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하운 시에 나타난 전통 율격론
                         이 정 자(문학박사, 시인)

순 서

1. 들어가며
2. 한하운의 생애 개관
3. 한하운 시에 나타난 전통 율격
  1) 율격, 리듬, 음보와의 상관관계
  2) 한하운 시에 나타난 율격 구조
4. 한하운 시에 나타난 시조 율격
5. 나오며   

1. 들어가며
 
 『한하운 전집』은 2010년 한하운 시인 탄생 90주년, 서거 35주년을 맞아 (재)인천문화재단에서 발간하였다. 제1부 시, 제2부 산문으로 엮었다. 제1부 시는 1. 『정본 한하운 시집』과 2. <잡지 수록 작품 및 친필 유고>로 편집되었고, 제2부 산문은 1. 『고고한 생명 -나의 슬픈 반생기』, 2. 『황토길』, 3. <잡지 수록 작품 및 친필 유고>, 4. 소설 로 구성되었고, 김신정의 「시인의 아픔, 시대의 고통」이 실렸으며 시인 연보, 작품 연보, 관련 연구서 서지 사항 등으로 꾸며졌다.    특히 산문  『고고한 생명 - 나의 슬픈 반생기』를 읽으면 한하운의 천형인 병마와의 사투를 고스란히 접할 수 있다.  그 와중에도 사랑이 있고, 인생이 있고, 사회가 있고, 정치가 있고,  가정이 있고, 부모 자식 간의 사랑과 갈등이 있고, 문학인의 삶이 있다. 그래서 ‘자서전’이면서도 ‘자전적 소설’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나병을 보면 천형이라고 한다. 나병 시인으로서 한하운 자신이 처한 이런 병고를 구슬프게 읊은 작품 하나하나들은 자신의 불행한 처지와 자유에 대한 갈구를 시로써 승화시켜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고픈 절실한 마음을 노래했다. 그 애조 띤 가락은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리며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한하운의 시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이며 인간에 대한 투쟁이다. 헤어날 수 없는 육신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사랑을 붙들고 시를 붙들고 진선미와 외경의 시 정신을 아름답게 표현한 바로 이 점이 그의 생애를 아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2. 한하운의 생애 개관

  한하운(1919∼1975)은 일제 강점기 서울에선 파고다 공원에서 3·1독립만세가 전국을 울리던 바로 그 날로부터 10일, 1919년 3월10일  함경남도 함주군 동천면 쌍봉리에서 부친 한종규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그의 가계는 3대가 과거에 급제한 선비 집안으로 그 지방 대 지주였다. 7세에 함흥 제일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우등생으로 졸업 하고 13세에 이리농림학교 수의축산과에서 공부를 하였다. 재학 중 17세 때 나병확정 진단을 받고 농림학교 졸업 후 일본 동경의 성혜고등학교에 입학 2년을 수료하고 나병이 악화되어 귀국하여 요양하다 중국북경대학교 농학원 축목학계에 입학하여 24세에 졸업하고 귀국하여 함경남도 도청 축산과에서 근무한다.
근무중 나병이 다시 도져서 직장을 사직하고 귀가하여 순정의 여인 R의 도움을 받아가며 나병치료를 받는다. 이때부터 본명인 태영(泰永)을 버리고 하운(何雲)으로 쓰기 시작하여 문학공부에 전념한다. 이렇게 나병을 갖고도 학교도 가고 직장에도 다닐 수 있었던 것은 한하운의 나병은 음성이라 치료를 받으면 씻은 듯이 나아서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은 것으로 본다. 1936년 17세에 나병 확정 진단을 받고도 약 7년 간 발병과 치료를 거듭하며 학교도 직장도 다닌 것을 보면 나병은 전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금은 전염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전염으로 인식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위에선 한하운의 병명을 몰랐고 숨겼다. 본인 외엔 부모님과 R만 알았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소련의 영향권 하에 있던 북한은 개인 재산을 몰수하여  한하운의 집안도 몰락하여 아우와 함께 서점을 운영하는 신세가 되었다. 46년 3월 13일 함흥학생데모사건에 혐의를 받고 수감되어 형무소 생활을 하던 중 나병이 다시 악화되어 풀려났지만 아우와 R는 결국 영어의 몸으로 사라졌다. 
1948년에 월남하여 나환자 촌을 전전하며 1949년(30세) 신천지 4월호에 나시인 한하운 시 전라도길 외 12편을 발표한다. 5월엔 [한하운 시초]를 정읍사에서 간행한다. 그리고 1949년 경기도 수원시 세류동 정착촌인 하천부락에 입주한다. 1950년 3월에 성계촌으로 이주하여 자치회장에 선임된다.  52년도엔 부평에 신명보육원을 창설하여 원장이 된다. 1953년엔 용인에 동진원을 창설하고 10월15일엔 서울신문에 <보리피리>를 발표한다. 1954년엔 6월 대한한센총연맹을 결성하여 위원장이 된다. 55년엔 제2시집 [보리피리]를 인간사에서 발간한다. 58년엔 3월 청운보육원을 설립하여 원장이 되고, 10월엔 자서전 [고고한 생명- 나의 슬픈 반생기]를 간행한다.
그의 나이 40세가 되던 59년도엔 나병이 음성으로 판명되어 사회로 복귀한다. 60년도엔7월 서울 명동에 무하문화사를 설립한다. 그리고 8월 자작시 해설집 [황토길]을 신흥출판사에서 간행한다. 64년엔 7월 월간 [새 빛]을 창간한다. 그리고 12월엔 [정본 한하운 시집]을 무하문화사에서 간행한다.
71년 11월엔 한국카톨릭사회복지협의회를 결성하여 회장에 취임한다.  그리고  73년엔 소록도에 시비를 건립한다. 75년 56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간경화증으로 타계한다. 한 많은 그의 유해는 경기도 김포 계양산 장릉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이상의 일대기 개괄에서 보여지듯이 한하운은 활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았다. 나환자의 대변자로, 나환자의 대리자로 그들의 삶을 보다 향상시키기 위해서 온 몸을 바쳐 노력했다. 
 
