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晩秋)/박철수



수심(水深)깊은 하늘 바다 붉은 돛배 밀려가고,

산들이 색동옷 입고 소풍 나온 들녘 너머,

길 잃은 허수아비가 가을 끝에 울고 섰다.






붉은 노을/임춘자



노오란 가로수 잎 시나브로 지는 길을

노부부 손잡고 소곤소곤 걷고 있네

정류장 간이 벤치에서 훔쳐보는 할머니.





★뽑는 말


시조는 각 장마다 지니고 있는 멋진 가락과 그것이 다시 장에서

장으로 넘어가는 운율. 그리고 사상의 주체(또는 주게)가 되는

종장에 이르러서는 마치 천인단에서 물이 굴러 떨어지는 듯한

긴박한 흐름과 여유마저 동반한 그 절묘하거도 유연한 가락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가락은 시어와 시어의 접속 관계에서 이루

어지는 것이며 결국 이러한 가락은 시상 전개가 효과적으로 이루

어짐으로써 형식과 내용이 혼연일체로 동화되어 독자에게 공감을

줄 수 있다.



박철수의<만추>는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신인답지 않은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거듭 읽고 음미할수록 따분하다거나

칙칙하다거나 가볍게 흘려버릴 수 있는 가락과 내용이 아니다.

그것은 적절한 비유과 감각적인 묘사. 호감이 가는 의인법 등에

서 비롯되고 있다. 사상의 전개를 점층적 기법으로 이루면서 종

장 '길 잃은 허수아비가 가을 끝에 울고 섰다'와 같은 훌륭한 표

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려가고','들녘 너머','가을 끝에'와

같은 표현도 시상을 돋보이게 하는 표현이다.



임춘자의<붉은 노을>은 노부부의 모습을 노을을 통해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낙엽이 지는 가을 길을 손잡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감동을 통해 시적 분위기는

쓸쓸하기보다는 '붉은 노을'처럼 아름답게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제목<붉은 노을>을'노을'이나 '저녁 노을'이라 했으면 어

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부부 손을 잡고'로 표현할 때 운율이

살아나고,'간이벤치에서'의 한글과 외래어의 합성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벤치'라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꾸거나 '간이벤치'자체

를 다른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훔쳐보는 할머니'

표현에서 시적 의미가 생동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어 좋다.



-김 준(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