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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4-07 20:29
제1회 《육영수 여사 탄신기념 시조문예축전》학술세미나: 육영수 여사와 문학
 글쓴이 : 慈軒 이정자
조회 : 417  
 

1회《육영수 여사 탄신기념 시조문예축전》학술세미나

 

육영수 여사와 문학

 

                                                이서연

                                           (시조시인·평론가)

 

들어가며

 

 ()한국시조문학진흥회에서 수안보 THE조선호텔 후원으로 우리 전통 시조를 확대하고 더욱 계승하고자 함에 2019년 제1회 《육영수 여사 탄신기념 시조문예축전》을 실시하는 것은 육영수 여사의 숭고한 정신을 문학을 통해 기리고자 하는 데 큰 의미가 있으므로 문학사적으로나 현대사에 새로운 기록이 될 것이라 본다.

 

 육영수 여사는 19251129(1014)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에서 육종관 씨와 이경령 여사의 13년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마음씨 착한 작은 아씨로 알려진 여사는 효성이 지극했고, 가난한 친구들과 도시락을 나눠 먹는 인정 많은 소녀였고, 배화여고를 졸업 후 옥천여중 교사를 지냈으며, 1950년 당시 육군 중령이었던 박정희와 결혼, 1963년 대통령 영부인으로 취임했다. 자선봉사단체 양지회를 결성, 전국 9개소에 여성회관 건립, 미망인회자활공장 설치, 적십자 활동을 펼치며, 육영사업의 일환으로 어린이대공원, 어린이 회관을 건립을 지원하고 소년소녀 잡지 <어깨동무>를 발간하였다. 불우 청소년들의 직업훈련원을 설치하고 서울대학에 기숙사 정영사를 설치하였다. 양로 구호사업을 전개하고 노인 위로연을 개최하였으며, 나환자촌 자활사업지원을 전개하였다. 19748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서울국립극장 단상에서 조총련계 문세광에게 저격되어 운명(당시 만49)을 달리하였다. 장례는 국민장으로 집행되고,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박정희와의 사이에 박근혜, 박근영, 박지만 12녀를 두었다.

 1997625일자 <중앙일보>는 리서치 앤 리서치가 한국여성정치연구소의 의뢰로 전국 1천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전화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역대 대통령 부인 중 좋아하는 사람에 육영수 여사를 압도적으로 선택했다(76.2%). 육영수 여사는 소박한 한복을 입어도 고아하였으며, 이지적이면서도 우아한 인품을 갖춘 한국 여성의 상징이었으면서 ‘청와대의 야당’으로 자처하면서 남편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정치측근들도 할 수 없는 고언(苦言)을 자주 한 분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육영수 여사와 문학’, 혹은 ‘육영수 여사와 시조’의 방향에서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뚜렷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물론 육영수 여사는 정치적 활동이 아닌 순수 사회활동으로서 교육계와 과학 예술분야의 사람들과 교류를 했고, 문학인들과도 교류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보이지 않게 가난한 문인들을 도왔다는 기록은 있으나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가난한 문인들을 도왔는지에 대해서는 필자가 과문(寡聞)한 탓에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다. 한편 수필 등 산문은 남긴 것이 있으나 운문으로 남긴 작품은 알려진 것이 없다. 따라서 육영수 여사와 시조를 접목시켜 문학을 살피기는 어려운 바가 있어서 이번 연구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문학을 중심으로 육영수를 사랑한 분들이 육영수 여사를 향해 남긴 작품 내용을 언급하면서 육영수 여사와 문학의 접목성을 알아보고, 시조계에서 육영수 여사를 추모해 나가는데 참조될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육영수 여사와 문인

 

 19615.16 거사 후 810일 박정희 소장이 중장으로 진급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었을 때부터 육영수 여사는 의장부인으로서 여러 업무를 보게 되었는데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접하면서 더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전문 지식을 두루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에 틈나는대로 국사, 세계사, 사회학, 철학, 경제학, 경영학, 국제정치학, 문학, 고고학 등 다양하게 범위를 넓히며 공부하였다.