2010년 서거 35주기를 맞아 [한하운 전집]이 문학과 지성사에서 간행되었다.  필자는 그 전집을 참고하여 한하운의 일대기를 밋밋하게 개괄해 보았지만 독자들은 한하운의 자서전 [고고한 생명- 나의 슬픈 반생기]를 필독하기를 권한다. 한하운을 그나마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가 직접 쓴 그의 반생기를 읽어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월남하여 나환의 몸을 이끌면서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며 살아간 것이나 사회로 복귀하여 그렇게 단체를 결성하고 단체장으로서의 일을 왕성하게 하며 열심히 살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왔을까 생각해 본다. 그 답을 그의 반생기 자서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그의 자서전  [고고한 생명- 나의 슬픈 반생기]를 필독할 것을 권한다.    
한하운에 대한 연구는 학위논문만 해도 10여 편 김현태, 『한하운 시 연구』 부경대 서사학위 논문 2008 외 10여 편
이 되고, 학술논문이 15여 편 정진석, 「시인 한하운과 서울신문 기자오소백의 필화」 『신동아』 598호 동아일보사, 2009.
, 단행본도 6편 김창식 편저, 『가도가도 황토길: 비운의 시인 한하운의 시와 생애』 지문사, 1982.
 여로 나타난다. 앞으로 그 연구는 이어질 것이다.  본 논자는 아직 타 논자들이 문서화하여 밝히지 않은 한하운 시에 나타난 전통 율격에 대해 밝혀보고자 한다. 여기서 나아가 시조 율격도 찾아보고자 한다. 텍스트는 『한하운 전집』으로 정한다.

3. 한하운 시에 나타난 율격 구조

  한하운 시에 나타난 율격 구조를 살피기에 앞서 먼저 율격에 대해서 잠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리듬과는 어떤 관계에 있으며 또 음보와의 상관관계도 서술해 보고자 한다.

 1) 율격, 리듬, 음보와의 상관관계

  어느 해 겨울바다에 간적이 있다. 여름바다와는 확연히 다른 겨울바다를 바라보며 한동안 묵묵히 서있었다. 철썩이는 파도를 응시하며-. 주기적으로 철썩이는 파도를 바라보다 내 숨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가만히 나의 숨소리의 주기와 파도의 주기를 비교해 보았다. 파도는 나의 숨과 똑 같이 철썩이고 있었다. 곧 그 주기가 동일함을 알았다. 곧 파도는 바다의 숨소리이고, 바다의 날숨이었다. 어찌 바다뿐이랴. 우리가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여 그렇지 우주 삼라만상이, 풀 한 포기도 주기적으로 숨을 쉬며 리듬을 타고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구사하는 언어 또한 일정한 규칙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우리말은 대개가 2·3음절로 구성되었다. 2음절이 반복하여 4음절이 되고, 2·3음절이 합하여 5음절이 되고 ...
이 언어 또한 반복하여 읽으면 리듬을 탄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책을 소리 내어 노래하듯 읽었다. 천자문이 그렇고, 가사가 그렇고, 시조가 그렇다. 이것이 바로 율동이 되고 율격으로 이어진다.
  김대행은 율동에 어떤 규칙성이 가해져서 유형화하면 그것이 바로 율격(metre)이 된다 김대행, 한국시가구조연구,삼영사 .p.22.
고 했다. 이를 달리 종합하여 표현하면 율격은 언어현상이 일정한 음절에 따라 일정한 규칙을 갖고 이룬 리듬 형성의 틀로서 운문을 이루고 있는 소리의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양식을 말한다. 그것은 또 산문과 율문을 가려주는 변별적 자질인 동시에 언어 체계 안에서 규칙적이고 체계적이어서 불변성을 가진다. 하지만 리듬은 형상화되는 언어 현상에 따라 가변성을 갖는다. 따라서 같은 율격을 적용한 작품이라도 율격은 같으나 리듬은 다를 수 있다.
  우리말은 대개가 2.3 음절로 구성된다. 이것은 한국어의 언어학적 특성이다. 이를 활용하고 곡용하면 3.4.5 음절이 된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은 시가 뿐만 아니라 산문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국문학 시가 운율의 기본적인 형태를 3.4.조니 4.4.조니 하는 주장은 피상적인 관찰의 결과라며 정병욱은 이점을 음보율로 극복하려 했다. 정병욱,｢古詩歌 韻律論 序說｣,󰡔최현배교수 회갑기념논문집󰡕, 1954.  
  그래서 그 이론의 타당성을 학계에서 인정받아 현재는 음보율 중심의 율격론이 지배적인 입장이다. 하여 한국 시가를 구성하는 율격의 기본 단위는 음보이며 이 음보가 3~4개 씩 모여서 하나의 시행을 구성한다. 우리 시가의 전통적인 율격은 보통 2·3·4·5음보격의 4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중에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3·4음보격이다.

