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공존’을 위하여
정희경
영화로도 상영된 바 있는 김려령의 청소년소설 『완득이』는 소외계층, 장애인, 다문화가정과 이주노동자의 삶을 따뜻한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청소년소설에까지 등장하는 ‘다문화’는 이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150만 명이 넘어서고 있고, 이 가운데 결혼이주여성만 23만여 명에 이르고 이들이 낳은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20만여 명에 이른다는 통계다. 사회곳곳에서 다문화가정을 위한 많은 사업들이 행해지고 있는 점은 바람직하다. 문학도 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시대를 반영한다고 자부하는 시조는 소외되고 아픔을 겪고 있는 그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외면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이는 시조의 외연 확대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권갑하 시인은 시조집 『아름다운 공존』을 통해 ‘우리 이웃 다문화 가정의 아픔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노래한 바 있고 박현덕 시인은 시조집 『스쿠터 언니』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노래한 바 있다. 많은 시인들이 우리의 이웃이 된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삶을 읽으려는 노력을 보인다. 그 중 다섯 작품을 따라 읽으며 시인의 눈에 비친 현실과 시인이 제시하고 있는 ‘다문화’ 속 ‘공존’과 ‘소통’의 길을 생각해 본다.
우즈벡, 타슈켄트
-킴해요, 킴해 킴씨!
-옛날에 할아버지 강제이주 왔다 해요!
어여쁜 모델 아가씨
김해 김씨
고려인 5세
-변현상 「인동초」 전문, 《시조21》 2013 가을호
지난 2014년 1월 20일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우즈벡 고려인 출신 아르까딘(58)목사는 자유발언을 통해 "국내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어려움이 극에 달해 굶어죽기 직전에 처한 동포들도 있다" 며 "일제강점기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고려인 후손 2, 3세들이 고국에 들어와 편안하게 머물며 남은 여생을 향유할 고려인마을이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말해 눈물을 적시기도 했다고 한다. 남미나 하와이로 혹은 연해주, 사할린,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강제 이주한 우리 동포들, 또한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 그들이 있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우리나라 안에서의 ‘다문화’를 얘기하기 전에 고려인과 조선족으로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동포들, 그리고 그 후손들을 안는 것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눈여겨 봐야 할 작품이다.
시인은 줄기가 마르지 않고 겨울을 견뎌 봄에 다시 새순을 내는 인동초를 고려인 5세에 비유하고 있다. 요즘 TV 홈쇼핑에 자주 등장하는 그녀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타슈켄트에서 만난 그녀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어떤 부연 설명도 하지 않는다. 다만 ‘우즈벡 타슈켄트’ 출신 ‘어여쁜 모델 아가씨’의 어눌한 한국말을 툭 던지고 있다. ‘그녀가 있는 곳이 한국이든 우즈벡이든 그녀는 ‘고려인 5세’로서 ‘인동초’로 살고 있는 것이다. ‘인동초’라는 제목이 행간 속에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인동초’는 그녀가 걸어온 과거의 모든 고난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또한 꽃 피울 봄날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녀가 ‘킴해 킴씨’임을 잊지 않는 한 ‘인동초’는 우리나라 산야 어디서든 꽃을 피울 것이다. 제목이 갖는 큰 비중이 이 시조를 더 단단하게 하여 단수로서의 성공을 가져다준다.
텃새만 살던 땅에 하나 둘씩 날아든 새
겉모양은 같아도 말이 서로 달라서
만나면 주고받는 인사 니하우마, 안녕,이다.
그대 눈 뜨기 전 아니면 뒤척일 때
부리로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으리
지어도 살지 못할 집 제 집인 양 짓고 있는.
날개를 가졌어도 날아본 적 없었다
행복의 안전 고리 허공에 걸렸어도
그 모습 들켜버릴까 담장으로 가리고.
어제는 오늘이었고 오늘은 또 내일
기약도 없는 꿈을 버릴 수가 없어서
오늘도 한데 모여서 집을 짖는 저 소리.