 이런 학구적인 여사의 모습은 영부인이 된 후에도 이어졌고, 각계각층의 사람들과의 교류를 심도있게 이어갈 수 있었으며 문학인들과의 교류도 많았다. 『자비의 향기 육영수(남지심 )381쪽을 보면 모 여류시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하와이 이민 70주년 행사에 참석해 아버지 박 대통령의 축사를 대독하고 하와이 상원의원 개원식에 초대되어 연설을 하고 온 박근혜를 보면서 “장성한 근혜를 보고 있으면 내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서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묻고 우는 걸 보니 내가 아직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서 흐뭇해지더군요.”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陸英修女史』 진혜숙 편저 49쪽에 보면 청와대접견실에서 영부인을 만나 뵌 어느 여류작가는 육여사의 손이 너무나 고와 자기의 손을 감추었다고 한다. 또한 대통령비서실에서 육영수 여사를 추모하며 제작한 『영원한 그 모습』70쪽에 보면 어느 시인은 여사의 미소를 “흰 샘물의 미소”라면서 추모하였다고 한다.

 

 어느 여류시인을 만났는지에 대해서는 일화마다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 그 일화에 나오는 여류시인이 한 명인지, 일화마다 만난 여류시인이 다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나타난한 자료는 없지만 수시로 문인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육 여사와 문학인들과의 인연에 대해서는 기록에 남아 있는 것만 살펴보기로 하겠다.

 

박목월

박목월 시인과 육영수 여사와의 인연은 육영수 여사가 영부인이 된 뒤부터 알고 지냈으며( 『비운의 퍼스트레이디 육영수의 사랑과 눈물(문무일 98)), 육여사가 특별히 문학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박목월 시인은 육 여사를 “총명하고 자상하며 성실한 분”이라고 표현하였다.

<주간한국> 691222일자에 보면 “지난 11일 육영수 여사(대통령 영부인)는 한국시인협회 소속 시인 약 20명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같이 했다. 육 여사는 지난 1년 동안 한국시인협회(회장 朴木月)씨를 통해 시단에 나온 지는 오래 됐으나 아직 처녀시집을 갖지 못한 시인들의 시집을 꾸며 주었다. 11월까지 16편의 시집이 <오늘의 韓國詩人集>이란 이름으로 이미 꾸며져 나왔고, 오는 1월말까지는 도합 21권의 시집이 완성될 예정, 그런데 이날 이 자리는 같은 날 하오 6시부터 시내 호스그릴에서 가질 16권의 합동출판기념회에 앞서 그 저자들과 시협(詩協)간부 몇 사람을 육 여사가 먼저 초청한 것이다.”라고 한다.

 육 여사는 1968년 정월 중순경부터 문장론, 한국현대문학사, 문학일반론 등을 박목월 시인을 통해 폭넓게 공부하다가 휴식 시간에 문인들이 어려운 생활문제로 10 수년씩 시를 써도 시집을 가질 수 없다는 사정을 듣고 시인들의 처녀시집 출판에 관심을 갖고 돕게 되었다.

 <주간여성> 1968716일 기사를 보면 육 여사가 시인들의 처녀시집 출판을 돕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에 가입한 시인은 4백 명을 넘는데, 그중에서 개인시집을 낸 사람은 반수가 못 된다. 박목월 씨를 통해 이런 정상을 전해 듣고 여린 마음에 안타까움을 느낀 육 여사가 그들을 도울 길을 구체적으로 상의해온 것. 이런 마음의 움직임은 육여사가 박시인과 문학을 이야기한 뒤 깨닫게 된 그 ‘오묘한 감동’에 근거를 둔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런 감동의 마음 바탕과, 본디부터 문학소녀적인 순수한 기질이 불우한 시인들에게 한 권의 자기 시집을 만져 보게 하고 싶다는 한가지 뜻으로 드디어는 시집을 내는 일을 돕기에 이르렀다.

 

 이런 동기에 의해 박목월 시인은 신석초, 박남수, 김요섭 시인과 의논하고, 편집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다음날부터 다달이 거의 두 권의 ‘처녀시집’을 출간하게 되었고, 《오늘의 한국시인집》전 24권의 제작은 현대시학에서 맡아 출판했다.