 아리랑/ 아리랑/아라리요(3/3/4)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3/3/3)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2/3/5)
 십리(十里)도/ 못 가서 /발병난다.(3/3/4)

  위의 시행들은 /로 구분된 마디의 연쇄로 읽힌다. 여기서 /표로 구획된 소리마디가 곧 음보(音步)로서 한국 시가 율격의 기본 구성단위가 된다. 곧 음보란 통사적 분절과 율격상의 분절에 의하여 경계표지를 가지는 '호흡상의 실체적 단위' 라 하겠다.
   일찍이 정병욱이 밝혔듯이 전통적으로 한국 시가의 율격 형태로는 2음보격, 3음보격, 4음보격이 일반적이다.  2음보격은 두 개의 음보로써 한 행을 이룬다. 2음보격이 둘씩 이어지면 4음보격이 된다.
 4음보격은 네 개의 음보로써 하나의 시행을 이루는 율격으로, 균형 잡힌 안정적인 틀을 갖추고 있다.  때문에 여유를 갖고 유장하게 읊조리기에 적합하다. 그래서 4음보격은 시조와 가사, 상당수의 민요에도 쓰였으며, 판소리 등에서도 기본적인 율격으로 활용되었다.
   3음보격은 대체로 선율적 표현성이 강한 서정 민요류에 많으며, 특히 「악장가사(樂章歌詞)」, 「악학궤범(樂學軌範)」,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등의 문헌에 실린 고려 속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고려 시대 시가의 지배적인 율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신라 시대 향가의 경우에는 3음보격과 4음보격이 공존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김대행도 밝히고 있다. 김대행, 한국시가 구조 연구, 삼영사 p.p.31-42 참조,
  
 
  이상에서 밝혀 보았듯이 우리 시가의 전통적인 율격은 보통 2·3·4·5음보격의 4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중에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3·4음보격이다. 이를 한하운 시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다음에서 밝혀보고자 한다.

2) 한하운 시에 나타난 율격 구조

앞에서도 밝혔듯이 텍스트는 『한하운 전집』으로 정한다.

*①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4/2/3)
고향 그리워
피-ㄹ 늴리리(2/3/4)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4/2/3)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늴리리(3/3/4)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4/2/5)
인간사 그리워
피-ㄹ 늴리리(3/3/4)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4/2/6)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늴리리(3/5/4)

- 보리피리 전문-

 3음보율로 이루어지는 민요조의 가락이다. 그래서 이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노래가 된다.
  <보리피리>는 1953년에 발표한 시이다. 이 시는 그 당시 ‘하운은 허구의 인물이며 공산당의 선동 시인’이라는 비난과 술책으로 한하운이 고역을 치르기도 한 상황에서 S신문사 편집국에서 바로 쓴 것이 신문에 실렸다. 이렇게 사연이 있는 시에 대하여 폄하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하운 전집, p.630 참조바람  “나도 남만치 시에 대한 것은 알고 있다. 이 따위 「보리피리」같은 것이 시야...... 같지도 않은 것을 실어가지고 말썽이야 글쎄 그게 장타령이지 시인 줄 아나?” 이는 당시 문총 최고 간부며 S신문사 사장이며 소설가며 시인인 P사장이 한 말이다 
 
  이 시에 대한 시인의 자술을 옮겨 본다. “ 이 시가 발표되니까 ‘민족의 이름으로 미움을 주자’는 제목으로 평화신문에 4일이나 연재한 이 모씨가 또 다시 이 시에 대하여 비방하기 시작하였다.  ...... 중 략 ...... 신문의 폭력은 무고한 사람을 짓밟고 만다. 이 사건에 분발하여 약 2개월 동안 쓴 시가 바로 시집 『보리피리』라 하겠다. 검열로 이리 찟기고 저리 찟긴 나머지 생존한 것이 17편이다. 이것을 묶어서 하나의 시집으로 한 것이다.” 상게서 p.634-635 참조
 
 <보리피리>는 인환의 거리를 활보하고픈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다. 유복한 가정, 장남으로 태어나 행복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과 향수,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간절함, 인환의 거리에서 자유를 누리고픈 욕망과, 방랑생활에서 겪는 괴로움과 좌절감을 눈물로 노래한 시이다.
  이 시는 민요조의 작품으로 가락이 그대로 살아있어 애송시로써 암송되기도 하였다. 또 작곡가 조념(趙念)의 작곡으로 발표되어 많은 사람들의 애창곡이 되기도 하였다. 이를 계기로 한하운은 또한 <보리피리>를 통하여 자기 정화를 꾀하고 자기 존재의 한계를 초월하여 파랑새가 되어 마음은 훨훨 하늘을 향했을 것이다.

시인은 『황토길』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기도 한다.

나는
시를 영혼으로 쓴다.
또 시를 눈물로 쓴다.

