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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28 12:54
 조회 :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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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평
새롭고 다양한 가능성의 시/ 조주환(시조시인)
<시조문학>은 다시 태어나고 있다. 지난 봄호의 편집 체제와 작품의 질에서 놀랍게 바뀌어감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모자라는 점은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 더욱 젊어져야 하리라 믿는다. 시조에서 새롭게 태어남이란 기존의 질서를 마구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원칙에 충실하면서 바람직한 시도를 말한다. 시조는 3장 6구 12음보, 종장 제1음보 3음절, 제2음보 5음절 이상이란 원칙 위에 시도가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시절가조가 되어야 한다. 곧 시조는 반드시 그 시대의 언어로 그 시대 의식을 형상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문학성이 빼어나면서도 새로운 작품이라야 한다. 같은 제재, 주제라도 남다른 그 어떤 점이 있어야 하며, 봄 호에서 말한 것처럼 아름다움의 그 어디에 닿아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조문학> 봄호, 원로 특짐의 시작 노트에서 정소파시인은 定型이면서 整形인 3章6句12音步의 평시조 한 수는 전통의 자수율 그 형식을 고수하는데 민족시로서의 값어치가 있다할진대 잣수의 지나친 파격을 감행하는 어리석은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확고한 문학관이 서야 할 것이다. 주어진 형식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때 능수능란한 시조악기인이 될 것이다라고 하여 확고히 원칙에 입각한 결연한 자세을 볼 수 있다. 또한 김교한 시인은 이름을 함부로 여기 저기 얹지 말 것과 글은 잘 쓰려 떠들지 말고, 평범한 수준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일러주는 것이다. -중략-, 신춘 당선 시조나 젊고 패기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자주 대하고 싶은 것은 다 끝남이 아닌 미완의 생기를 충전해 보자는 것이다라고 하여 창작에 임하는 자세와 뜨거운 의지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이는 저무는 연지에서도 시조를 새롭게 하려는 각오와 한 평생 진지하게 창작해 온 원로의 시작태도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으리라. 아무튼 시조문학 봄 호는 원로에서 신인에 이르기까지 신선한 충격을 줄 정도로 새롭고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우리 곁으로 다가 오고 있고, 내일을 향해 열려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내 안의 강언덕 기인 긴 나루에
밤새내 추적이는 어느 漂母가 있어
무명벨
헹궈 빠는가!
저 갸날픈 방망이 소리.
<가까웠단 멀어져 가는 저 방망이 소린>
한 잎새
오동에 지는
새벽달의 그림자!
<가야할 때로군! 다시 가야할 때로군!!>
이 비 그치면 추연히 돌아서 갈 ···
내 마음
창갈 적시는
시린 가을 밤비 소리.
- 정소파,<갈밤비>, 전문
정소파 시인은 특집에 실린 <죽풍상(竹風辭)>의 종장들이나 <갈밤비>의 배행은 낯설게 하기로 신선한 충격을 줄 정도로 시각적인 시도를 보이고 있다. <갈밤비>는 언뜻보면 시조 한 수가 네 개의장으로, 형식에 어긋나 있다. 그러나 필자가<>한 부분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이 행은 실제 있는 장이 아니라 생각 속에서만 읊조린 상상의 장으로 보인다. 아니면 고산의 <어부사시사>에 있는 여음과 같이 보아도 무방하리라. 그리고 첫째 수 종장의 배행은 무명배를 물에 헹궈 빨 때 물살의 일렁거림과 무명베의 흔들림과 고르지 못한 방망이 소리의 율동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배행법이라 보여지며, 둘째 수 초장은 달빛이 바람에 흔들리는 오동잎에 일렁거리는 시각적 표현과 종자에서는 가을 밤 비소리가 안정되지 못한, 시린 마음의 창을 적시기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원로시인의 시도를 볼 수 있다.
무한 세월 쌓은 녹봉(綠峰)
그 보람도 잔인하게
허리 잘린 오솔길은
실밥처럼 헝클어져
아득히 비장해온 혈류(血流)
화석가루로 앓고 있다.
-김교한, <신은 지금-굴착기의 춤사위에->, 첫째 수
김교한은 <산은 지금>은 산업화 시대에 개발이란 이름으로 인간의 잔혹성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어 가는 자연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이 시의 바탕이 된 화자의 정신은 휴머니즘과 자연에호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있는 그대로의 아프고 참혹한 현실을 고발하여 독자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며, 있어야 할 현실을 염원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청동빛
그 무게를
닮고 싶은 날이 있다
푸득이며
날아오를
시간을 기다리며
한 때의
울림을 위하여
저 무겁게 침묵하는,
은은히
울리면서
빛이 되어 흐르는
천년보다
더 긴 세월
영혼의 기침소리
가파른
생의 계단을
이 밤 누가 오르는가.