10년 이상 시단에서 창작활동을 한 시인 중에서 시집이 없는 시인들의 순수한 ‘처녀시집’을 출판하는데 제1차적인 것이 끝나자, 다음해(70) 3월부터는 ‘오랜 동안 시집을 못낸 분’들의 시집 출판을 돕게 되었다. 시리즈 명칭도 《현대시인선집》으로 바뀌고, 사업도 한국시인협회에서 직영하게 되었다. 그렇게 682월에서 7012월까지 30개월 동안 전후를 합쳐 60권이 시집이 육여사의 도움으로 출판되었다.(陸英修女史274)

이 일로 인하여 신문에서는 현직 대통령 부인이 시인들의 시집을 내주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볼 수 없었던 일이다라고 기사화 했는데 현재까지도 이 기록 외에 영부인이 시인들의 시집을 내주었다는 기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방송극작가 이서구

『가까이에서 본 인간 박정희 인간 육영수(김두영 )』에 보면 육영수 여사는 방송극작가인 이서구(李瑞求, 1899~1982) 씨나 박목월(朴木月, 1916~1978) 시인과 같은 분들과의 대화를 무척 좋아해 그분들을 가끔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196)는 기록이 있다. 1973년 늦은 봄, 어느 날 오후 이서구 작가가 육영수 여사의 초대로 청와대를 들어올 때 영업용 택시로 방문한 바 있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육영수 여사가 이서구 작가를 여러 번 초대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경희

수필가 조경희 씨는 영부인 육 여사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여사의 아름다움은 여사 자신이 창조한 아름다움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陸英修女史』 진혜숙 편저 48)

 

한하운

19711217일 한하운 시인과 양지회 총무 권옥순 씨 등을 대동하고 전남 나주군의 호혜원과 현애원 등을 방문(陸英修女史』 진혜숙 편저 249)는 기록이 있다. 그때 육영수 여사는 한하운 시인을 불러 정착촌의 환자들에게 “부디 술 담배를 끊고 열심히 일하도록 당부해 주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육영수 여사는 한하운 시인이 나병으로 손가락이 끊어져 부자유함을 눈치채고 손수 귤을 까서 건네 주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김남조 시인

육영수 여사는 국내외 많은 분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민생을 살핀 국모로 잘 알려져 있다. 산골 초등생부터 소외된 지역의 노인들은 물론 나병환자들과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편지들을 직접 챙기며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편지에 담긴 사연을 해결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분이라 존경하는 마음으로 기억하는 국민들이 많다.

1967419일 김남조 시인과 방송 대담을 가진 기록(『육영수의 사랑 그리고 또 사랑』123)에 보면 김남조 시인은 동아방송으로부터 육 여사에게 편지를 써보라는 제의를 받았다. 이에 김남조 시인은 신앙과 관련된 편지를 보냈으며, 이 편지를 받은 육 여사는 1967327일 답장을 보낸 바 있다.

이 편지에 보면 “시를 통하여 여러 사람의 가슴에 깊은 감명을 불러일으켜 오시던 김 여사님을 처음 뵙기는 수년 전, 설악산에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가을, 강원도 어느 자그마한 마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김 여사께서 인솔하고 가시던 학생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은 저의 앨범 한 곳에 소중히 간직되고 있습니다.”는 구절을 통해서 김남조 시인과 처음 만난 시기와 이렇게 편지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하였으며, 청와대에 초청하여 담소를 나누었음을(담소 나누는 사진: 『육영수의 사랑 그리고 또 사랑』124) 알 수 있다.

 

손소희

여류문학인회 손소희 회장과 육영수 여사는 해마다 실시하는 주부백일장과 인연이 있었다. 『육영수의 사랑 그리고 또 사랑』151쪽에 보면 육영수 여사는 ‘많은 주부들이 소양을 쌓아야 할 것’이라는 말로 여류문학을 장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꼭 장원을 하기보다는, 참여할 수 있도록 권장했으며, 주부백일장 입상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주부의 교양과 알뜰한 살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글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린이와 여성들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여기고 있었기에 문학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어 가길 바라는 바로 보인다.

 

문인들 청와대 초청 간담회

19691221, 참석한 시인들 명단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시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는 기록이 있다. 육영수 여사는 박정희 대통령도 동석한 이 자리에서 “시인들이란 모두 아름답고 곱게만 생긴 줄 알았는데 솔직하게 말해서 남자답게 생기셨어요.”라고 했다.

