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와 가곡

시조 종장 첫 소절 및 가곡 4장

                                        석야 신웅순

                                            (시조시인․평론가․서예가, 중부대 명예교수.)

시조 종장 첫 소절 ＆ 가곡 4장

                                     석야 신웅순

1.

가곡은 시조시를 노랫말로 해서 불리워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악곡이다. 가곡은 5장으로 부르며 시조는 3장으로 부른다.

시조 초장 1․2 소절은 가곡 1장으로, 2․3 소절은 2장으로 부른다. 시조 중장은 가곡 3장으로 부르며 시조 종장 첫 소절(음보)은 가곡 4장으로, 시조 종장의 2․3․4소절은 가곡 5장으로 부른다.

시조와 가곡의 분장표이다.

가곡(음악) 시조(문학)

대여음(전주곡)

1장 : 동창이 ᄇᆞᆯ갓ᄂᆞ냐 초장

2장 : 노고지리 우지진다

3장 : 쇼칠 아ᄂᆞᆫ 여태 아니 니러ᄂᆞ냐 중장

중여음(간주곡)

4장 : 재녀머 종장

5장 : ᄉᆞ래 긴 밧츨 언제 갈려 ᄒᆞ나니

(청구영언․203)

시조 종장의 첫 소절 3음절이 가곡의 4장으로 불리워진다. 왜 시조 종장의 짧은 첫 소절 3음절을 가곡 5장 중 5분의 1에나 해당되는 긴 한 장에다 할애했는가. 길이로 보면 시조가 초․중․종 12소절이니 종장 첫 소절은 1/12에 해당된다. 시조에서는 짧은 길이인데도 가곡에서는 긴 한 장을 할애했다. 또한 가곡의 3장과 4장 사이에는 비교적 긴 중여음(간주곡)이 있다. 왜 곧바로 이어 부르지 않고 여기에 중여음을 연주하는가.

가곡 4장과 중여음, 여기에 주목하고자 한다. 시조에서의 이곳은 바로 의미 전환의 축이 되기 때문이다.

2.

가곡은 그 원형이 만대엽·중대엽·삭대엽의 세 갈래였다. 만대엽은 영조 이전, 18세기 초반에 없어졌고 중대엽도 19세기 초반에 음악 장르로서의 수명을 다 했다. 이후 삭대엽만 남아 다양한 악곡으로 분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지금의 가곡 한바탕을 이루었다. 이렇게 가곡은 만대엽에서 중대엽으로, 중대엽에서 삭대엽으로, 삭대엽에서 가곡으로 변천, 발전되어 왔다.

만대엽은 아주 느린 곡이고 중대엽은 중간 정도 느린 곡이고 삭대엽은 빠른 곡이다. 삭대엽이 빠른 곡이라도 지금의 시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음악도 빠르게 변천해왔다.

만대엽 → 중대엽 → 삭대엽 → 가곡

청구영언(1728,영조 4년)의 악곡별 편제를 보면 삭대엽곡들이 중심이 되었고 중대엽 계열의 곡들은 이미 옛노래 고조로 인식되었다. 청구영언 시절에 만대엽은 사라지고 중대엽은 퇴조하고 있었으며 이삭대엽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청구영언이 나온 반세기 이후 18세기 중․후반에 새로운 음악 장르인 시조가 생겨났다.(신광수의 관서악부,1774) 지금의 평시조(유예지, 시조악보 채록, 1800년경)이다. 19세기 중․후반 가곡원류(1876년) 편찬 당시에는 중대엽도 사라지고 삭대엽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이 때 이삭 대엽을 원형으로 하여 중거 ․평거․ 두거가 파생되고 얼롱에서는 얼편이 파생, 현행과 같은 가곡 체계의 틀이 형성되었다. 시조도 평시조 하나였던 것이 이런 가곡의 영향을 받아 시조도 평시조를 원형으로 하여 평시조․중허리 시조 ․지름시조․ 사설지름시조 등으로 분화, 파생되었다.

1774 1876

평시조 → 평시조․중허리 시조 ․지름시조․ 사설지름시조 등

가곡의 가사는 시조시이다. 말하자면 시조가 생기기 이전에는 시조가 가곡(삭대엽) 형태로 불리워졌다는 얘기이다. 18세기 중․후반쯤에 시조가 발생했고 한 백년 후 19세기 중․후반에는 가곡의 영향을 받아 지금의 많은 종류의 시조들이 파생되었다.

시조가 생기기 이전에 시조가 어떤 형태로 불리워졌는가를 가곡에서 살펴보고자하는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다.

3.

시조 종장의 첫 소절 3음절에 해당되는 가곡 4장의 기본 장단은 27박, 변형장단은 17박이다. 남창가곡 한바탕 26곡과 여창 가곡 한바탕 15곡을 통틀어 가곡 4장의 박자에는 다른 장과는 달리 변함이 없다. 시조 종장의 첫 소절 3음절이 변함없는 것과 같다. 가곡 4장의 박자와 시조 종장 첫 소절 3음절은 변할 수 없는 불문율이다.

나이가 든 사람이면 누구나가 다 알겠거니와 옛날 밤을 세워가며 잣던 할머니의 물레질, 한 번 뽑고(초장), 두 번 뽑고(중장), 세번째는 어깨너머로 휘끈 실을 뽑아 넘겨 두루룩 꼬투마리에 힘껏 감아주던(종장)것, 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 초․중․종장의 3장으로 된 우리 시조의 내재율이다.