-김민정,<종>, 전문
김민정의 <종>은 그 첫째수가 종소리처럼 비상의 날개를 달고 날고 싶은 화자의 소망을 담고 침묵하며 기다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내용상 일반적인 통사구조로는 초장이 종장의 끝에 와야 하는데, 도치법을 사용아혀 초장을 서술형 어미로 푸고, 종자의 끝을 관형사형 어미로 끝나게하여 기다리며 침묵하는데 더 힘을 실은 새로움을 시도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도 종소리는 단순한 자연물의 소리가 아니라 삶의 연관시켜 생의 계단으로 보고 있으며, 종장을 서술형보다 의문형 종지법으로 반문하고 있어 대상과의 적절한 객관적 거리가 되게 하고 있다. 이 시인은 다작보다 한 작품에 더욱 고뇌하면 우수한 작품들을 많이 얻으리라 믿는다.
계절의 이별들은 늘 젖어 있었네
물방울들이 굳은 얼굴로 악수를 마쳤을 때
유록빛 눈시울 같은 봄 산자락에 비안개
눈물로 저리 쉽게 결박을 푸는 법을
낙석에 숨긴 돌산이 빛나는 눈초리로
내 마음 응달진 곳에 불밝히고 있었네.
-박진숙,<해빙기>,전문
박권숙은 전 작품에서 감정을 절제하여, 달리 되씹는 맛을 느끼게 한다. 부신 시구들이 많으나 시상의 단절을 느끼는 부분도 함께 있어 가끔 당혹하게 하기도 한다. 이미지는 미적 형상화가 되어야 하며, 시의 해석에 기여하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용한<해빙기>는 비교적 쉽게 읽히는 시로 겨울의 끝과 봄의 기척인 해빙은 얼음이 녹아 젖고 봄비로 젖는 자연 현상만의 해빙이 아니라 맺히고 얼어붙은 우리 인간사에서의 해빙을 뜻하기도 한다. 첫수에서 메마르고 딱딱히 굳은 얼굴의 일들도 화해의 악수를 마쳤을 때는 유록빛(봄철 버들잎 빛깔)눈시울 같은 눈물이 먼저 와서 젖게 한다. 둘째수에서 낙석을 숨긴 돌산은 다시는 맺히거나 얼어붙지 말라는 경고로 빛나는 눈초리를 하고 불밣히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박권숙의 작품들은 주목의 대상이 된다.
강 건너 산마을로 색동신발 신고 오는 봄
예순 살 할머니를 종다리고 설레게하고
닳아진 조선 호밋날에 파란 넋을 깨운다.
-김경자,<봄 日記>,첫째 수
김경자의 시들을 보면 투명히 깨어 부신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위의 <봄 日記>도 그렇다. 초장에서 강 건너 산마을로 색동신발 신고 봄이 온다고하여 유년과 같은 설레임과 적절한 객관적 거리를 설정하고 있으며, 종장에서 '닳아진 조선 호밋날에 푸른 넋을 깨운다'라고하여 전통적인 시정을 깨고 일구다 닳아진 호밋날에 다시 봄의 넋, 곧 새로운 시, 새로운 서정을 깨운다는 표현은 감각적이다.
시시비비 밀고밀던 팔매질도 쓸리어나간
목청 쉰 앞바다엔 동백꽃 뚝뚝진다.
소매깃 하얗게 접으며 가슴을 치는 파도여
힘줄이 굵은 바람 밤배 한 처거 끌며온다.
소리띠 풀어놓고 환타지를 쓰고 있다.
모래톱 울리던 첼로, 바다가 되고 누웠나.
-남승열,<윤이상의 바다>,셋째, 네째 수
남승열의 <윤이상의 바다>는 '팔매질', '힘주 굵은' 등 남성적 이미지군의 연결로 거침없고 활달하게 시상을 전개해가는 솜씨가 돋보인다. 첫 수에서 동서냉전으로 인한 조국분단과 그로 인해 조국(고향)이 지척인데도 올 수 없었던 주인공의 아픔을, 셋째 수에서는 이제 그이 대한 시비도 끝나고, 그리움으로 목이 쉰 그 바다엔 아픔과 회한의 파도가 치고, 넷째 수에서는 이제 어둠의 시대는 끝나고 환상곡을 쓰며 주인공의 바다가 누워있는 화해의 장들을 적절한 비유로 사실감있게 형상화하고 있는 솜씨가 돋보인다.
서녘이 강변 깊이
비수 몇 갤 꽂아 두고
가슴에 그득 고이는
끓는 피를 마신다.
고적히
거슬러 우는
비운 같은 생이여.
넘을 듯 쏠린 허리
자진모리 밑올리며
까마득히 부려라
타오른 오르가즘
휘어져
이승의 발이
미친 듯이 웃는다.
-노창수,<바람과 갈대>,전문
노창수의 <바람과 갈대>는 바람 부는 날, 일몰주변 바람에 쏠리고 휘어져 우는 갈대의 모습을, 새로운 각도로 참신하게 형상화 하고 있다. 첫수 초장에서 일몰의 시적 상상은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며, 일몰의 붉은 놀을 '끓는 피'와 '타오르는 오르가즘'에 각각 비유함은 참신하다. 그러나 첫째 수 종장 '비운 같은 생이여'는 연결이 어색하여 어울리지 않은 감이 있다.