- 장문 「딱따구리는 집을 짖는다」 전문, 《시조세계》 2011 여름호
전세계에 서식하며 210종이나 되는 딱따구리는 나무에 구멍을 여러 개 파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집을 짓고 있는 혹은 짖고 있는 딱따구리는 외국인 노동자나 결혼이민자일 것이다. 딱따구리의 집은 ‘부리로 두드’려서 완성되므로 시인은 의도적으로 ‘집을 짖는’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이는 박지현 시인의 해설처럼 ‘집을 짖는’ 행위가 그들에게는 울부짖는 행위와 별반 다름이 없다. 집 한 채를 얻기 위해서 한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온 몸으로 울부짖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수에서 ‘짓고 있는’이 마지막 수에서 ‘짖는’으로 변한 것은 그들의 울음소리를 귀담아 듣는 시인 혹은 화자의 변화 된 시각이다. 소통이란 먼저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는 것을 시인은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날개’도 ‘행복’도 ‘꿈’도 있다. 지금은 ‘날아본 적 없’고 ‘담장으로 가리고’있지만 ‘꿈을 버릴 수가 없어서’ 그들의 내일은 집 짖는 일이 계속 될 것이다.
딱따구리로 형상화된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민자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두 작품을 통해 그들을 보는 시각에 더 가까이 가 본다.
스리랑카 노동자가 염색공장을 나왔다
방금 지나 간 길 마당 한 쪽 귀퉁이
빨갛게 찍히는 물감
발바닥이 부푼다
코끼리 발자국은 아니더라도 발갛더니
바지를 벗자 물방울들
또르르 구르다가
소름이
꼭두서니 잎에 이슬처럼 돋았다
수돗가 물을 받아 씻어낸 새끼발가락
부처님 입술 닮은 그가 담담하게
양말을
갈아 신으며 차를 끓여 우려낸다
-이석구 「실론티를 마시다」 전문, 『커다란 잎』 2010 천년의 시작
출산율 저하와 인구 고령화로 인한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로 이제 소위 3D 업종은 외국인 노동자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 경제의 한 축을 외국인 노동자에게 의존해야한다는 게 현실이다. 외국인 노동자와 우리 경제가 갑도 을도 아닌 서로 의존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그들은 우리에게 건실한 노동력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염색공장에 근무하는 스리랑카 노동자가 주인공인 이 시조는 ‘붉은 물감과 실론티(스리랑카산 홍차)의 붉은색이 노동과 휴식, 이국에서의 고통과 고국을 향한 그리움으로 함께 물들어 다문화적 감각을 가진 작품’이라는 유성호 교수의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빨갛게 찍히는 물감’은 실재 염색공장의 물감이겠지만 스리랑카 노동자의 피의 색과 오버랩 된다. 그것은 결국 노동의 신성함이며 고단함이다. 그리고 그 물감이 옷도 아닌 발바닥에 묻었다는 것은 오랜 길을, 먼 길을 걸어온 이들의 노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방울’이 구를 정도로 힘겨운 노동을 한 그는 다시 ‘양말을 갈아 신’는다. 그 행위는 ‘차를 우려내’는 휴식을 위한 행위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내일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그에게 있어 ‘차(실론티)’는 고국 스리랑카이며 내일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적나라한 현실감각이나 부당행위에 대한 고발 같은 직설적인 표현이 없어도 ‘실론티’라는 매개물을 통하여 담담하고 감각적, 서정적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삶과 미래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실론티 한 잔을 마시듯 오래도록 그 향이 은은하다.
별들도 고향 간다는 코리아의 추석날에
달님에게 말을 거는 '레디탄' 그녀의 눈
오늘은 달이 되었네, 아주 크고 동그란!
명절이 가까울수록 발소리를 죽인다는
다문화 새댁의 창에 고양이처럼 다가와서
푸르게 담요를 펴는 고향달이 서글퍼.
깜깜한 세상바닥 점자판의 희망을 읽듯
또렷또렷 그 눈빛은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베트남 푸른 달빛이 그녀 눈에 떴네요.