시는 나에게는 도(道)이다. 눈물의 원심분리에서 남은 영혼의 에센스이다. 그러니 시에 귀의하며 살지 않을 수 없다. 상게서, p.500 참조
 곧 시는 시인에게는 자기 정화이고 자기 신앙이고 자기 생활이었다. 

②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4/3/5)

푸른 하늘
푸른들
날아다니며(4/3/5)

푸른 하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4/4/5)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4/3/5)

- 파랑새 전문

  4/3/5조 3음보로 이루어진 민요조이다. 혹은 이를 7/5조의 율격으로도 볼 수 있다. 민요조는 노래하듯 쉽게 읽히고 암송하기도 좋다 그래서 본 시 <파랑새>는 시인 한하운을 아는 독자라면 거의 모두 즐겨 암송하곤 했다.
   본 시에 대한 시인의 시작(詩作) 과정을 옮겨 본다.
  “이 세상은 ‘문둥이’라고 나환자에게서 인간의 생활 조건을 모조리 박탈하고 생존권마저 위협을 받고 인간의 존엄성마저 무시당하고 있다.
  산 사형선고를 받고 인세에서 내 쫓기고 있으니 도대체 나환자는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살 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창피하고 치사스럽다. ...... 중 략 ...... 살아서 못 한 것을 죽어서 ...... 소망을 찾아서 정말로 산 보람을 느끼면서  ‘푸름’이 주는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는 모든 평화와 자유를 차지하고 싶다는 나의 이상과 동경을 노래한 것이 이 시라 하겠다. 그리고 서정시이며 운율시이며 슬픈 엘레지(Elegy)라 하겠다.” 이 이상 더 무엇을 덧붙이랴. 시인은 살아서 누리지 못하는 모든 소망과 바람을 죽어서, 그것도 파랑새가 되어 맘껏 누리고자 했다.  

③
 마음이 가도록 그 노래를(3/3/4조)
 눈물 삼키며 부릅니다.(2/3/4조)

 G선의 엘레지가 비탄하는(3/4/4조)
 덧없는 노래를 다시 엮으며(3/3/5조)

 이별이 괴로운 대로(3/3/2조),
 리라꽃 던지고 노래 부릅니다.(3/3/6조)

  - 리라꽃 던지고 후 3연 -

3음보의 3/4/5/조, 3/3/6조로 이루어진 민요조이다. 민요조는 율격을 타고 노래하듯 읽혀진다. ‘마음이/ 가도록/ 그 노래를 //눔물 /삼키며/ 부릅니다./// G선의/ 엘레지가/ 비탄하는 // 덧없는/노래를/다시 엮으며/// 이별이/괴로운/대로//리라꽃/던지고/노래 부릅니다. 더 해설이 필요 없는 아름다운 시편이다. 

*④
어머니
나를 낳으실 때 (3/2/4)
배가 아파서 울으셨다 (2/3/4)

어머니
나를 낳으신 뒤(3/2/4)
아들 뒀다고 기뻐하셨다.(2/3/5)

어머니
병들어 죽으실 때(3/3/4)
날 두고 가는 길을 슬퍼하셨다.(3/4/5)

어머니
흙으로 돌아가신(3/3/4)
말이 없는 어머니(2/2/3)

- 어머니 마지막 연 -

3음보 2/3/4/5조의 율격을 가지며 특히 마지막 연은 3/7/4/3조로 시조의 종장과 같다.

어머니를 향한 애절한 호소이다. 이 시의 시작 배경을 옮겨 본다.
 
...... 상 략 ......

나의 집은 함흥에서도 명문이다. 더욱이 나는 이 집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내가 탄생하는 날, 온 가문은 그야말로 태자 탄생에 못지 않은 기쁨에 넘쳤다고 한다. 이 집은 이런 후계자를 소중히 길렀다. 그러나 후계자가 나병에 걸렸다.
어머니가 내 병을 고쳐보려고 인력을 다 하셨다. ...... 중 략 ......  애태우며 애태운 나머지 점점 정신이나 육체나 쇠약할 대로 쇠약해 나중에는 이로써 황천길로 떠나셨다.  어머니의 주검을 눈앞에 모셔 놓고 그 열결식도 발인도 호곡도 못하고 맏상제인 내가 내 집을 떠나야만 시체가 북망산 길로 가게 되니 이 어찌 원통한 일이 아니겠는가 ......
이래서 옛날부터 사람들이 문둥병을 천벌을 받은 병이라 증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인간됨을 버리고 내 집에서 떠났다. ...... 하 략 ......  그리고 그는 본명인 태(泰)영(永)을 버리고 그의 갈 길을 말해 주듯 하(何)운(雲)이라 이름 했다.  