동그런 색실꾸러미 모여 앉은 비구니
은밀히 수런이는 애벌레와 씨앗들
벙그는 모란꽃에는 박하분 이모내음
선잠 파묻으며 뒤적이던 베개 밑엔
이모의 한숨이 강으로 흘러가고
강물 위 떠내려가다 목에 걸린 별 하나.
-문차랑, <동지>.둘째, 셋째 수
문차량의 <동지>는 자칫하면 진부해지기 쉬운 전통적인 체제와 주체로 동지때의 추억들이 섬세하고 담박한 서정으로, 한 점 티끌도 없이 형상화 되고 있음을 본다. 둘째 수 종장 '강물 위 떠내려 가다 목에 걸린 별 하나'에서도 '별'의 이미지가 이 시의 평범한 흐름위에서 엑센트 역할을 하여, 되씹게 하는 맛이 있다. 이 시인은 앞으로 현실에 접근하는 제재와 주제를 다루었으면 한다.
접어야 할 기억의 끝자락을 붙들고
마지막 순간까지 바르르 떠는 잎새
펼치던 좌판을 걷고 일몰을 향해 간다.
응달에도 쳐내야 할 곁가지는 자라는가
즐비한 낙엽들은 삼한(三寒)을 떨며
꼭 닫은 도시의 창에 물음표를 던진다.
-박구하,<월동>, 둘째, 셋째 수
박구하의 <월동>은 겨울로 들어가는 입동주변의 모습들을 활달하고 사실감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첫째수는 조락으로 묻혀가는 것들을, 둘째수는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푸르렀던 시절에 대해 아직도 남은 미련을 떨치지 못해 몸부림치다 결국은 겨울 속으로 들어감을, 셋째수는 한겨울 떨고 있는 나뭇잎들도 문을 닫고 단절 속에 있는 도시를 향해 가슴을 열어야 한다는 아이러니를 각각 적절히 노래하고 있다. 이 시인은 계속 작품에 냉철한 자세를 견지하면, 우수한 작품들을 많이 빚으리라 믿는다.
바람도 돌부리에 걸려 되돌아 오던 결빙의 땅
반세기 녹슨 반세기 가시 철망 걷어 붙이고
우직한 이중섭의 소가 묵정밭을 갈고 있다.
무거운 삶의 그림자 내려 놓는 빈 녘 멀리
쌀뜨물 헤쳐가며 새벽빛이 몰려온다.
돌쩌귀 어긋난 빗장도 삐걱이며 열려온다.
-이영필,<고향가는 소떼>첫수, 둘째 수
이영필의 <고향 가는 소떼>는 흔히들 정치가 어떠니, 경제가 어떠니들 하지만 새 천녕을 앞둔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민족적 과제는 분단상태를 극복하는 일임을 다시 깨우쳐주고 있다 이 작품은 분단의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화자의 간절한 소망을 정주영 회장이 이끌고 휴전선을 넘은 소떼에 적절히 용해시켜 형상화하고 있다. 첫째 수에서 이중섭의 소는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릴 만큼 힘이 있는 소를 말하고, 둘째 수 종장에서 '돌쩌귀 어긋한 빗장도 삐걱이며 열려온다'라고하여 이 시의 화자는 소떼가 막힌 곳을 뚫어 분단과 대치상태를 해소하는 긍정적인 요소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에서 경계할 일은 흔히 휴전선 문학이라 일컫던 '50-60년대의 분단상황을 노래하던 작푸에서 빠지기 쉬웠던 감정의 직서나, 상식에 머무는 사설 드을 경계해야 하리라.
어디론가 날기 위해 지하로 스며든다.
새벽부터 자정 넘어 혹은 앉고 혹은 서서
미로와 뒤섞여서도 새가 되는 꿈을 꾼다.
때로는 지하에서도 새가 될 수 있다는 것
두 눈을 감고서도 삶의 일부가 된다는 것
끝 없는 미궁 속에서도 먼 여로를 그린다.
부대끼는 어깨마다 무거운 침묵의 요동
축축한 불빛으로 침묵하는 이정표들
그래도 겨울 안개처럼 하나 둘 셋 일어난다.
-정정조<지하도에서>전문
정정조의 <지하도에서>는 IMF로 인한 부도, 파산, 실직등으로 가정을 잃고 지하도로 스며든 노숙자들도 하루 빨리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재기의 꿈을 적절히 그리고 있다. 셋째 수 종장'그래도 겨울 안개처럼 하나 둘 셋 일어난다.'라고하여 부활의 꿈이 밑바탕이 되어있는 화자의 밝은 시정신을 볼 수 있다. 현실적인 제재를 형상화한 시절가조가 되고있음을 본다.
이 외에도 이차남의 <서신을 받고>, 장원이의 <가을은 모래시계처럼>. 김상기의 <우링, 비탈에 서서>, 문순자의<유년의 항아리>, 김윤숙의<담쟁이의 노래> 등등 언급하고 싶었던 작품이 많아 <시조문학>이 확연히 새롭게 일어서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쫓기는 시간 많은 작품을 언급하다 보니 깊이 있는 분석이 되지 못함이 아쉽다.
-시조문학 131호/계간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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