이 충족되었는가를 살펴 빠뜨린 부분을 첨가 보충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삭제의 원칙이다. 글 쓴 사람의 솔직한 심정이 드러났는가? 가식이나 허식이 없는가를 살펴 불필요한 부분, 지나친 부분, 조잡하고 과장된 부분 등을 삭제한다.
셋째는, 재구성의 원칙이다. 글의 순서를 바꾸어 효과를 더 높일 수는 없는가? 즉, 문장의 구성을 변경하여 효과를 높일 수 있다면 구성을 다시 한다는 것이다. 단어 하나하나, 절구 하나하나를 살피면서 가장 효율적으로 재구성해 보는 것이다.
시조가 갖는 형식적 특성을 비롯해서 자기가 의도 했던바 등 여러 가지를 점검해야 한다. 특히 시조의 경우는 퇴고하는 과정에서 음보간의 유연성과 율격, 자수율, 함축미, 의미율(통사율)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작품을 쓰고 나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 퇴고에 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퇴고에 따른 장지성의 퇴고론도 일가견이 있기에 옮겨본다.
“작품의 완성기간은 길면 길수록 좋다. 특히 삼단논법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조의 특성상 초장, 중장, 종장의 연결고리가 유연하여야 하며 가장 압축되고 정제되고 농축된 것이 정형의 생명이라 할 때 한편의 시조가 세상(지면)에 빛을 볼 때까지 후속 기간을 얼마나 거쳤는지에 그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질 것이다. 과일주를 빚을 때를 비유한다면 초고는 담글 때를 말하는 것이고 개고는 발효기간을, 탈고는 숙성기간을, 그리고 후속 기간은 마지막 점검을 말하는 것이다”. 라 하여 작품 발표에 신중성을 기했다.
그렇게/ 붐비던 여름도 //이젠 물러/ 앉았는데 →17자
플라타너스 /낙엽 진 거리를// 혼자라도/ 걸어보아라 →20자
우리가 /세월의 강물이// 흘러간 걸 /금시 보리라. →18자⇒55자
철새들/ 울고 간 하늘을// 목도리로 /둘둘 감고 →17자
플라타너스/ 낭자한 거리를// 손을 잡고/ 걸어보아라 →20자
우리가 /눈물의 行間이// 넓어진 걸 /서로 보리라.→18자⇒55자
－정완영, 낙엽을 밟으며－
원로시인이고 정격을 고수하고 있는 시인으로 안다. 그런데 요즈음 문예지에 발표되는 몇 편의 작품을 보고 많이 의아해 했다. 이 작품 또한 자유시의 표현을 닮은 과음보 투성이다. 자유시와 시조는 표현상에도 차이가 있다. 자유시 같이 표현하려는 데서 시조의 참맛을 잃어버릴 수 있다. 시조시인은 시조의 맛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표현해야 한다. 자유시와 시조는 율격에서부터 다르다. 앞에서 논한 율격론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자유시를 모방하려 하면 그때부터 시조의 맛이 달라진다. 의미는 그대로 두고 충분히 다듬을 수 있는데도 자유시처럼 표현하여 발표하는 경우를 인지도가 높다는 시조시인들에게서 많이 보게 된다. 과음보를 하지 않고 아래와 같이 정격에 맞게 퇴고해 보았다. 퇴고의 원칙 중 둘째 삭제의 원칙과 셋째 재구성의 원칙을 적용하여 고쳐 보았다.
‘플라타나스’는 물론 한 음보이다. 하지만 첫음보에서는 피하는 것이 시조의 기본틀에도 맞고 바람직하다. 그리고 각 장 둘째 음보는 모두 두 음보로 나눠도 무방한 음보로서 과음보 현상을 보인다. 과음보란 위의 시조 둘째 구처럼 2어절 이상, 5음절 이상으로서 두 음보로 나눌 수 있는 음보를 과음보라 한다
. 종장 둘째 음보는예외로서 5－7음절을 허용한다.
