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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5-16 12:15
 조회 : 2,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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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도자적 발상법과 작품의 진실성 ●
박영교(시인. 경북문인협회 회장)
1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리라」
이 말은 오그만디노가 <위대한 상인의 비림>이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대단한 각오이며, '와신상담'과 같은 깊은 결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삶의 지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생활 속에서 구도자, 목자들의 삶이 곧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는 살의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하루가 오늘도 지나가고 있고, 내일도 지나 갈 것이다.
목자이며 시인인 김시백(金時百) 그의 삶을 보면서 표면적인 빙산(氷山)과 객관적인 생활 그리고 문학인으로서 작품세계를 언급한다는 것, 그 자체가 퍽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1967년 1월에 <눈길>, 5월에 <봄의 여심>을 중앙일보 중앙시조난에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조창작에 몰두했던 것 같다. 김시백 시인 최초의 시조 작품을 감상해보자.
밭이랑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보고
보리이불 이만 하니 풍년이 들겠다며
노인네 입 언저리에 웃음 짓던 들판 길
-<눈길> 전문
1950~60년대 보릿고개를 아는 사람이 점점 없어져 가는 시점에서 이 작품은 時代的인 아픔이 <눈길>을 통해 잔잔하게 깔려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71년 시조문학 28집에 <독백>이 천료 되어 문단에 등단 (이태극님 추천)한 이래 첫 시조집《추강산조》(74년)를 출간 후 지금까지 12권의 시집을 낼만큼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목회활동도 훌륭하게 하고 있음을 듣고 있다. 그는 목회자이지만 실상 작품집 속에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작품들은 그리 많지 않다. 제 7집 <순례자의 길에서>와 제 12집 《잠언 시초》속에서 그 색깔을 만나볼 수 있으며, 다만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작품이 아니라 역량(力量)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누구든지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성서의 말씀과 같이 김시백(金時百)시인은 순수하며 정말 천진무구한 마음의 소유자라고 하겠다. 그런 것은 그의 작품 군데군데 잘 들어나 있으며 실질적인 삶의 흔적 속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2
열두 권의 작품집들을 읽어보면서 우선 마음속에 떠오르는 작품을 언급해 보기로 하자.
까투리 방정 떨며 산실 찾는 이맘때면
낭자한 송화지분에 온 산이 취하여 졸고
청산도 가슴 해치네 무너지는 저 숨소리.
-(계절 앞에서)전문 <제1시집>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가 70년대 초기이다. 좋은 작품은 시공(時空)을 초월하며 잘 읽혀지고 또 그 시대(時代)를 반영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 작품 속에서 가슴 아픈 보릿고개가 살아있고 우리들의 어려웠던 춘궁기가 한숨처럼 쌓여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모든 삶의 생동감을 종장에서 잘 표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릴적 꿈이 익어
홍조로 물이 든다
꾸준히 외길 인생
걸어온 진실들이
화폭에 갈피마다 살아
작품으로 빛난다.
그 누가 뭐라 해도
헤프게는 펼 수 없어
수많은 사연들을
순정처럼 지키다가
최후의 만찬을 위해
화려하게 지는 거다.
-<방정곡 시편 11>전문
자연(自然) 하나를 보더라도 보는 사람의 품위와 순수함이 있으면 그 자연이 고와 보이고 품위가 있어 보이는 법이며, 단풍잎이 져서 바람에 나부끼며 포도(鋪道)위에 뒹굴어도 그것을 주워서 소중히 간직하는 사람에게는 책갈피마다 빛나는 작품이 될 것이고 쓸어서 불에 태우며 그 연기를 통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기쁨을 얻게 될 것일 수도 있으며,'최후의 만찬'을 생각하는 구도자의 자세가 낙엽으로 지는 단풍의 최후를 생각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평범한 신앙의 작품을 읽다보면 정말 작품이 아니라 성서구절 그대로 써 놓은 작품들을 많이 만나게 될 때도 있다. 물론 김시백(金時百)시이의 시집에도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대부분의 많은 여과(濾過)를 거친 시들이 담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돈이 들어가는 전등을 꺼버려라.
공짜로 밝혀주는 달빛도 거절해라.
남는 게 어둠뿐이거든 눈을 감고 기다려라.
-(광야의 소리.10)제 5시집.88미루나무
각 장의 명령법으로 끝내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시인의 의지, 시인의 삶의 자세를 엿 볼 수 있게 하는 작품으로 느껴진다. 초장에서 독자들에게 주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중장에서는 초장의 이미지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지도록 구성하였다고 보겠다. 그리고 종장은 자연이 주는 밝은(빛)까지도 거절하고 나서 남는 것이 어둠뿐이거든 눈을 감고 기다려라(기도하라)고 하였다. 즉 회개하면서 기도를 하라. 이런 뜻으로 초, 중, 장이 내용상 점층법으로 강렬하게 구성되어 있는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사라랴의 아들 세례요한을 두고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하였다. 이것은 상징적인 수법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며,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회개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누가복음 3:1-16)
A. 누군가
옷을 벗고
강물에
뛰어 든다.
