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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5-07 09:37
 조회 :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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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지성의 작품세계 >
◆ 흙과 사랑으로 빚은 돈독한 시정신 ◆
李 相 範(시조시인)
장지성 시조의 전편에 스며 흐르는 일관된 형식미는 그것이 흙과 사랑, 그리고 그것들이 시대상의 바탕 위에 직조된 돈독한 시정신에 있음을 바로 추출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흙, 그의 영농은 결코 삼자적인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토대로 했기에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이어서 우리에게 수월하게 압도되어 온다. 그 같이 체험의 바탕 위에 씌어진 그의 시조에서 우리는 진실성과 투박성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또한 가다가 숨통을 트는 어수룩한 빈 자리가 현대인에게 여유와 해학을 제공함으로써 신뢰감을 주고 있다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될 시의 위상인 것 같다. 또한 시대상 위에 던져지는 그의 진실도 결코 구호이거나 시에 용해되지 않는 육성이 아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흉금에 잘 배어 들고 있어 그의 설득력은 새롭게 평가되어야 할 것 같다. 또한 농촌에 뿌리박은 그의 시의 터전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성과 설화, 그리고 현샐인식의 부토 위에 엮어져 긍정과 친밀감을 잃지 않고 있다고 본다.
다음은 그의 시를 받쳐주고 있는 사랑이란 받침목을 유심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시를 일구어 주고 걸구어 줌으로써 시를 지탱케 하고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랑 보법>은 그의 정신과 사상, 이를 테면 인생관, 세계관, 그리고 시세계의 향방을 점지해 주는 힘의 원천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하기에 이 같은 사랑의 힘은 시조 전체의 흐름을 통제하고 있고 고루고루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데 우리의 시선을 머물게 한다.
이제 그의 시의 골격을 이루고 있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그의 문학정신과 자세, 시의 페턴, 그리고 이미지의 단면을 통해 나타난 시의 여러 갈래를 살펴보기로 한다.
「사랑 보법 · 4 」에선 사랑에 대한 책무를 매우 무겁고 벅찬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사실 삶이란 그 자체가 이미 무거운 멍에일 바에야 사랑이란 그 무한의 영역이라고 다를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기에 한(恨)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다. 다할 수 없는 것이 삶이요 사랑이기 때문이리라. 그러기에 <천형의/ 형벌 같은/ 무거운 짐 하나>로 보면서 하늘로부터 받은 벌이라고 여긴다. 그 벌이 준 무거운 짐으로 여기고 있는 바, 이런 관점에서 사랑을 헤아린다면 사랑은 오히려 종교적인 차원으로까지 승화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향일성 치솟는 마음을 어찌할 수 가 없다. 늘 밝음을 향해 해바라기처럼 사랑을 향해 도는 마음자리를 스스로는 어찌할 수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진실고 찬란한 모순이 사랑의 실체는 아닌지······.
「사랑 보법 · 7」에선 사랑의 끝자리를 오히려 무덤까지 이어질 비밀 하나로 여기며, 살아서 못다 풀 것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 같이 못다한 사랑도 결국은 봉분의 풀잎으로 남겠구나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고, 끝내는 가을이면 가을마다 바람에 나부끼는 꽃으로 남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만 살아서 살지 못한 한이 귀뛰리 울음으로 엉기어 바람결에 묻히고 덧없을 것이라고 여긴다. 이를 뒤집어 보면 살아서 나누는 사랑이 얼마나 소중하냐는 반증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쩐지 허전하고 숙연한 타이름으로 남는다.
「사랑보법 · 15」는 사랑을 또 다른 면으로 파악하려 하고 있다. 뭔가 빈자를 그득하게 채워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것도 부지불식간에 말이다. 사랑의 안팎을 의식한 듯 사랑의 존재를 밝은 면의 배변에 있을 그늘한 점으로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별빛처럼 널린 숱한 사랑 속에 점 하나나 다름없을 우리 사랑은 정말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가 감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무한량의 힘과 매력, 그리고 다함 없는 깊이와 넓이에 그는 마치 백기라도 올리고 있는 듯하다.
아무튼 작가는 이 같은 사랑 앞에 스스로 삶의 영역을 넓혀 가고 있고 긍정적인 깨달음의 세계로 진일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랑 보법」은 넓은 의미의 사랑으로 환원될 때, 사랑은 바로 삶으로 바뀌어지고 그 삶은 끝내 삶의 터득으로 승화되어 자리잡힐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같은 <사랑 보법>의 과정을 통해 그는 성장해 왔고 그의 시는 과육이 풍부한 삶의 물기를 윤기를 보여주고 있고 이것들은 시에다 생명감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계속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같은 과정을 통해 탄생한 시 또한 우리에게 풋풋한 감동으로 이어질 것임은 자명한 일이라 하겠다.
장지성은 누구랄 것도 없이 땅을 믿음으로 삼고 과원을 경영하는 농사꾼이다. 오직 신념과 뚝심 하나로 버티는 흙의 개간자이다.