 

그날 오고 간 대화를 보면 대통령도 시를 쓰냐는 질문에 육 여사는 “사람들은 대개 무뚝뚝한 분으로만 생각하는데 과거에는 시로 더러 쓰셨다”고 했고, 시인들이 시를 보여 달라고 하니 “꽁꽁 묶어서 깊이 숨겨 두었어요. 먼 훗날 우리 가족끼리 읽고 즐길것에 불과해요.”라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에서 영부인으로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겠지만 시인들을 초청한 자리에 박정희 대통령이 동석했을 때 농담도 할만큼 육영수 여사는 평소 문인들과 매우 가깝게 지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전읽기와 독서, 백일장 장려

육영수 여사는 교육적인 면에서 어린이들에게 고전 읽기를 권장하였기에 자유교육협회의 고전 읽기 운동에도 참여했다. 1970년부터 4년 동안 자유교양대회 입상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다과회를 베풀었고, 고전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낙도나 새마을 지도자들에게 고전을 기증하기도 했다.

또한 어린이를 위해 196711일 월간 어린이 종합잡지 <어깨동무>를 창간했는데 19754월호까지 모두 5백만 권을 발행해 50여 만권이 농어촌, 도서 벽지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전해졌고, <어깨동무>19875월에 종간되었다.

 육영수 여사가 전국에 어린이들을 위해 책을 보내면서 “이 책들이 어린이들의 정서와 슬기를 함양하는데 알뜰히 이바지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육영수의 사랑 그리고 또 사랑』 196)

어린이뿐 아니라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아 ‘양지회’를 통해 농어촌 여성들을 계몽시킬 수 있도록 <희망의 등불>을 발간했다. 이 잡지에서 가난하고 환경이 좋지 않아도 자립한 이야기를 담아 많은 여성들이 글을 쓰도록 했다는 것은 일상에 문학을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여 스스로 부녀자들을 일깨우는데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시문

 

 육영수 여사가 문학인들과 교류를 하고 청소년들과 여성들에게 독서와 글을 쓰도록 장려하는 일을 펼치는데에는 사랑으로 맺어진 박정희 대통령의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이 부분을 박정희 대통령의 시문을 통해 문학적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대한민국의 제5~9대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는 생전에 네 권의 저서를 남겼다. 『우리 민족의 나갈 길』 『국가와 혁명과 나』 『민족의 저력』 『민족 중흥의 길』의 저서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와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네 권의 저서 초본들은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 사업 추진위원회>에서 영인본으로 만들고(20171114), 박정희 대통령의 시와 일기를 모아 별도의 책으로 묶었으니 그것이 『남편 두고 혼자 먼저 가는 버릇 어디서 배웠노』라는 책이다. 사람들은 <새마을 노래>를 직접 작곡한 것과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는 것, 구상 시인과 각별한 사이였다는 것은 알려졌으나, 시와 일기를 썼다는 사실은 의외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여기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시 25편과 시조 1편 일기 55편이 실린 『남편 두고 혼자 먼저 가는 버릇 어디서 배웠노』에 수록된 작품들 중에서 시조와 육영수 여사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글들을 살펴보고, 박정희 대통령의 문학적 소양이 육영수 여사의 정신과 활동에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를 소고해 보고자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시조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일기장에 서른 편 분량의 시()가 발견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시를 쓸 생각으로 쓴 것이 아니러 일기를 쓰면서 시의 형태의 글을 만든 것이 아닌가 보여지는 것이 많다. 그 중에서 시조는 “거북선” 한 편만 알려져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주목한 인물은 일찍이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성웅 이순신 장군이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이 이 충무공의 유적을 일제히 성역화 하였을 뿐 아니라 한국은행이 1962년에 발행한 10원짜리 지폐와 1966년에 나온 500원짜리 지폐의 뒷면에 거북선이 인쇄되어 있고, 1970년에는 100원 짜리 동전에 이순신 장군의 초상이 채택되었으며, 1973500원 지폐에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뒷면에는 현충사가 인쇄되었다. 그만큼 이순신의 장군의 나라 사랑 정신과 고고한 충정으로 이 나라를 혼란에서 바로 세우는 정신적 모토로 삼았음은 이미 알려져 있다.

 

남들은 무심할 제 님은 나라 걱정했고

남들은 못 미친 생각 님은 능히 생각했소

거북선 만드신 뜻을 이어 받드옵니다

 

 

1971년도에 발간된 한국시조작가협회 연간집에 친필로 수록된 “거북선” 시조다. 그러나 이 작품에 앞서 1970년 충무공 이순신의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 홀로 앉아/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차에/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애를 끓나니”를 읽고 썼다는 화답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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