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일은 ‘산문시’로 발표된 작품 중에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서정주의 <新婦>처럼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시들이 많이 섞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시들 대부분이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 시’, 즉 <산문의 시>였습니다.

나는 비로소 중학 시절 <진달래꽃> 이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시’ 대부분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 시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 하나 깨닫는 데 무려 60여 년, 평생이 걸린 것입니다.(정말로 참 부끄럽습니다.)

그러면 이야기를 하지 않는 현대시는 무슨 말(詩)을 하는 것일까요? 아니, 현대시는 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일까요? 놀랍게도 이야기는 서정시의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또다시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야기가 시의 정도가 아니라니? 이 세상에 이야기를 하지 않는 예술이 있었던가요? 제가 아는 모든 예술의 원천은 시에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런데 그 예술의 원천이라는 시야말로 바로 ‘이야기 샘’이 아니었던가요? 원시 동굴의 벽화는 한 편의 이야기 시가 아닌가요? 원시인들이 모닥불 피워놓고 둥글게 춤추며 부른 노래야말로 이야기가 아닌가요? 그런데 이야기는 시의 정도가 아니라니! 그러면 시의 정도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또다시 놀랍게도 현대시는 ‘존재 자체’를 형상화한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시는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문학’이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필자가 알아들은 ‘존재’의 의미는 ‘살아가는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필자에게 ‘살아가는 삶’이 제거된 ‘존재 자체’란 인식조차 불가능한 미지의 대상입니다.

‘존재’의 삶의 양상은 각기 다릅니다. 삼라만상(參羅萬像)이라는 말이 그런 뜻 아닌가요? 그러므로 각개 존재의 ‘살아가는 삶의 양상’은 곧 그것만의 ‘존재의 의미’를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은 ‘행위의 모방’이라고 한 줄로 압니다. 저는 ‘행위의 모방’이란 ‘그것만의 존재의 의미의 모방’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창작’의 근거와 개념이 어디서 나올 수 있는 것일까요? 창조주도 성경에 보면 나무면 나무, 토끼면 토끼, 그것만의 존재의 의미를 창조해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술의 ‘창작’ 개념이 바로 이곳에 근거한 것이 아니던가요?

그런데 현대시는 ‘살아가는(행위) 존재’를 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만을 형상화한다고 하니 필자 같은 독자는 그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현대시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까닭이 다름 아닌 ‘존재 자체’를 형상화하기 때문이라면 당연한 일이지요. 한순간, 한순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존재 자체’(그런 존재가 무엇인지 필자는 알 수 없습니다만)를 형상화하는 것이 현대시라면 설사 시인이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이야기할 이야기거리(삶. 사건) 자체가 없을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것이 현대시 이론이라면, 그리고 저 수 많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시들이 그 같은 현대시 이론에 근거한 작품들이라면 나는 그런 시인들 축에는 영 낄 수 없는 시 문외한일 수밖에 없구나! 이를 어쩌나, 그래도 나는 소월의 <진달래꽃> 같은 시가 좋은데……, 좋아 죽겠는데……, 그래서 평생 연모하여 왔는데…….

그런 나에게 <산문의 시>는 실로 구원의 방주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뜻밖에 내 손을 잡아 주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보들레르라는 낯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9세기 말 ‘자유시’ 출현 이전에 먼저 ‘산문시’를 쓰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쓰기 시작하였다는 ‘산문시’가 제가 발견한 <산문의 창작적 진화> 결과로 발생한 <산문의 시>와 같은 것인지는 아직 공부 중입니다만, 그러나 ‘산문’이라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일상어에 근거한 문장형식을 의미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할 것이므로 저 같은 현대시 해득 불능자에게는 구원의 나팔소리가 아닐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의 <산문시>가 보들레르의 그 ‘산문시’이냐에 대해서 필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보들레르의 ‘산문시’가 바로 우리나라의 <산문시>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산문시’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산문시>는 운문 시론이 하나같이 표현하고 있는 대로 ‘산문체 (운문)시’에 지나지 않습니다. ‘산문체 (운문)시’란 부정적으로 말하면 ‘산문을 가장한 운문시’라는 뜻이 되지 않을까요? <산문의 시>는 산문을 가장한 운문시가 아닙니다. 점 하나 문장부호까지 갖추어 써야 되는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시문학입니다.   ‘난해시’는 아마 아침 이슬 같은 시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 이야기(산문) 시’는 풀잎 같은 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이 들자 용기가 납니다. 그래서 <산문의 시>를 맘껏 외쳐보기로 합니다.

“어디엔가 나처럼 시를 사랑하고 싶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그렇다고 내놓고 말하지도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이야기(산문) 시’ 독자들이 또 있을지도 모르지 않느냐. 그들을 찾아가서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 ‘산문(이야기)의 시 사귐’을 가지도록 해 보자.”

이상이 60여 년 동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시’에 대해 남몰래 고민만 하다가 기적적으로 <산문의 시>를 만나 <난해시 양심 고백>을 하게 된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