⑤
 지구의 한 토막이 무너져
 둥둥 떠간다.(3/4/3/5)

 웅대.
 말문이 막힌다.(2/3/3)

 지축이 쪼개어
 기만년 흘러가는 양자강(3/3/7/3)

 슬픔처럼
 외로움 처럼.(4/5)

 큰 땅이 떠간다.(3/3)

 - 양자강 -

  2·3·4음보로 이어진 민요조이다. 본시는 시인이 중국 유학 시절의 작품으로 그 웅대하고 망망한 양자강의 모습에 압도되어 ‘지구의 한 토막이 무너져/ 둥둥 떠간다 ....../// 큰 땅이 떠간다.’라 하여 거대한 자연 앞에서 그 웅대함에 경외감마저 느낀다.  본시에 대한 시인의 말을 빌리면 끝 행은 원래 ‘중국이 둥둥 떠간다’로 되어 있었는데 당국의 주의를 받고 ‘큰 땅이 떠간다’로 고쳤다고 한다. ‘중국이 둥둥 떠간다’로 표현한 것은 실지로 양자강 하류에 직면하면 펼쳐지는 그 웅대함에 오히려 무서운 생각이 압도되어 솔직한 표현을 했을 뿐  한하운 전집,  2. 황토길 p.p.671-672 참조
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⑥
 주막도 비를 맞네
 가는 나그네(3/4/5조)

 빗길을 갈까
 쉬어서 갈까(5/5조)

 무슨 길 바삐 바삐
 가는 나그네(3/4/5조)

 쉬어갈 줄 모르랴
 한 잔 술을 모르랴(3/4/4/3조)

- 비 오는 길 -

 이 시는 3·4음보의 율격과 2구의 구수율로 이루어진 민요풍이다.  이를 가만히 낭독해 보면 박목월의 <나그네>를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두 시의 시의나 시상에는 차이가 있다. <나그네>는 1946년 작이다. <나그네>가 체념과 달관으로 유유히 가는 나그네의  모습을 그렸다면 <비 오는 길>은 빗속을 바삐 가는 나그네의 고달픈 삶이 배어있음을 본다. 작자의 서러운 정서와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비오는 길’이다.

⑦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4/5조)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4/6조)

낯선 친구 만나면(4/3조)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3/5/3)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2/4/3)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7/3/3)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4/5조)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4/5)
쩔룸거리며
가는 길 ......(5/3조)

하 략

- 전라도 길 -

2음보와 3음보로 이루어진 민요풍이다.
  본 시 <전라도 길>은 소록도 가는 길이다. 이 시의 시작 과정을 옮겨 본다.

...... 상 략......

  “나환자는 사람으로서 갖고 있는 천부(天賦)의 인권과 의·식·주까지도 박탈당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내 운명을 탓하고 따라갈 뿐이다. 이 모든 지옥을 벗어나려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길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길 소록도로 가는 길 밖에는 없었다. 이 소록도도 역시 나환자의 낙원이 못되고 지옥의 하나임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 인간 동물원에 갇혀 신음하는 이곳을 찾아가야만 하는 마지막 길을 찾아가는 암담한 심정은 사형수가 사형장을 가는 그 심정과 같을 것이다.
  천리 길을 걸어갈 수 없는 일이라 기차를 탄다. 찻간의 사람들의 눈초리와 주둥이는 나를 향하여 쏟아진다. 차장은 으레 발길로 차며 끄집어 내린다. 하차를 당하는 굴욕과 창피를 다시는 겪지 않고 ,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삼복더위 길을 걷기로 한다. 이 시는 여기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하 략......” 상게서  2. 황토길 p.p.537-540 참조.
 

  소록도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한 길, 황토길을 허우적이며 피곤에 지친 고단한 몸을 이끌고 가는 길을 형상화 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그 자신, 문둥이의 서러운 영가이다. 이는 자학의 노래인 동시에 생명의 노래이기도 하다. 시를 통해서만이 그의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⑧
 아 구름 되고파
 바람 되고파.(3/3/5조)

 어이없는 창공에
 섬이 되고파 (4/3/5조)

 - 하운  끝 두 연-

  3음보의 민요조이다.  <하운>은 자기의 이름 태영(泰永)을 버리고 얻은 이름이다.  태영은 크고 영원히 가업을 이어가라고 조상이 준 이름이다. 결국 하운은 이름값을 한 셈이다. 한하운이란 이름으로 크고도 오래도록, 아니 영원히 그 이름으로< 파랑새>와 같이 <보리피리>와 같이 때 따라 구름처럼 떠다니며 읽혀지고 암송될 테니 말이다. 그렇게 그렇게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고, 창공에 떠다니는 섬이 되어 하운은 언제나 푸른 하늘을 떠다니고 있으리라.  

*⑨
 님 오시면 피어라 진달래꽃.(4/3/4)
 한식에 소복이 통곡할 때에(3/3/5)

 부평 성계원에 진달래 피면(2/4/5)
 이 세상 울고 온 문둥이는 목쉬어.(6/4/3)

 진달래 핏빛 봉우리는(3/2/4)->3/6
 그리움에 엉긴 앵혈.(4/2/2)->4/4

 - 여가(驪歌), 1,2,3연 -

 3음보의 민요조이며 특히 마지막 연은 3/6/4/4의 시조의 종장과 같다. 여가(驪歌)는 『한국문학』 1977년 6월호에 게재된 작품이기도 하다. 똑 같은 대상을 보고도 시적자아의 심리 현상에 따라, 또 정서 감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봄마다 피는 진달래꽃, 님 그리운 진달래꽃, 님과 함께 보던 진달래꽃이기에 행복의 대상이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진달래꽃은 다시 볼 수 없는 님 그리운 진달래꽃이다. 그러기에 서럽게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통곡의 대상이며, 그리움에 엉긴 앵혈(鶯血)로 다가온다.