이만 하면 초장․중장이 모두 3,4,3,4인데 왜 하필이면 종장만이 3,5,4,3인가. 그 연유 를 알고도 남을 것이다. 이런 시조적인 3장의 내재율은 비단 물레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백반에 걸쳐 편재해 있는 것이다.

설 다음날부터 대보름까지의 마을을 누비던 乞粒놀이(농악)의 자진마치에도 숨어 있고, 오뉴월 보리타작마당 도리깨질에도 숨어있고, 우리 어머니 우리 누님들의 다듬이 장단에도 숨어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든 습속, 모든 행동거지에도, 희비애락에도 단조로움이 아니라 가다 가는 어김없이 감아 넘기는 승무의 소맷자락 같은 굴곡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정완영 시조창 작법, 16쪽)

시조 종장 첫 소절 3음절과 둘째 소절 5음절은 바로 의미의 변환구이다. 시조 종장의 첫 소절 3음절은 변환축이 되는 셈이다. 이 축을 중심으로 의미와 곡의 대전환이 이루어진다. 시조 중장, 가곡의 3장이 끝나면 바로 중여음으로 이어진다. 중여음 다음에는 시조 종장 첫 소절에 해당되는 가곡의 4장이 시작된다. 여기에서 시조와 마찬가지로 가곡도 곡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변환축 = (중여음) 가곡 4장, 시조종장 첫 소절

전환은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다. 이동을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한데 이에 해당되는 것이 가곡의 3장과 4장 사이의 중여음이다. 그리고 난 다음 시조 종장의 첫 소절, 가곡의 4장의 축에 의해 의미와 곡에 전환이 이루어진다. 우리 민족의 오랜 생활 습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율격이 이런 가곡, 시조 형식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정완영의 현대시조「갈매기」시조 한 수를 보자.

갈매기는 부리하나로 수평선을 물어올린다

갈매기는 나래깃으로 성난 파도 잠도 재우고

빙그르

바다를 돌리면 하늘 끝도 따라 돈다

- 정완영의 「갈매기」전문

초장에서 갈매기가 부리로 수평선을 물어올린다고 실마리를 잡았다. 중장에서는 나래깃으로 성난 파도를 잠재운다고 사례를 제시했다. 종장에 가서는 빙그르 바다를 돌리면 하늘 끝도 따라 돈다고 결론을 맺었다. 초장․중장을 거쳐 종장에 가서야 이야기가 급격히 전환되었다. 이 때 ‘빙그르’가 바로 의미의 전환축이다.

‘빙그르’라는 시조 종장의 첫 소절 3글자로 의미를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켰다. 가곡의 4장도 같은 이치이다.

4.

가곡의 5장 중 시조 종장의 3음절의 가곡 4장은 가곡 전체의 5분의 1에 해당되는 비중을 갖고 있다. 시조는 12소절이다. 시조 종장 첫 소절은 1/12에 해당되는 길이이다. 이 1/12에 해당되는 짧은 길이가 가곡에서는 1/5에 해당되는 5장 중 1장인 4장의 긴 길이에 할애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시조의 1/12(짧은 길이) = 가곡의 1/5(긴 길이)

시조의 종장 첫 소절과 가곡에서의 중여음과 4장은 이렇게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시조는 애초에는 음악, 문학이었다. 그러던 것이 1920년대에 음악, 문학이었던 시조는 음악과 문학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로 갈라져 100여년을 지내왔다. 그동안 시조라는 문학이 시조의 본령에서 얼마나 달라졌는가, 얼마가 벗어났는가를 가곡을 통해 되돌아보는 것도 시조를 창작하는 우리들에게 반성의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왜 가곡은 시조시를 5장으로 부르는가. 왜 시조의 종장 첫 소절 3음절을 가곡의 5장 중 1장에 해당하는 4장에다 할애를 했는가. 중장과 종장 사이에 가곡에서는 왜 중여음을 연주하는가.

가곡이 시조의 본령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시조가 이런 과정을 거쳐 분화 발전되어 왔다는 것은 작금의 시조 창작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조가 시와 다르다는 것을, 시조가 마냥 시가 아님을 보여준 하나의 모범적인 예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시조 종장 첫 소절 ＆ 가곡 4장’의 논의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미래시조의 방향에 조심스러운 되돌이점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현대시조가 시로서만 존재한다면 시비평으로만 존재한다면 자유시를 쓰지 굳이 시조를 쓸 필요가 있을까. 시조는 천여년을 이어온 우리 고유의 음악이자 문학이다. 시조는 음악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장르이다. 작금에 와 음악이 약화되었다고는 하나 시조문학의 뿌리가 음악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다. 시조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뿌리라는 음악의 자양분 때문이다.

필자는 미래의 시조를 ‘형식’과 ‘참신한 이미지’로 두 가지로 요약한 바 있다.(창작세계 하반기,2021.9.30) 문학적 표현이기는 하나 형식은 음악이요 이미지는 문학에 다름 아니다. 형식은 3장 6구 12소절의 율격이요, 이미지는 3장 6구 12 소절의 시이다. 형식은 변함이 없으나 이미지는 끊임 없이 변신해야 한다. 형식 속에 이미지의 혁신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변함이 없으나 변함이 있고, 닫혀있으나 열려져 있는 이것이 바로 시조이다. 미래의 시조에 참신한 이미지가 요구되는 소이이다. *현대시조의 미래 = 형식 + 참신한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