뒤따라
훨훨 벗고
물살을
일궈댄다.
강물도
강물을 따라
밀려 왔다.
되간다.
바람이
바람나서
먼지를 일으킨다.
나이 든
여름이
알몸을
가리고 있다.
태양은 신열(身熱)을 앓아
둘레까지
뜨겁다.
-<강변에서>전문. 제6시집(91)
B.눈길만 마주쳐도
휘감는 등나무는
만나면 엉키어서
꼬아대기부터 해도
버티고
살아가는 게
지독함만 아니란다.
철 따라 꽃을 피워
드리우는 화사함과
첩첩이 겹친 잎새
두터운 그늘 지워
시원한 공간 제공하는
보람으로 산단다.
등나무 아래 누워
인생을 돌아본다.
과욕이 낳은 폐해
부끄럽게 여겨지고
더불어
사는 비결을
나무에게 배운다.
-<등나무>전문. 제8시집(96)
우리는 위의 두 작품을 읽고 이질적(異質的)인 자연현상(自然現象)에서 오는 시원함과 계절감, 그리고 동질성(同質性)의 느낌을 얻는 이질적 현상감(現象感)을 함께 맛볼 수 있을 것이다.
A의 작품은<강변에서>全文이다. 二首一篇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각장을 4행으로 배열하였고, 시적(詩的)의미와 부합되는 부드러운 음질(音質) 로써 시적 효괄르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동적(動的) 상상력에 의한 시의 회화성(檜畵性)과 시어(時語)의 리듬감 등 시적 변용의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A-1首 : 초장- 누군가 옷을 벗고 강물에 뛰어 든다.
: 중장- 뒤따라 훨훨 벗고 물살을 일궈 낸다.
: 종장- 강물도 강물을 따라 밀려왔다 되간다.
작품A의 첫째 首와 둘째 首에서 동적(動的) 상상력에 의한 이미지의 회화성은 일품이다. 또한 언어의 묘미도 좋다.<강물도 강물을 따라>,<바람이 바람나서>,<나이든 여름이 알몸을 가리고 있다.>등 언어의 변용술도 높이 살만한 작품이다. 한 여름 강변에서 사소하게 일어나는 일상이 일들을 통해 짭짤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김시백(金時百)시인의 力量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하겠다.
B의 작품은 <등나무>라는 제목 하에 三首一篇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먼저 이 작품을 만나게 되면 여름철 편안한 그늘을 드리운 시골 마실 앞 한 일가를 일구고 있는 나무 그늘의 정자가 아니라 시골도 좋고, 도시의 어느 외진 쉼터를 위한 등나무 등을 의식하게 된다.
둘째 首까지는 일반적인 등나무의 모양, 외적 생태의 모습 등을 묘사해 놓았고, 셋째 首는 그 등나무 아래 쉬면서 시인 자신이 걸어 온 삶의 발자취를 돌이켜 보면서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겸손함을 표현하고 있다. 우선 첫째 首 초장의 회화성과 중장의 메타포(metaphor) 등은 등나무의 특징적인 楊性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요즘 발표되는 시조(時調)작품을 보면 자꾸만 새로운 것 새로운 것을 추구 하다보니 깊은 내용을 담지 못하는, 또는 깊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시조가 되지 않고 피부에 스치는 감각적인 어떤 내용이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그런 작품들이 새롭고 전율적인 작품으로 발표되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 새롭지는 못하지만 진지한 작품을 발표하는 시인들의 노고는 더 이상 쳐다보지 않는 고사목(故死木)이 되어서는 안될 것으로 본다.
한 시인의 그 작품에 대한 가치는 그 시인이 어떤 작품을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어 표출하더라도 그 값어치는 그 나름대로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3
지금까지 김시백(金時百) 시인의 작품들을 읽어보면서 그의 작품 대개가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 나가는 지혜이거나, 인간(人間)의 끈끈한 정의(情議)와 작품 속의 진실성을 잃지 아니하는 의미 구조의 미학이 깊게 침잠 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구도자적 삶의 의지가 시적 발상이 되어 나래를 펴고 있음도 보여지고 있다.
그의 제8시집(변화)의 연작을 읽으면서 김시백(金時百) 시인 자신이 종교적인 틀에 매여 있는 (어떤 껍질을 깨고 벗어나지 못하는) 어떤 특정한 사람(목사)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인간(人間)임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 의식적인 작품들이다.
오그 만디노는 그의 작품 속에서 거지는 다음끼니를 걱정하고 나는 내 인생의 삶에 있어서 마지막 끼니를 걱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시(時)를 창출해내는 데에는 너무나 가난한 삶의 끼니처럼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 김시백(金時百)의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은 삶의 마지막까지에 대한 풍성한 순수, 깨끗하고 청순한 마음의 여유, 구도자적 작품의 진실성 내재(內在)등이 그것이다.
그의 갈길 다 가고 이제는 돌아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박한 한 손자에 대한 한 할아버지의 소임도 잘 표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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