*⑩
지나간 것도 아름답다(5/4조)
이즈음 문둥이 삶도 아름답다(3/5/4조)
또 오려는 문드러짐도 아름답다.(4/5/4조)

모두가 꽃같이 아름답고(3/3/4조)
...... 꽃같이 서러워라(3/4조)

한 세상을
한 세월을
살고 살면서(4/4/5조)
난 보람을
아라리
꿈이라 하오리(4/3/6조)

- 생명의 노래 전문

2음보와 3음보로 이루어진 민요조이다.  둘째 연은 3/7/3/4음절로 나눌 수 있어 시조의 종장 율격을 닮기도 했다.

시인은 『황토길』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나에게는 R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나를 누구보다도 이해하고 아껴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내가 오뉴월 송장 썩듯 썩어가는 나의 악화된 병세를 보았고 그 병을 고치겠다고 일제 말기 약을 구하러 각처에 찾아다니고 일본까지라도 가서 약을 구하여 오고 문둥이인 나를 버리지 않고 내 곁에서 천사같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기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면서 R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R의 눈동자를 보았다. 이 때 나는 시인을 불러 보았다. 시인은 이때 R의 반짝이는 눈동자의 황홀함에 어떤 충동을 느꼈는가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만약 시인이 된다면 시를 쓸 충동을 느끼면서도 시를 쓰지는 못했을 것 같다.
  나는 R의 빛나는 눈동자에서 사랑의 시를 느끼고 그 사랑의 시는 나에게 다시

한 세상을
한 세월을
살고 살면서

의 삶의 욕망에 치솟는 「생명의 노래」를 주는 것이었다. 한하운 전집, pp..523-534 참조
라고 술회하고 있다.
  본 시 「생명의 노래」는 이제 모든 것을 초월하고 달관한 삶의 모습을 느낀다. 

⑪
지나간 것도 아름답다(3/2/4)
이제 문둥이 삶도 아름답다(2/5/4)
또 오려는 문드러짐도 아름답다(4/5/4)

모두가
꽃같이 아름답고(3/3/4)
......꽃같이 서러워라(3/4)

한세상
한세월
살고 살면서(3/3/5)
난 보람
아라리
꿈이라 하오리.(3/3/6)

- 영가(靈歌) 정본 한하운 시에서는 「영가」로 제목이 나와 있고, 시집『 황토길』에서는 「생명의 노래」로 나와 있어  같은 시 내용이 두 번 올려진 것임.
 

이는 제1연과 제3연은 3음보로 이루어진 민요조이고 제2연은 3/3/4 조와 /3/4 조의 5음보에서 이를 다시 3/7/3/4조의 4음보로 보면 시조의 종장이 된다. 
본시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시적자아의 초연하고 편안한 단면이 보인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꽃같이 아름답고 꽃같이 서러워라’에서 아름다움과 서러움이 공존함을 볼 수 있다.  꽃같이 아름다운 과거가 있기에 그 아름다움이  현실에서는 서럽게 다가올 수도 있다.  이루지 못한 아름다운 꿈들은 이제 한 낱  추억으로 과거일 뿐이다.  그래서 시적자아는 한세상 한 세월을 살아가면서 아라리 꿈이라 하였다.

⑫

내 고향 함흥은(3/3)
수수밭 익는 마을(3/4)
누나가 시집갈 때(3/4)
가마 타고 그 길로 갔다.(4/5)

내 고향 함흥은(3/3)
능금이 빨간 마을.(3/4)
누나가 수줍어할 때(3/5)
수수밭은 익어간다.(4/4)

 -  사향(思鄕) 전문-

 3/4/5조의 율격으로 2음보씩 4행 2연으로 이루어진 민요조로 고향을 그리는 ‘사향(思鄕)시’이다. 『한국문학』 1977년 6월호에 발표되었다. 내 고향 함흥은 수수밭이 익어가고, 누나가 시집갈 때 가마타고 가던 길, 능금이 익어가던 평화로운 마을이다. 고향은 시인에게는 더욱 그리워지는 곳이다. 가지 못하는 고향이기에, 떠나온 고향이기에, 어린 시절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라던 고향, 그 시절 일본으로 중국으로 자유로이 유학 갈 수 있는 환경, 병마와 싸우면서도 젊은 시절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고향, 그 곳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하지만 본 시 <사향(思鄕)>은 수수가 익어가고 능금이 익어가고,  시집가던 누나가  가마타고 가던  길과 수줍어하던 누나만 나올 뿐이다. 이렇게 단아한 시 가운데에서도 행간에 두고두고 가려진 사연은 그를 아는 독자에게는 상상으로 읽혀져서 하운시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⑬
내가 울고 싶어서(2/2/3)
파랑 잔디를 찾아 갑니다.(5/2/3)

남몰래 한(恨)이 가도록 울고 싶어서(3/5/5)
파랑 잔디를 찾아 갑니다.(5/2/5조)

중 략

눈 감고 눈 감고 누워서 조는 (3/3/5)
미령(靡寧)의 피로한 몸에(3/3/2)

폭신한 파랑 잔디는(3/2/3)
생명의 태반인 양(3/4)

지령(地靈)의 혈맥이 이다지도(3/3/4)
내 혈관에 싱싱한 채 순환합니다.(4/4/5)

- 청지유정(靑芝有情)에서 -

  3음보로 이루어진 민요조이다. 울고 싶어서 찾은 잔디, 남 몰래 울고 싶어서, 서러워서  찾은 잔디, 파란 잔디 위에, 자연의 순수함에 인간사에서 버림 받은 피로한 몸을 맡기면서 느끼는 생명에의 탄생, 지령(地靈)이 주는 싱싱한 혈관의 피돌기를 형상화했다. 이 시의 창작 배경을 읽어본다. 