「이농사(離農史)」는 근래의 이농현상을 포착한 작품이다. 땀 흘려 지은 농사에 빚만 잔뜩 짊어지고 견디다 견디다 못해 야반도주했을 모습은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다. 누대의 영농사에 없던 일인 듯하다. 그까짓 애지중지 하던 농토마저 조상이 묻힌 선영의 발치에 버려두고 자기 고장을 떠난 것이다. 망초꽃만 지천으로 핀 폐허의 묵정밭에 바람결만 내왕한다. 실로 삭막한 풍경이다. 일제 때엔 선조들이 등살에 못이겨 북간도로 그렇게 떠나갔는데 계속하여 이웃의 불빛이 하나 둘씩 꺼져가는 서글픈 농촌풍경! 훗날 도깨비 터로 남을 자기 고향을 가감없는 씁쓸한 심정으로 조명하고 있다. 이것은 농촌의 현실이요 피할 수 없는 오늘의 형태이니 할 말을 잃는다.
임간 방목장(林間放牧場)에선 보다 침착성을 잃지 않는 인내의 모습이 역연한 것으로 나타난다. 적어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관망의 자세로 보아진다. <비늘 턴 바람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늪처럼 가라앉은/ 여울지던 시간들도>가 그러하다. 결국 그 같은 인내의 시간도 수목과 수목 사이에서 긴장된 가운데 사열(점검)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결코 좌절만은 할 수 없기에 부서진 목책과 난간을 손질하는 것이 살아 있을 자의 꿈이요 할 일이 아니겠는가.
「불미나리」는 척박한 땅, 후미진 도랑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는 미나리다. 여기서 그가 굳이 불미나리를 택한 이유는 바로 불미나리의 삶이 우리들 서민의 그것임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 한 사발과 손으로 드는 건건이가 서민의 삶, 그 단면을 잘 포착해 내고 있다. 일하다 쉬는 참이거나 귀가길에서 서서 드는 대포잔의 모습이 그런 것 아닌가. 엄지가 술사발에 담겨져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진정으로 서민의 삶을 알려면 시장에서 어울려 사는 모습, 좌판 건너의 찌들어 주름진 얼굴과 눈빛을 바라보면 그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다. 모질게 자랐을 불미나리를 두고 좌판까지를 연결하여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의 손에 의해 뜯기고 짓밟히고 토막져 잘려지기를 거듭했을 터이니까. 고초와 어려움이 따랐다는 얘기다. 그러나 서민의 모진 삶은 결코 좌절하지 않고 불굴의 뿌리를 내리며 삶을 일으켜 세운다. 그 같은 어려움 끝에 스스로의 영역을 넓힌 그렇다 민주화의 과정일 수도 있고 자율의 진폭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듯 장한 민초의 힘을 아느냐고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이 같은 바탕은 그가 한 서민의 일원으로서 터득한 시의 경지라 할 수 있겠다.
「겨울 가로수」에서 그가 바라보는 시안(詩眼)은 매우 깊고 오히려 착잡하다. 마치 화염병과 투석, 그리고 최루탄을 쏘며 대치해 있는 형국으로 마주선 가로수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이다. 여기서 <모질게 뿌리 내린/ 목숨을 다스리며>는 바로 매일매일을 사는 우리들 서민의 어려운 삶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올해는 그럭저럭 잘 넘겼지만 앞으로는 또 어떤 방점을 찍으며 삶에 유의해야 하는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두 줄기의 평행선인 가로수을 바라보고 있다. 이는 곧 이 시대를 응시하고 있는 지성의 고뇌라고 여겨진다.
이제 끝으로 그가 일구어 가는 풋풋한 서정의 밭갈이와 여유, 그리고 세상을 가늠해 가는 넉넉한 시안(詩眼)과 생애의 깊이를 짚어 보면서 끝을 맺고자 한다.
「과원촌 시대」에선 그가 경작하고 있고 씨 뿌려 수확하고 있는 만 평의 굼이 오히려 아름답다. <울도 담도 없는/ 세월/ 묵객처럼 불러놓고>가 특히 그러하다. 예서 이 시인의 인품과 여유를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풍류와도 맥을 같이 함으로써 멋을 돋우어 주고 있다. 그만큼 자연과의 친화력이 돈독하다. 하기에 정겨운 인사쯤이야 해조음에 쓸려간들 대수냐고 홀로 뇌이고 있다. 이는 자연과의 대화이지 우정의 나눔일 것이다.
작품 「찔레꽃」에선 까닭 모를 삶의 이치를 일깨워 주고 있다. 가난한 자의 마음의 문은 빗장마저 없다는 것이다. 감출 것도 더 내보일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소탈함 그것인 것이다. 뭔가 그득히 채워졌다 느껴지면 이내 비워지는 허전함, 바람결에 항만을 흩을 뿐인 것이다. 그것이 찔레다. 그렇게 남에게 죄다 내어주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 같은 삶의 순리와 슬기를 누가 있어 또 내게 일러주겠느냐는 것이 작자의 고백이다. 들찔레에서 받은 인상이 이상한 매력을 자아내고 있다. 그의 마음자리와 일맥이 상통하기 때문이다.
「촌수풀이」는 단수이지만 비교적 꽉 짜인 듯 고독과 그리움, 사랑과 이별을 촌수로써 잘 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아주 재미나게 말이다. 특히 이들의 관계, 예컨데 고독↔가슴앓이(사촌), 그리움↔눈물(삼촌), 사랑(무촌), 이별(몇 촌?)로 구분한 것이 단수로 묘미를 마냥 더해주고 있다.
그의 이 같은 낭만과 풍류의 멋은 그의 시조에 생명감과 함께 새로움을 일궈내는 진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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