-강은미 「타인의 한가위」 전문, 《현대시학》 2011년 11월
베트남 새댁의 한가위는 쓸쓸하다. 새댁이라는 신분만으로도 한가위는 친정이 무척이나 그리운 날인데 가기 어려운 고향을 두고 낯선 사람과 낯선 명절을 맞아야하는 베트남 새댁의 한가위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달님에게 말을 거는’ 레디탄은 직접 달이 되어 고향으로 달려간다. 고향의 달은 ‘고양이처럼’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다가와서 그녀를 위해 푸른 ‘담요’를 펴준다. 그 담요는 어쩌면 엄마의 냄새가 묻은 담요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눈빛은 ‘두려움’ 가득하지만 담요를 펴주는 고향의 달빛으로 인해 ‘점자판의 희망’을 읽는다. 어쩌면 그녀를 낯선 이국땅으로 내몬 고향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모습이 서글펐지만 결국 ‘베트남 푸른 달빛’의 사랑으로 인해 그녀는 희망을 읽는다.
시인은 ‘그녀의 눈’과 보름달, 베트남의 푸른 달을 한 선상에 놓고 이미지화하여 ‘레디탄’을 서정적으로 잘 그려 주제를 단단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시조의 미덕은 잔잔한 어조로 ‘레디탄’의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향달의 응원과 사랑으로 그녀는 행복하리라는 믿음이 있어 그녀의 서글픔이 서글픔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레디탄으로 상징되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명절 한가위가 ‘타인의 한가위’가 아니라 ‘우리의 한가위’이길 시인과 함께 빌어 본다.
실제로 다문화학 수업을 들으며 그 감정들을 시조로 옮기고 있는 시인을 만나 소통의 길을 생각해 본다.
매화, 연꽃
삼파귀타
무궁화, 해바라기
고향 서로 다르고
향기마저 다르지만
행복한
하루 또 하루
같은 꿈을 가꾸는 꽃
불씨, 천씨, 기씨, 이씨
白씨, 黃씨, 黑씨, 混씨
섬기는 신 다양하고
귀와 입 따로 놀지만
한 하늘
푸른 별빛 아래
얼기설기 사는 뜰
-김영철 「다문화학개론 85-무지개 정원」 전문, 《시조미학》 2014 상반기호
다문화에 관한 작품을 85편이나 썼다하니 과연 ‘다문화’에 천착하는 시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인은 꽃과 종교, 사람을 나열하여 어울림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매화), 스리랑카(연꽃), 필리핀(삼파귀타), 한국(무궁화), 러시아(해바라기)의 국화(國花)를 첫 수 초장에 배치하고 종교와 성씨를 둘째 수 초장에 배치함으로써 ‘무지개 정원’의 색깔을 선명히 하고 있다. ‘불씨, 천씨, 기씨, 이씨’는 중장과 연결해 볼 때 불교,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의미하고 ‘白씨, 黃씨, 黑씨, 混씨’는 백인, 황인, 흑인과 혼혈인을 상징하지만 모두 사람의 성씨로도 읽힌다. 물론 존재하지 않는 성씨도 있지만 시인은 한자 氏자 대신 한글 ‘씨’를 씀으로써 마치 꽃의 씨앗처럼 중의적으로 읽히게 장치해 두었다. 또한 사람이 사는 곳을 ‘뜰’이라 표현하여 그 중의성을 배가시킨다. 사람도 종교도 씨앗이 있어야 태어나는 법이다. 곳곳에 숨겨진 시어의 의미가 반짝반짝 빛이 나는 작품이다.
세계는 ‘같은 꿈을 가꾸’며 ‘얼기설기’ 살아가는 거대한 뜰이며 또 그렇게 살아갈 때 그 정원에는 무지개가 피어날 것이라 시인은 주문하고 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민자들은 몇 십 년 전의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또 조선족, 고려인의 후세라는 이름으로, 다문화 가정의 자녀라는 이름으로 우리곁에 있다. 그들 모두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야 한다. 우리가 그들의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들도 성실한 시민이 될 것이며 우리 고유의 문화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문학은 인간을 치유할 수도 있고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시조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리라 믿는다. 다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소통과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시조가 참으로 믿음직스럽다. 이는 시조가 문학성뿐 아니라 현대성과 시사성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약력
대구 출생. 2008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으로 등단. 2010년 《서정과현실》 신인작품상 당선. 제4회 가람시조문학신인상 수상. 영언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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