“......그러나 자연만은 나를 아무 차별 없이 받아들인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이 되었다. 세상도 친구도 골육도 모두가 나를 아는 척도 해 주지 않는다. 나를 외면하고는 침을 뱉고 달아나 버린다. 이 세상은 나만이 있구나 이런 슬픔과 고독에서 나를 생각할 때 스스로 비통이 가슴을 찢고 눈물이 쏟아진다. 이 눈물을 참을 길 없어 울고 싶다.” 상게서 p.642
 그래서 첫째 연이 시작되었고 둘째 연이 이어졌다. 이러면서 시인은 자기의 울분을 시로서 삭히고 시로서 토해냈다. 그래서 시는 그에게 있어서 자기정화이고 자기 신앙이고 자기 생활인 동시에 살기 위한 삶의 도구이고, 살기 위한 삶의 수단이기도 했다. 

⑭
벚꽃이 피고
벚꽃이 지네
함박눈인 양 날리네 깔리네.(5/5/4/7)

꽃 속에
꽃길로
꽃을 밟고 나는 돌아가네.(3/3/4/5)

꽃이 달빛에 졸고
꿈결 같은데
별은 꽃과 더불어(7/5/7)
아슬한 은하수 만리 꽃 사이로 흐르네.(3/5/7)

꽃잎이 날려서
문둥이에 부닥치네
시악시 같이 서럽지도 않게
가슴에 안기네.

꽃이 지네
꽃이 지네
뉘 사랑의 이별인가(4/4/4/4/)
이 밤에 남몰래 떠나가는가.(3/3/5)

꽃 지는 밤
꽃을 밟고
예날을 다시 걸어(4/4/7)

꽃길로
꽃을 밟고
나는 돌아가네.(3/4/6)

- 답화귀(踏花歸) 전문-

3·4·음보로 구성된 민요조이다. 이 시에 대한 시인 자신의 평설을 옮겨 본다. 
  “시인(한하운)의 평설이다.
  유미주의자의 화폭같이 아름답다. 찬란한 벚꽃이 진다. 함박눈같이 퍼붓는다. 그리고 날리고 깔린다. 이 벚꽃이 피고 질 때만이라도 나는 문둥이 된 설움을 잊는다. 인간은 자기의 운명을 순식간이라도 잊고 살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닌가.
  벚꽃이 핀 봄밤이다. 달은 꽃에 취해서 몽롱하다. 별들은 은하수 가에서 영원한 초롱불 같이 파랗게 반짝이고 있다.  벚꽃은 함박눈같이 퍼붓고 날리고 깔리고 어깨에 몸에 떨어진다...중 략 ... 내 가슴은 황홀하다. 황홀한 가슴을 안고 눈같이 쌓인 벚꽃을 밟고 나는 간다. 아니 아니 나는 그 꽃 같던 그 옛날을 밟아 본다. 나의 사랑하는 R과 같이 가는 그러한 봅밤이다.” 상게서 p.p.646-647 참고
 
  해마다 4월이면 여기저기서 벚꽃 축제가 열린다. 지금은 진해 벚꽃 축제가 아니더라도 지방마다 벚꽃축제가 한창이다. 벚꽃축제에서 야경은 황홀감을 더해준다. 달이 없어도 조명등에 눈이 부시고, 바람이라도 스치고 지나가면 꽃나비가 천지에 가득하다. 어깨에, 머리에, 옷에 꽃나비가 하얗게 내려앉는다. 이러한 황홀한 분위기에서 시인은 추억을 새김질하며 “나는 그 꽃 같던 그 옛날을 밟아 본다. 나의 사랑하는 R과 같이 가는 그러한 봅 밤이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⑮
추석달은 밝은데

갈대꽃 위에(4/3/5조)
돌아가신 어머님 환영이(4/3/3)
쓰러지고 쓰러지곤 한다(4/4/2)

추석달은 밝은데
내 조상에(4/3/4)
문둥이 장손은 차례(茶禮)도 없다.(3/3/5)

추석 달
추석 달(3/3)

어처구니 없는 8월 한가위
밝은 달이다.(6/5/5)

- 추석 달 전문 -

  3음보의 민요조이다. 추석을 맞아 고향에도 못가고 장손으로서의 도리도 못하는 안타깝고 한스러운 심경을 추석, 달 밝은 밤에 시작(詩作)에 의탁하여 자기 정화와 자의식을 표출했다.

  이상에서 한하운 시에 나타난 전통 율격은 3음보의 전통 민요조로서 다수 시에서 찾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위에서 제시한 전통율격 가운데 시조율격을 찾아보기로 한다.