붐비던/ 한여름도 //이젠 물러/ 앉았는데→15자
낙엽 진/ 저 거리를 //혼자라도 /걸어보라 →15자
흘러간/ 세월의 강물을// 우리 다시 /보리라.→16자⇒46자
철새들/ 울고 간 하늘// 목도리로 /둘둘 감고→16자
낙엽이/ 낭자한 거리를// 손잡고 /걸어보라 →16자
넓어진 /눈물의 행간을// 우리 서로/ 보리라. →16자 ⇒48자
조지훈은 “승무”를 “착상한 지(그의 나이 19세) 열한 달, 집필을 시작한지 일곱 달 만”에 완성하였다. 즉 착상한 지 18개월－1년반 만에 발표했다. 시조는 우리의 언어구조와 풍성한 어휘를 잘 운용하여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면 시조의 정격을 얼마든지 지킬 수 있다.
다음 기존시조 몇 편을 정격으로 고쳐보자
1.
바람이 서늘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마루에 구름은 하늘을 벗어나고 ->구름은 서산마루 하늘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이병기, 별－
위의 시조는 가람의 ｢별｣첫째 수이다. 중장 첫 구를 정격구조에 맞게 고쳤다. 곧 퇴고의 원칙 둘째와 셋째를 적용하여 ‘서산마루에 구름은’을 ‘구름은 서산마루’로 고쳤다. 이렇게 중장에서 음보간 자리만 바꾸어도 운율은 더욱 자연스럽고 온전한 정격시조가 된다. 이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격으로 가는 길로 조금만 마음을 돌리고 퇴고의 원칙에 따라 다듬으면 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변격과 파격의 과(過ㆍ寡)음보 현상으로 시조의 격을 자유시화 하는데 문제가 있다. 또 정격을 무시한 선배 시조시인들의 시작(詩作)태도와 형식을 시조의 현대화인양 따르는 것도 문제이다.
아래 시조의 궁서체 부분을 비교해 보자. 의미에 변화가 없다. 도리어 온전하고 단아한 정격시조의 모습이다. ‘定型而非定型’이니 ‘非定形而定形’이란 말이 들어올 수가 없다.
2.
*나의 무릎을 베고 마즈막 누우시든 날 ->아들의 무릎 베고 마즈막 누우신날
*쓰린 괴로움을 말도 참아 못하시고 ->쓰라린
매었던 옷고롬 풀고 가슴 내어 뵈더이다
－이병기, 젖－
* 각 장 첫음보는 3음절로 고쳤다.
3.
*다 나가고 없는 뜰에 ->아무도 없는 뜰에
목련화가 피었네
골고루 사람이 없는 데 따라 ->골고루 인적 없는데
고이 여는 꽃이여
－박재삼, 부재 -
**의미상 변화는 주지 않고 시어를 압축하거나 가감했다.
4.
눈을 가만 감으면 구비 잦은 풀밭길이 ->가만히 눈감으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白楊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 집집이 끼니마다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요
－김상옥, 思鄕 1,3수 전문－
**첫음보를 3음절로 고쳤다
5.
*비석 옆에 노송 하나 굽게 휘어 늙어 있다 ->비석 옆
*우리 엄마 이 낙에서 아들 배웅 서울 갔다 ->울 엄마
*이 솔아 /네가 정녕 그 솔이거든 / ->솔아 너/ 정녕 그 솔이거든 /
*말 좀하여 /주렴. ->말 좀하여/ 주려마.
－최현배, 고향의 노래 (10수 중 마지막 수)－
**첫음보를 3음절로 고치고 종장은 퇴고의 원칙을 적용하여 고쳤다.
고시조를 보면 현대시조 형식(3·4·3(4)·4/ 3·4·3(4)·4/ 3·5(7)·4·3(4)에 꼭 맞는 것은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약7%이다. 하지만 전체 음절수는 곧 자수율은 (43-47)가 약80%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통사 의미론적 연결고리를 이루는 3개의 章(초· 중·종장)으로 시상이 완결되었다.
- 이정자의 [현대시조, 정격으로의 길](국학자료원, 2010)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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