4. 한하운 시에 나타난 시조 율격

*①
모두가
꽃같이 아름답고
...... 꽃같이 서러워라

- 영가 2연

4음보 3/7/3/4 조로 시조의 종장을 연상케 한다.  시조의 기본 율격에서 종장은  첫째음보는 3음절이고 둘째 음보는 5음절에서 7음절이며 셋째 음보는 4음절이고 마지막 음보는 3-4음절이다. 하지만 이 규정에서 1-2음절 차이가 나는 현대시조는 허다하니 이러한 음절수는 시조율격으로 적절하다고 본다. 

*②
어머니
나를 낳으실 때 (3/2/4)
배가 아파서 울으셨다 (2/3/4)

어머니
나를 낳으신 뒤(3/2/4)
아들 뒀다고 기뻐하셨다.(2/3/5)

어머니
병들어 죽으실 때(3/3/4)
날 두고 가는 길을 슬퍼하셨다.(3/4/5)

어머니
흙으로 돌아가신(3/7)
말이 없는 어머니(4/3)

- 어머니 마지막 연 -

  3음보 민요조에서 마지막 연은 3/7/4/3조로 시조의 종장과 같다.

*③
 님 오시면 피어라 진달래꽃.(4/3/4)
 한식에 소복이 통곡할 때에(3/3/5)

 부평 성계원에 진달래 피면(2/4/5)
 이 세상 울고 온 문둥이는 목쉬어.(6/4/3)

 진달래 핏빛 봉우리는(3/2/4)
 그리움에 엉긴 앵혈.(4/4)

 - 여가(驪歌), 1,2,3연 -

 3음보의 민요조에서 특히 3연 “진달래 /핏빛 봉우리는/
 그리움에/ 엉긴 앵혈.” 는 3/6/4/4 음절로서 시조의 종장과 같다.

*④
지나간 것도 아름답다(3/2/4)
이즈음 문둥이 삶도 아름답다(3/5/4)
또 오려는 문드러짐도 아름답다.(4/5/4)

모두가 꽃같이 아름답고(3/3/4)
...... 꽃같이 서러워라(3/4)

한 세상을
한 세월을
살고 살면서(4/4/5)
난 보람을
아라리
꿈이라 하오리(4/3/6)

- 생명의 노래 전문

  3음보로 이루어진 민요조에서 제2연 “모두가 꽃같이 아름답고 꽃같이 서러워라(3/7/3/4조)는 시조의 종장으로 편입시켜도 된다.  

시인은 「생명의 노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나에게는 R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나를 누구보다도 이해하고 아껴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내가 오뉴월 송장 썩듯 썩어가는 나의 악화된 병세를 보았고 그 병을 고치겠다고 일제 말기 약을 구하러 각처에 찾아다니고 일본까지라도 가서 약을 구하여 오고 문둥이인 나를 버리지 않고 내 곁에서 천사같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기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면서 R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R의 눈동자를 보았다. 이 때 나는 시인을 불러 보았다. 시인은 이때 R의 반짝이는 눈동자의 황홀함에 어떤 충동을 느꼈는가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만약 시인이 된다면 시를 쓸 충동을 느끼면서도 시를 쓰지는 못했을 것 같다.
  나는 R의 빛나는 눈동자에서 사랑의 시를 느끼고 그 사랑의 시는 나에게 다시

한 세상을
한 세월을
살고 살면서

의 삶의 욕망에 치솟는 「생명의 노래」를 주는 것이었다. 한하운 전집, pp..523-534 참조
라고-.

5. 나오며

  이상에서 한하운 시에 나타난 전통 율격을 찾아보았다. 『한하운 전집』에 수록된 전체 시 작품에서 15편만 가려서 훑어보았다. 그 중에서 시조의 종장으로 간주할 수 있는 작품은 4편 정도이다. 「백조」, 「산가시네」, 「라일락꽃」 「백목련꽃」, 「도처춘풍」「신설」 등 다수 시에서도 전통율격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것으로 줄이고, 나머지는 다른 논자에게 남긴다.

  거듭 되는 절망과 희구 사이에서 겪는 갈등의 흔적,  극한 상황에서도 그 어려움을, 그 고통을  더욱 강하게  이겨내는 정신력, 고독과 고통을 이겨내는 시인의 정신적 강인함, 그의 시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자신의 특수한 상황을 객관화 한 점, 시대적 사회적 역사적 고통을 아울러 인간의 근원적 고통으로 환기시킨 점, 그래서 극히 개인적이면서 역사적 사회적 인간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까지 접근하였다고 본다. 한 개인을 통하여 그 시절의 나환자라는 병리현상을 사회화시키고, 그것을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로까지 부각시켜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인간으로서 살고자하는 나환자의 삶을 천연덕스럽게 형상화하여 표출했다.  

  시의 응축된 표현과 반복, 간결한 리듬이 갖는 효과는 그의 시의 많은 부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 대표적인 시가 「파랑새」 「보리피리」, 「어머니」일게다. 이들 시편은 민요조의 대표적 시인인 소월의 시와 함께 많이 애송되기도 하는 시이다. 시적자아의 절제된 태도와 리듬의 아름다움은 시인이 걸어온 비애와 회한과 사랑이 함께 어울려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그의 대표시 <파랑새>를 음미하며 본 논의를 맺으려 한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라새 되리.♣

2011, 한국문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